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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배달사상과 동양사상의 기원
Ⅴ. 석가세존의 고조선 행적과 유적
{삼국유사}를 보면 부처님이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예컨대 어산불영(魚山佛影)편에 따르면 "대정 12년 경자(1180) 즉 명종 11년에 처음으로
만어사(萬魚寺)를 지었는데 동량보림(棟梁寶林)의 장주(狀奏)에 이르기를 이 산 중에 기이한 자취가
세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부처영상의 서북쪽에 반석이 있어 항상 물이 괴어 끊어지지 않는데
이곳은 부처가 가사를 빨던 곳이라"하여 부처가 우리나라 경상남도 밀양에 있는 만어산(萬魚山)에
이르러 거기에서 가사를 빨았다고 하였다.
또한 동편에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 제7권을 인용하여
"부처가 야건가락국 고선산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고선산의 고선(古仙)은 한인․한웅․한검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곧 고선산은 삼신산을 의미한다. 삼신산은 백두산을 지칭하므로 부처가
고선산에 이르렀다 함은 곧 부처가 백두산에 왔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동서 황룡사장육(皇龍寺丈六) 편을 보면 황용사의 터는 석가불과 가섭불이 강연하던
곳이라 하였고, 그밖에도 경상남도 남해 금산 쌍홍문(雙紅門)의 안내간판에 석가세존이 그곳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앞으로는 의미심장하게 숙고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돌이켜 생각하면 석가세존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땅에서 고행하고 성도한 후
만리 길도 멀다 않고 인도로 건너가 혹심한 빈곤과 차별대우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구걸행각을 하면서 일생을 보냈다고 생각할 때, 인도 사람이라면 누구든 석가세존의 조국인
우리나라를 은인의 나라로 받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신앙의 조국으로 생각하고 무척이나
동경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통일교 외국신자들이 우리나라를 신앙의 조국 곧
아버지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와서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비(妃)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금관성 파사석탑기를 보면 금관성 호계사의
파사석탑(婆娑石塔)은 김수로왕의 비 아유타국의 공주가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만여리가 넘는 인도에서 공주의 몸으로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것은
굳건한 신앙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고,
석탑을 싣고 온 것은 신앙의 조국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금불상 53구가 서역으로부터 바다 건너 한(漢)나라 평제
원시 4년(서기4년) 갑자에 금강산에 보내졌고, 이로 인하여 절(유점사)을 세웠다"고 하였다.
그때는 중국에도 석가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이므로 인도인들이 우리나라를 숭모하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보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도 {삼국유사} 황룡사장육 편을 보면 신라 진흥왕이 황룡사를 지으려 할 때,
서천축의 아육왕이 황철과 황금 및 일불이보살상(一佛二菩薩像)의 모형까지 보내와
장육존상(丈六尊像)을 주조하였다고 하였는데, 황룡사의 터는 석가불과 가섭불(迦葉佛)이
강연하던 곳으로 거룩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상과 같이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아니한 그 때에 만여리가 넘는 인도에서 바다 건너
우리나라로 공주가 오고 불상과 불탑까지 보내왔다는 것은 예사일이 아닌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신앙의 성지, 신앙의 조국, 부처님이 나신 나라로 믿는 굳건한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조선을 가리켜
아득한 옛날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는 등불이었다고 하였던 것이 아닌가?
이제야 그 시(詩)의 의미를 알게 된다.
Ⅵ. 대승경은 우리나라에서 기원되었다.
본항에서는 대승경이 우리나라 고조선에서 인도로 전승되었다는 문제를 논증하려한다.
본 문제의 논증방법은 3단논법이다. 즉 A=B, B=C, 그러므로 A=C라는 논법이다.
이에 대하여 유의하기 바란다.
불교사상의 자료에는 경장(經藏)․율장(律藏)․논장(論藏)의 3장이 있다.
이 중에서 경장과 율장은 불타께서 직접 설하신 법을 의미하고, 논장은 논사들의 저술을 의미한다.
