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들 한다. 정치에는 낭만도 있으며 문화도 있다. 정치를 낭만적이라고 보는 것은 정치인들이 낭만을 즐기는 면을 많이 보여서다. 서구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정치가 민중에게 일반적으로 다가서기 전까지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 대게가 삶에 대한 치열한 투쟁보다는 귀족적 삶을 즐겼던 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해방 후 독립 국가를 세우던 시기에 정치를 했던 정치인들 치고 ‘귀족’아닌 사람이 드물었다. 따라서 이들은 여당과 야당이라는 정치결사체의 소속만 다를 뿐 실제로는 동종 선민의식이 풍성한 집단의 일원들이었다. 이 현상은 지금이라고 별 다르지 않다. 지금도 의원들이 의정단상에 서면 처음으로 하는 인사가 “존경하는 의장님, 그리고 동료의원 여러분”이다. 또 상임위 발언 중 상대의 말에 반박을 하는 발언이라도 늘 “존경하는 ㅇㅇ의원님께서…”를 빼지 않는다. 실제는 별로 존경하지 않으면서 의례적으로 그 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동종 선민의식의 발현이다. 때문에 이런 동종 선민의식 하에 끼리끼리 낭만을 즐기는 것이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자릴 잡았다. 우리는 또 정치문화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실상 정치에서 문화를 찾가는 매우 어렵다. 아니 문화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것도 타당하다. 그런데 왜 ‘정치문화’라는 말이 대중적 언어로 회자되고 있을까? 이는 정치를 투쟁의 현장이 아니라고 애써 자위해야 함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정치란 투쟁의 현장이다. 권력 자체가 투쟁 없이는 쟁취가 어려운 산물이기 때문에 그 산물을 얻기 위한 방법은 투쟁이 가장 적절한 방식이다. 투쟁이라고 멱살잡이나 이전투구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은 민심을 얻기 위해 정치인들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의 쟁취는 유권자의 선택 이외에는 없다. 유권자의 선택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방식은 유권자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유권자에게 인정을 받는 길은 유권자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걸 위한 정치인들의 투쟁, 그것이 때로는 멱살잡이일 수도 있고 이전투구일수도 있고, 단상점거일 수도 있고, 장외투쟁일 수도 있다. 결국 정치는 낭만과 문화와 투쟁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란 얘기다. 그리고 이를 잘 운용하는 정치인을 우리는 정치기술이 발달한 사람으로 친다. 더 엄격히는 정치기술을 잘 사용하는 정치인을 정치9단이라고 한다. 정치기술, 말이 좀 직선적이지만 실상 정치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여론을 읽는 기술부터 여론을 움직이는 기술, 더 넓게는 여론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나쁘게 보면 얍삽하고 치졸하지만 실제 이런 기술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다. 민주, 자유, 정의, 평화, 진실, 선의, 진정성, 준법, 정치에서 밥 먹듯이 사용하는 말들이지만 실상 이런 말들은 정치기술을 구사하는데 유효적절하게 등장하는 메뉴일 뿐이다. 이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르지 않다. 고로 이 메뉴를 누가 더 유권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전달하고 각인시키는가의 싸움이 곧 정치라고 보면 된다. 이런 정의를 내려놓고 보면 지금의 야당이 얼마나 무능한 집단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일단 지금의 야당은 권력욕이 여당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세상이 이 땅 민중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는 확신이 풍부하다면 그 확신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길은 권력을 쟁취하는 것 외에는 없다.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의회권력의 장악도 필수다. 하지만 이들에겐 이 확신이 없다. 이 확신이 없으니 권력욕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는 물론 선거 때도 우왕좌왕 한다. 다만 특정지역 다수민을 자산으로 뭉친 보수연합체를 반대하는 반대그룹의 상대적 반감만을 자극하는 1차원적인 정치만을 추구한다. 그 상대적 반감이 팽배해져서 터질 지경이 되어도 이를 하나로 묶어 낼 기술도 없다. 기술만 없는 것이 아니라 방법도 모른다. 그에 대한 답이 현재 원내 140석을 넘기는 야당 전체의 여론 지지도를 다 합해도 20%대 안팎인 것이다. 이들이 믿는 단 하나, ‘어떻든 반 새누리당 유권자는 50%대에 육박하므로 어떤 선거든지 새누리당만 빼고 다 연대하면 이길 수 있다’는 연대론, 이거다. 그래서 새누리당 인자가 아니면 그가 어떤 이념으로 어떤 정치를 해도 ‘야권’이므로 자신들의 ‘연대 프레임’ 안에 가둬둬야 한다. 그것만 성공하면 된다고 믿는다. 