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22장
1. 엘리바스의 세 번째 욥을 정죄함
1) 지나친 자기 주관과 욥을 정죄하려고만 하는 실수를 하고 있지만 내용만은 진실하다.
2) 엘리바스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음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이다.
가) 2절 - 사람의 지혜가 하나님께 유익을 끼칠 수 없다.
나) 3절 - 사람의 의로움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다) 3절 - 사람의 온전한 행위가 하나님께 이익이 될 수 없다.
라) 사람의 이런 것들은 자기 자신에게 유익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완전하시기에 피조물의 도움을 받아 신성시 되거나 완전케 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행위를 해도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더 의로워지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더 풍성해지거나 하나님의 부귀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원래 완전하시며, 풍성하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을 베푸시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받고 계시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유익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익을 받는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길이 많은 것을 손해를 보고 희생하고 잃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얻는 게 훨씬 더 많다.
마)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과 감사할 뿐이어야 한다.
3) 사람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심문을 받는다.(4) 결국 엘리바스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께서는 경건하지 못한 자를 책망하시며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욥의 고난은 경건하지 못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시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욥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경건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영혼이 죽어 있고,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며 늘 무엇인가에 쫒기는 삶을 산다. 그러나 경건하게 되면 걱정 염려가 없어진다. 영혼이 잘 되게 되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어떤 상황에 처해도 감사하게 된다.
2. 여러 가지 죄명으로 욥을 고소함(5-14)
1) 악이 크고 죄악이 끝이 없다.(5)
2)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 -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은 죄이다.(6-7) 율법에 의하면 돈을 꾸어줄 때 집안에 들어가 저당 물을 가져올 수 없었다. 옷이나 맷돌 같은 생활필수품은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했다. 의복을 벗겨 가면 안 되는 것은 통으로 짠 옷이기에 밤에는 이불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출 22:26절에 금지된 내용을 어기는 죄이다. 또한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인간대 인간으로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원수에게 까지도 물을 먹이고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3) 권세로 갑질한 죄(8)
4) 착취의 죄(9)
5) 하나님을 속이려 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은 죄(13-14)
3. 악인에 대한 심판이 있다.(15-20)
1)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다.(10)
2)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한다.(10)
3) 어둠에 사로잡혀 보지 못하는 자가 된다.(11)
4) 홍수가 덮는다.(11)
5) 노아시대처럼 혹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한다.(15-20)
4. 엘리바스의 조언과 복이 임한다.(21-30)
1) 하나님과 화목하라(21) - 하나님을 경외함에 소홀하지 마라. 기도를 멈추는 죄를 짓지 말라.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2) 평안하라(21) -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평안의 길이다. 영혼이 잘 되면 강건하게 된다. 하는 일마다 잘 됨으로 평안할 수 있다.
가) 하나님과 화목하여 평안하며 사람과도 화목하면 복이 임하리라(21)
3)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22) - 말씀을 듣지 못하면 모든 것이 깨진다.
4)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라(23)
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23)
나) 가정이 의로운 가정이 된다.(23)
5) 물질의 욕심에 빠지지 마라(24).
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화가 되어 주신다.(25)
나) 영적으로 은혜가 충만하게 된다.(26)
다) 기도가 응답받는다. (27)
라) 서원을 갚는 길이 열린다.(27)
마) 형통한 자가 된다.(28)
6) 겸손하라(29)
가)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29)
나) 혹 죄가 있을지라도 용서함을 받는다.(30)
5. 고난 속에서 욥이 견디기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었다. 친구들의 정죄에 대해 변론은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고난 중의 고난이었다. 때때로 우리의 부르짖음에 대해 하나님의 약속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시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