또한 불교경전은 소승경(북방불교에는 장아함․중아함․잡아함․증일아함 등 四部阿含經이 있고,
남방불교의 파리어 대장경에는 장아함․중아함․승육다아함․앙굴다아함․굴타가아함의 五阿含經이 있다)
과 대승경(소승경을 제외한 팔만대장경)으로 크게 둘로 나뉘어지는데,
대소승 경전에 경율론(經律論) 3장이 따로 있고,
특히 소승경만이 석가세존이 35세에 성도해서 80세에 입멸할 때까지
45년 동안 직접 설하신 경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승경에도 논사들의 저술인 논장이 따로 있고, 불타께서 직접 설하신 경장과 율장이
따로 있으니, 이는 누구의 설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김동화는 "서기 565년 전에 탄강해서 그후 35년후에 성도하고 45년간의 설법이
원시경전(소승경)이고, 80세에 입멸하신 것으로 되어있으니, 도대체 이 대승의 경율 2장은
어느 때에 설하였단 말인가? 만약 시대적으로 본다면 소승논부(小乘論部) 이후의 설이라 하여야
정당한데, 사실상 모든 대승경전은 불설로 되어있으니, 이 모순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장탄식을 한다.
일반상식으로 생각해도 석가세존이 대성자이시고 부처님이라 해도 8만 대장경을 혼자서
모두 설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고, 또한 아난(阿難)의 기억력이 신통하였다 하더라도
8만 대장경을 모두 암송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무조건 대승불교 측에서는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대승경도 석가세존이 직접 설하신 경전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소승불교 측에서는
대승경을 마구니의 조작이니 조달(調達)의 조작이니 하면서 석가불설이 아니라고 공박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어느 개인이 탁불(托佛)하여 대승경을 위작한 것처럼 주장하는 고승도 있다.
이와 같이 대승경의 출처는 지금까지 오리무중에 빠져 그 동안 유명한 보살과 조사, 대덕(大德)과
대지(大智)에 의해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내려오는 난해한 문제이다.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지금부터 하나 하나 풀어나가기로 한다.
1. 대승경의 출처는 바다이다.
그러면 대승경의 출처는 어디인가? {용수보살전}에 의하면, 용수(龍樹)는 출가후 입산하여
불탑(佛塔)에 이르렀던 바, 출가계(出家戒)를 받아 90일에 3장을 모두 암송하고 깊은 뜻을 통하여
다시 다른 경을 구하였으나 도무지 얻지 못하다가 설산(雪山) 중의 한 늙은 비구니로부터
마하연경(摩訶衍經)을 얻고 통리하지 못하여 여러 나라를 주류하면서 다른 경을 구하던 차에
수정방(水精房) 중의 대룡보살(大龍菩薩)을 만나 바다 속의 궁전에 들어가 칠보장(七寶藏)을 열어
위없는 묘법인 방등심오의 경전을 주니 그것을 받고 90일에 통해한 후 염부제(염부주) 중의
무량한 경전 가운데 한 상자를 얻고 남천축(南天竺 곧 인도)에 돌아가 불교를 크게 유포시킨 것으로
기록은 밝혀주고 있다.
용수는 대승불교를 일으킨 제1인자인데, 그에 의하여 대승경을 설산과 염부주 바다궁전에서
인도로 전하여 대승불교를 크게 유포시켰다는 것이다. 용수가 대승불교를 일으켰다는 것은
모든 학자들이 공인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산과 염부주와 바다의 문제가 풀리지 않음으로써
대승경의 출처가 모호해지고 오리무중에 빠졌던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옛날의 인도인들이 우리나라를 부처님이 탄생한 나라라 하여 우리나라로 시집을
오고, 불상과 불탑을 보내오듯, 지금 우리나라의 불자들이 인도만을 우러러 보고, 인도의 역사․철학․
종교․사상을 연구하고 잘 알면서도, 제 나라의 역사․철학․종교․사상을 모르는 데서 천축 또는
염부주라면 무조건 인도로 착각하고, 설산이라면 무조건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산맥 중의 어느
산으로 추정하며, 부처라면 무조건 석가세존으로 오인한 데서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나라의 국조인 한인․한웅․한검이 고불(古佛)임을 밝혔고,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이며, 염부주도 좁게는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이고, 넓게는 고조선 강역 전체임을 밝혔다.