이러니 정치를 기술적으로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 민심을 움직일 생각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 국민은 이런 1차원적 생각을 하는 집단에게 정권을 맡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자기들만의 리그, 있는 자들의 향연, 특정지역의 만고불변 권력장악이 될 지언정 선거 때 거짓으로라도 ‘우리가 당신들의 삶을 책임지겠습니다’의 기술을 잘 구사하는 보수연합체가 선거마다 이기는 이유다. 그래서다. 야당이, 아니면 야권이, 새누리당으로 뭉쳐진 보수연합체의 만고불변 권력장악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은 반 새누리당 연대가 아니라 보수연합체라는 그 연합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 연합체의 연합이 깨지지 않으면 이 연합체를 반대하는 집단들의 연대가 아무리 강고해도 그들과 선거전쟁을 통해서 권력을 빼앗아 올 수 없다. 지금 이 연합체는 가장 취약한 시기에 몰려 있다. 잦은 잽은 강한 카운터블로우 한 방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잽으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 현재 박근혜를 탑으로 한 이 보수연합체는 이 연합에 가입되지 않은 다수의 상대에게 많은 잽을 맞았다. 다만 강한 카운터블로우만 맞지 않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스스로 자초한 취임 초 인사난맥으로 나타난 윤창중의 난(?)에다 연합그룹 내의 각종 방심이 가져 온 허술했던 방비는 각계의 이런 잽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다 이명박 그룹의 5년간에 걸친 실책들, 4대강, 한식사업, 국정원, 경찰, 검찰, 방통위, 서울시, 쌍용, 한진, 강정 등 이루 셀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사안들은 이명박 재임 시에도 자주 맞은 잽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명박 퇴임 후 생긴 일들까지 겹치고 있다. CJ, 그리고 최근 뉴스타파가 터뜨린 대기업군들의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 실상, 경찰의 국정원 수사자료 삭제, 영남제분 사모님의 일탈까지 박근혜로서도 어찌해볼 수 없는 다발적 사고들이 속출한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야당이라면 존재가치가 없다. 이용 시기도 적절하다. 6월 국회는 오는 6월 3일 개회된다. 국회가 개회되기 전의 통과의례는 원내교섭단체간의 협상에 의한 회의 의안 채택과 일정조율이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아주 작은 정치기술만 있어도 이번 회기 내에 위에 적시한 사안 중 파괴력이 큰 사안 한 두 개에 집중, 여당을 코너로 몰아붙일 수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news.naver.net%2Fimage%2F001%2F2013%2F05%2F30%2FPYH2013053001000001300_P2_59_20130530115112.jpg) | ▲ 민주당 고위정책회의.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회기의 핵심을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에 두고 있으나 이 건 하나로는 부족하다. 국정원과 경찰의 증거인멸에 대한 국정조사, CJ를 비롯한 재벌들의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 실상이라는 사안을 놓고 국세청을 상대로 한 국정조사, 이 두 개만 가지고도 야당의 존재감 확인이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장외투쟁을 겁낼 이유도 없다. 이 두 개의 사안을 여당이 받지 않으면 장외투쟁을 선언한대도 이런 야당의 행태를 비난할 국민은 적다. 여기에 불을 키울 수 있는 사안으로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에 얽힌 국정원과의 고리도 있다. 국정원이 여론조작을 위해 일간베스트를 이용하고 있다는 정황은 현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소한 정치를 하는 집단이라면 이런 호재를 호재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호재들은 박근혜를 탑으로 하는 보수연합체에 강력한 카운터블로우로 작용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면 민주당도 살고 야권도 산다. 연대가 아니어도 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는 기회, 지금이야말로 정치를 정치답게 하는 정치집단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민주당은 자연적 고사에 이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안철수 세력이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안철수에게도 지금은 절호의 기회다. 현안에 대해 투쟁하지 않은 정치인은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안철수도 지금은 인파이팅을 해야 할 시기다. 아웃복싱으로 카운터블로우를 칠 수 없다. 10월 재보선? 그때가 오기 전에 이미 국민은 다음의 대안을 마음 속에 담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