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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전주지역 유적답사- 조선의 국권이 싹튼 오목대(梧木臺)와 이목대(梨木臺)
2013. 7. 6 태조로(太祖)로를 따라가다 보면 태조로 쉼터가 보인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 비탈길을 오르면 오목교(梧木橋)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성계의 선조들이 살았다는 옛 이목대가 나온다고 한다. 오늘은 가보지 못하고 언덕위에 있는 오목대(梧木臺)를 찾았다.
오목대(梧木臺) 위치도
태조(太祖)로
오목교(梧木橋)를 건너가면 이목대(梨木臺)가 나온단다
오목대(梧木臺)로 올라가고 있다
오목대(梧木臺)는 1380년(우왕 6)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남원(南原), 운봉(雲峰) 황산(黃山)에서 발호(跋扈)하던 왜구(倭寇)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며 개선(凱旋)하여 개경(開京 : 開城)으로 돌아갈 때, 조상의 고향인 전주에 들러 이곳에서 야연(野宴)을 열었던 곳이다. 그 당시 이성계는 이곳에서 중국의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불렀다는 ⟪대풍가(大風歌)⟫를 읊었다고 한다. 그는 그 곳에서 자신이 새로운 나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넌지시 내비친 셈이다.
오목대(梧木臺)
대풍가(大風歌)-유방((劉邦)
大風起兮雲飛揚(대풍기혜운비양) : 센 바람이 부니 구름이 높이 날리는 구나
威加海內兮歸故鄕(위가해내혜귀고향) : 위세가 온 세상에 떨치며 고향으로 돌아가도다
安得猛士兮守四方(안득맹사혜수사방) : 어찌하면 용맹한 군사들을 얻어 사방을 지킬까
오목대(梧木臺)
1900년(고종 37) 고종이 친필로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가 새겨진 비가 세워졌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인 오목대는 경기전(慶基殿)의 남동쪽 500m쯤 떨어진 곳,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하는데, 옛날에는 승암산에서 오목대까지 산이 이어져 있었으나 전라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맥이 끊겼다. 오목대에서 육교쪽으로 가면 승암산 발치에 이목대(梨木臺)가 자리잡고 있다.
오목대(梧木臺)비에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라 새겨져 있다
이목대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목조 이안사(李安社)의 유허(遺墟)로서 시조 이한(李翰) 때부터 누대에 걸쳐 살던 곳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용비어천가⟫에도 묘사되어 있다. 이목대에도 고종이 친필로 쓴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가 새겨진 비가 오목대와 동시에 세워졌다. 오목대와 이목대는 오래 전부터 전주시민의 휴식공간이 되어왔다.
오목대(梧木臺)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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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세한 해설을 해 주어서 직접 보는 듯이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목대를 기대했었는데...
전주 이씨문중의 긍지가 싹튼 곳 전주 오목대와 경기전, 전주사고 모두가 조선개국과 이성계, 전주이씨들의 역사창달의 유적지였군?
수고하셨네....그날 워낙 더워서 답사하능것도 고역이더니만....지금 공부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