이것만 보아도 대승경의 출처가 상고시대의 우리나라 고조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다'가 어디를 가리키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이 문제가 지금까지 풀리지 않음으로써
'바다'라면 무조건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짠물바다로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용(龍)이라면 무조건 비를 내리는 바다의 용으로, 용궁이라면 바다속의 궁전으로,
용왕이라면 바다 속의 용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용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도에서는 용같은 코브라로 용을 대신하는가 하면, 용과 같은 종류의
물고기로 변형되고 있다. 이래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불교가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허무맹랑한 미신같이 곡해되어 서구인들에게 불신당하고 있는가 하면, 대승경의 출처도 수천년 동안
안개 속에 가리워졌던 것이다.
2. 바다는 수미세계이다.
그러면 불교에서 바다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사해동포(四海同胞)라 할 때의 해(海)와 고해중생
(苦海衆生)이라 할 때의 해(海)도 태평양․대서양․인도양 같은 짠물바다(소금물바다)를 가리키는가?
불교철학이 심오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의 바다를
무조건 짠물바다․소금물바다로만 수천년 동안 이해하여 왔으니 참으로 이상하다 아니할 수 없다.
먼저 바다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바다는 깊고 무한하여 전 대륙을 포용하고 있는가 하면,
생명의 원천이며, 지혜와 재화의 보고이고 무차별의 세계이다. 무섭기는 폭군 같기도 하고
인자하기는 어머니 같기도 하다. 곧 바다는 원융무애하고 대승적 성격을 지니어 크고 작은 것,
좋고 나쁜 것, 희고 검은 것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불교에서 바다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첫째, 불교에서 바다는 원융무애의 정신세계를 의미한다.
예컨대, 대원해(大願海) 여래공덕해(如來功德海)․무량삼매해(無量三昧海)․법문해(法門海)․생사해
(生死海)․지혜해(智慧海)니 하는 경우 등이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의 바다는 태평양․인도양․대서양
같은 짠물바다․소금물바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원융무애의 정신세계를 의미한다.
둘째, 불교에서의 바다는 수미세계(須彌世界)를 의미한다.
불교의 세계설에 의하면 이 세상 중앙에 수미산이 높이 솟아 있고,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帝釋天)
이 살며 중턱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산다. 금․은․유리․파리의 4보(四寶)로 이루어져 북쪽은 황금,
동쪽은 백은, 남쪽은 유리, 서쪽은 파리인데, 해와 달이 그 주위를 회전하면 보광을 발산하여
4방의 허공을 물들인다. 수미산 둘레에는 일곱 겹의 금산(金山)으로 둘러있고, 수미산과 금산,
금산과 금산 사이에는 7개의 바다(七海)가 있다. 마지막 금산 밖에는 짠물바다(鹹海)로 둘러있고,
짠물바다 건너에 철위산이 둘러있어 수미세계의 외곽을 이룬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태평양․대서양․인도양 같은 진짜바다는 이를 짠물바다(鹹海)라 이르고,
바다는 수미산과 금산, 금산과 금산 사이의 수미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바다는 문명의 중심지, 종교적 메카라는 뜻의 비유로 쓰인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 말하는 바다는 수미세계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수미세계는 어떠한 세계를 의미하는가? 수미세계는 최상의 위치에 제석천과 같은
종교지도자가 있고, 중간에 사천왕과 같은 법왕이 있어 해와 달이 자연적으로 돌아가듯,
사회질서도 법이 있으나 없으나 순리대로 돌아가며, 사방에서 금․은․유리․파리의 4보가 보광을
발하듯, 사민(四民)의 기풍도 홍익인간 광명이세하여 태평가를 부르는 평화세계로서 종교의 메카,
종교의 발상지, 종교의 요람, 최고의 종교사회 곧 불국토 내지 신선지국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상남도에 김해(金海)․남해(南海) 등의 지역이 있으나
이들 지역이 바다가 아니라 과거에 종교의 요람이었던 것과 같은 격이다.
그러면 용수보살이 대승경을 가져갔다는 바다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태평양․인도양․대서양 같은 짠물바다인가?
대원해니 무량삼매해니 하는 원융무애한 정신세계인가?
아니면 종교의 요람인 수미세계인가?
