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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아이를 키운다"
글짓기와 글쓰기는 다르다. 글쓰기는 삶이 나타나 있다. 삶 자체가 글이다. 가난한 사람은 할 얘기가 많다. 간장에 밥 비며 먹었던 얘기, 자주 이사 다녀다녀야 했던 이유, 못 사는게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몰래 다녀야 했던 얘기. 아빠 없이 살았던 일들. 이 모든 이야기를 글로 풀어 쓰면 이것이 삶의 글쓰기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은 구구절절한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없다. 부족했던 경험이 없으니까. 배고픈 것을 경험하고 돈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마음 속에 담아 둔 할 얘기가 차고 넘친다. 글로 나타내면 된다. 가난한 삶이지만 글쓰기를 할 때 상처가 드러나고 회복할 수 있다. 가슴 속에 묻어 두면 병이 되고 열등감만 생긴다. 용기를 가지고 글로 나타내야 한다.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단지 불편한 것 뿐이다.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권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의 터전이 아이를 키운다"
이상석 선생님은 남다른 교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꺼려하는 가정방문을 했다. 가정방문을 다녔던 학생들은 공고에 재학했던 학생들이다. 당시 공고에 다녔던 학생들 대부분이 가난에 쪄든 삶을 살았다.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었다. 가정방문을 다녀봐야 가정 형편을 속속히 알 수 있다. 단지 학생들이 적어낸 서류로는 한계가 있다. 직접 학생들이 살고 있는 집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학부모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가정을 보고 나면 학생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지각하는 이유,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이유, 집중하는 이유들을 깨닫게 된다. 말 못한 사정을 알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없게 된다. 학부모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도와 주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학생들이 머무르고 있는 삶의 터전을 알 때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곁에 가정방문을 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시면 오해하지 말자. 용기와 열정을 칭찬해 드리자.
"봄은 오지 않는다. 우리가 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가난이 가난을 잉태하고 있다. 작은 희망조차 꿈꿀 수 없는 시대다. 과연 가난은 부끄러운 것인가? 가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극복해야 할 대상인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 살다보면 더욱 불행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생각을 전환해 보자. 가난은 불편할 뿐이다. 가난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가난한 이유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부모의 탓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회 구조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난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함께 살아가려고 할 때 봄이 다가올 것이다. 학교는 누군가를 짓밟고 가난을 탈출하는 삶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함께 가난을 이겨내고 위로하는 방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이상석 선생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