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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첫 번째 맞는 주일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초기 교회부터 이어져 왔다.
14세기 요한 22세 교황 때 로마 전례력에 삼위일체 대축일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교회가 이 축일을 지내게 되었다.
<오늘은 6월 25일에 드리는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평소 성호를 그으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오늘은 성삼위의 하느님 사랑을 더욱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할 것을 다짐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께서
사랑과 용서의 주님이심을 전하신다.
곧 주님께서는 자비하고 너그러우신 분으로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이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기뻐하고 서로 격려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당부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편지를 끝낸다(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복음).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4,4ㄱㄷ-6.8-9
그 무렵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돌 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3,11-13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18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십자 성호를 긋는지 세어 본 적이 있는지요?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십자 성호를 긋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에도 성호를 그으며 시작하고 마칩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형식은 조금 달랐지만 십자 성호를 긋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십자가의 은총을 우리 안에 새기는 행위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며
그분 사랑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한순간 한순간 십자가의 은총으로 힘을 얻어 삼위일체이신 그 사랑의
하느님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겠다는 다짐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삼위일체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어 자신은 무(無)가 되어서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전히 자신을 비우심으로써
성부와 하나가 되신 것이 삼위일체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호를 그으며 주님을 초대하는 것은
주님을 손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비우고 없애
대상이신 삼위일체 주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3에다가 1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삼에다가 1을 곱해서
다시 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 성호를 그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삼위일체를 고백합니다.
그때마다 성삼위이신 그분과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하면
어느덧 ‘나’는 없어지고 ‘사랑’이신 그분만 남습니다.
내가 온통 사랑하는 존재가 될 때 내가 날마다 수없이 바치는
‘성호경’은 나를 통해 완성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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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묵상>
나는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나는 주님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나?
나는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나?
자주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나 막연하고
너무나 먼 당신이시고
그래서 남과 같이만 생각된다
머리로는 이런 저런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가슴으로는 따뜻한 느낌이 없고 공허하다
주님은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고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시다는 말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자비하고 너그러우신 주님, 저를 감싸 안아 주소서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제 마음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