바다에 궁전과 칠보장과 경전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서 이 경우의 바다는
원융무애의 정신세계도 아니고, 태평양․인도양․대서양 같은 짠물바다라고도 할 수 없으며,
종교의 요람인 수미세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신세계나 짠물바다 속에 실제의 궁전도, 칠보장도, 경전도 있을 수 없고,
수미세계에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수보살이 대승경을 남천축으로 가져갔다는 바다는 수미세계인 것이다.
즉 대승경의 출처는 수미세계라는 것이다.
3. 수미세계는 환국과 고조선을 의미한다.
수미세계는 종교의 메카, 종교의 발상지, 종교의 요람, 불국토, 신선의 나라를 의미한다면
과거에 그러한 나라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첫째, 수미세계는 중앙아시아의 환국을 의미한다.
제1편에서 밝혔듯이 고불교인 신선도는 태고시대 중앙 아시아의 환국 즉 알타이 사회에서
비롯됐으니 고불인 한인이 천산에 살면서 득도하여 삼신하나님에게 제사하고 7세나 계승하면서
무위자연적 신교국가를 이룬다. 따라서 태고시대 중앙 아시아의 환국 즉 알타이 사회는
수미세계였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수미세계는 우리나라 고조선(古朝鮮)을 의미한다.
환국에 이어 한웅천황이 우리나라의 백두산 천지에서 천도를 크게 깨치고 지금으로부터 5894년 전
10월 3일 신선도를 설파하였으며, 그후 1565년이 지나 다시 단군성조에 의하여 고등종교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배달국과 고조선은 부처님이 세운 나라로서 수미세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상고시대의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군자지국(君子之國)이라
또는 신선지국(神仙之國)이라 하였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도 고조선을 가리켜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는 등불이라 하였다.
불교에 관한 기록에서 천독(天毒) 또는 천축(天竺)이라 함은 수미세계를 의미하는데,
{산해경} 해내경에 조선을 천독이라 하였다. 이는 고조선이 수미세계임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인도를 남천축(南天竺)이라 하고, "월지국(月支國)을 북천축(北天竺)이라" 하는데, 월지국은
고조선의 진왕이 직접 다스리던 수도를 지칭한다. 이래서 고조선은 수미세계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4. 대승경의 출처인 수미세계는 고조선이다.
그러면 대승경의 출처는 중앙 아시아의 환국인가?
아니면 우리나라 고조선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용수보살이 설산 염부주 바다궁전에서 대승경을 남천축 인도로 가져갔다고 했다.
그런데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가리키고, 염부주는 백두산 천지 또는 고조선 강역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용수보살이 대승경을 인도로 가져갔다는 바다 곧 수미세계는 중앙 아시아의
환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고조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대승경의 출처는 고조선인 것이다.
다음은 우리나라를 바다로 표현한 실례를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이는 "해중유삼신산(海中有三神山)"이나, "동지우해등환산(東至于海登丸山)"의
삼신산과 환산은 백두산을 의미하는데, 백두산은 우리나라에 있다.
그러므로 바다(海中)는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또한 학자들 역시 이 경우의 해(海)를 발해(渤海)로 해석한다.
발해는 흔히 대조영이 세운 국명으로 알고 있으나, 그 나라의 처음 이름은 대진국(大震國)이며,
발해는 대진국 건국 이전 춘추전국 시대의 저술인 {열자(列子)}에도 보이는 상고시대 우리나라의
이칭이다.
{화엄경} 제보살주처품에도 "해중에 금강산이 있는데 예로부터 법기(法起)보살이 1200권속과 더불어
법을 설하였다"는 구절이 있는데, 금강산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산으로서 해중은 곧 우리나라를
의미한다. 그런데 중국의 청량국사의 소(疏)에도 해중을 우리나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화엄경} 입법계품에 "마니산 기세계 해중 유불 출현(摩尼山 其世界 海中 有佛 出現)"이라
하였는데, 마니산은 인도나 중국에는 없고 우리나라 경기도 강화에 있는 산이다.
