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은〈공동체의 돈 만들기〉라는 글을 통해서 ‘지역통화운동’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풀뿌리 자치 · 자립 운동의 한 형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1996년 3-4월호 이후 계속해서 지역통화 및 그 대표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LETS에 관한 자료와 문헌을 소개 · 게재해왔다.
우리가 이렇게 지역통화운동에 주목해온 것은, 1980년대 이후 영미권 일부에서 시도되기 시작한 이 운동이 90년대를 경과하면서 세계전역에 걸쳐 ‘들꽃’처럼 확산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지구환경과 세계 각처의 지역경제와 지역문화를 뿌리로부터 손상시킴으로써 이 시대의 크나큰 재앙이 되고 있는 ‘경제의 세계화’에 맞서서 싸울 중요한 투쟁의 도구로서 지역통화에 주목해온 세계적인 활동가 · 사상가들의 견해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녹색평론》이나 또다른 경로를 통해서 국내에서도 근년에 이르러 지역통화운동에 대한 관심은 증가되어왔고, 일부 지역이나 시민운동 조직내에서 이미 여러 형태의 지역통화운동이 실제로 시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국내에서는 아직 LETS를 비롯한 지역통화운동은 그것이 당연히 받아야 할 만큼의 큰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실제로 이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역에서도 계속하여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한국의 경제나 지역의 사정이 지역통화운동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토양인지 아닌지 검토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 이미 이 운동은 북미와 호주, 유럽국가의 경계를 넘어, 남미와 동남아시아, 일본에서도 활발하게 실현되고 있거나, 적어도 사회이론가들 사이에서 비중있게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우리는 지역통화에 관한 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벨기에의 금융이론가 베르나르 리에테르의 새로운 책《돈의 미래》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지역통화운동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의외에도, 일본의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코진(柄谷行人)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이라는 이름으로 지역통화를 핵심적인 도구로 활용한 새로운 윤리-경제운동을 제창하고, 실제로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라타니 코진은 이미 한국에도《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은유로서의 건축》《윤리21》등의 저서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일본의 긴기(近畿)대학과 뉴욕의 콜럼비아대학 교수이기도 한 다망(多忙)한 비평가이다.
그러한 그가, 왜, 어떻게 지역통화운동에 주목하고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 경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90년대 내내 거의 절망속에서 살고 있던” 그에게 “희망의 불빛”을 준 것이 바로 지역통화운동이었다는 진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