더욱이 부처님이 출현했다고 했으므로 해중 곧 바다는 우리나라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와 용궁"은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와 같이 바다는 짠물바다 외에 상고시대의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이상의 소론을 요약하면, 대승경의 출처는 설산 염부주 바다궁전인데, 설산은 우리나라의 백두산을
의미하고, 염부주는 백두산의 천지주변 또는 고조선의 강역전체를 의미하며, 바다는 우리나라
고조선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승경의 출처는 우리나라 고조선으로서 대승경은 원래 우리민족의 경전이라는 사실이
이론적으로 성립된다. 즉 방대한 불교의 대승경이 인도소산이 아니고 원래 우리민족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원래부터 우리민족의 사상인데 지금까지 인도사상이라 오해하여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을 거의 찾은 기분이 든다.
또한 원시 대승경이 용수보살에 의해서만 인도로 전승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석가세존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서 수도 고행하였고,
백두산(설산) 총림방 중의 진귀조사로부터 종지를 받았다고 하였으므로
석가세존에 의하여 가장 기본적인 경전이 인도에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대승경은 범어로 쓰여 있는데, 후술하는 바와 같이 범자는 지금부터 약 5200여년 전에
배달국 시대의 복희에 의하여 창제되었고, 지금부터 약 3500년 전에 성립되었다고 보여지는
인도의 리그베다(Rigveda)도 범자로 쓰여 있으므로 대승경은 리그베다 성립이전,
적어도 지금부터 3500년 전, 범어의 인도이입과 더불어 인도로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래서 대승경은 용수보살 이전에 이미 인도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5. 지나에 대승경을 전한 월지국은 고조선의 수도이다.
대승경이 고조선에서 먼 인도에까지 전승되었다면 인접한 지나에는 그보다 먼저 직접 전수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대승경의 중국전승에 대한 기록을 보면, 주(周)나라 목왕(穆王) 때(B.C. 1001~
B.C. 947)에 문수와 목련이 서역에서 건너와 목왕을 교화하였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진시황 4년(B.C. 243)에 불경을 중국에 전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에 대하여 일반적인 통설은 부정한다. 왜냐하면 주나라 목왕 때는 석가세존마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며, 진시황 때는 대승불교가 성립되기 전이다. 따라서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하였다고 할 경우,
그때에 문수와 목련이 서역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목왕을 교화하였다거나 불경이 중국에 전래되었다
함은 있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월지국(月支國) 아니면 안식국(安息國)에서
대승경이 중국으로 전승되었다고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고, 이들 국가를 인도 가까이에
있는 대월씨국(大月氏國)에 결부시키려 한다.
여기에서 안식국은 논외로 하고 월지국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보면,
한(韓)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한(弁韓)인데,
진한을 옛 진국(辰國)이라 하고, 진왕(辰王)이 월지국을 통치하였다고 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월지국은 진주(辰主)의 치소(治所)라 했다.
곧 월지국은 진국의 도읍지라는 것이다. 그외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전후삼한고(前後三韓考)와
최동(崔棟)의 {조선상고민족사}를 보아도 한결같이 월지국이 고대의 우리나라 고조선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국어대사전}을 보아도 월지국을 목지국(目支國)이라 하고
목지국은 옛 진국의 한 부족국가라 하였다. 옛 진국이란 고조선을 지칭한다.
그러나 {불교사전}에 "월지(月支)는 월씨(月氏)라고도 하며, 서역에 있던 큰 왕국"이라 하여
월지국(月支國)을 서역에 있던 대월씨(大月氏)에 결부시키고 있다. 만약 불경이 터키계통의
대월씨국에서 중국에 전승되었다면, 대월씨국은 중국보다도 먼저 불교가 보급되었다는 것으로
지금쯤은 서구사회에 불교가 일반화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는 이제야 겨우 불교가 발을 붙일까 말까 할 정도인 것을 보아도
중국에 불경을 전한 월지국은 대월씨국이 아닌 것이다.
근세에도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불경이 전승되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경북대학교 허흥식(許興植) 교수는 "고려에 남긴 철산경(鐵山瓊)의 행적"에서
{고려국대장이안기(高麗國大藏移安記)}는 아직까지 국내 학계에 소개된 바 없는데,
거기에 중국 남송(南宋) 임제종(臨濟宗) 양지파(楊枝派)의 고승 철산경이
1304년 고려에 와서 3년 동안 머물다가 6천권의 대장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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