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모바일 게임, 비웃었지만… 휴대폰 게임 선구자 그녀,
'컴투스' 박지영 대표
게임의 법칙은 100초, 100초에 모든 걸 건 여자
박순찬 기자 /조선일보 : 2012.11.19.
"휴대폰은 전화가 아닙니다, 휴대폰은 게임기가 됩니다" 10년前 설득했지만 무시당해 "100초 안에 사로잡지 못하면 게임 이용자는 떠납니다" 3명이 창업해 연매출 800억
"사람들이 매일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가 언젠가 게임기가 되는 날이 올 거라고 봤어요. 그 시장이 이제야 열리기 시작한 거죠."
국내 최초로 모바일 게임 서비스를 시작한 컴투스 박지영(37) 대표는 지난 16일 "당시 이 이야기를 들은 통신사 고위 임원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굴하지 않고 10여년을 넘게 버텨 왔다"고 했다. 요즘 애니팡 같은 스마트폰 게임이 '국민 게임'으로 불리는 시대가 됐지만 박 대표는 14년 전인 지난 1998년 일찌감치 모바일 게임에 뛰어들었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자그마한 액정이 달린 셀룰러·PCS폰이 전부였던 시절이다. 박 대표는 "PC통신이 대세였고 네이버·한메일이 수백억원씩 돈을 쏟아붓는 상황이었다"면서 "남들이 주목 안 하는 모바일 분야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펼쳐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적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어요. 중학교 때 컴퓨터실에서 몇번 만져본 게 전부였죠. 하지만 (컴퓨터가)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컴퓨터공학과(고려대)를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남편도 같은 과 선배인 이영일(39) 현 부사장. 박 대표는 '재밌는 거 해보자'는 생각에 학교 앞 옥탑방에 사무실을 꾸렸다. 이듬해(1999년) 결혼했다. 이들 부부를 비롯, 컴투스의 창업 멤버는 세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미국·일본·중국에 현지 법인까지 둔 연매출 800억원을 바라보는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 3분기까지 컴투스의 누적 매출은 557억원, 영업이익은 124억원이다. 이미 작년의 매출(362억원)과 영업이익(3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박 대표는 "생각보다 시장이 늦게 열렸지만 스마트폰과 앱마켓의 힘으로 올해부터는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사업 초기엔 휴대폰에서 할 수 있는 퀴즈, 테트리스 같은 간단한 게임을 개발해 이동통신사를 찾아갔다. 과금체계도 제대로 없어서 처음엔 무료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벤처 투자를 받은 돈으로 근근이 버텨나갔다. 지금처럼 무제한 요금제가 없어서 게임을 하다가 '요금 폭탄'을 맞았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많았다. 박 대표는 "게임이 점차 다운로드받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컬러폰과 스마트폰, 무제한 요금제까지 등장하면서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고 했다.
컴투스의 주력 게임은 동물농장을 꾸미는 소셜 게임 '타이니팜'과 손안에서 야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컴투스프로야구' '홈런배틀' 등이다. 모바일 게임은 개발기간이 온라인 게임의 1/4 수준으로 비교적 짧지만, 대신 라이프사이클(제품 수명) 역시 짧다는 단점이 있다. 박 대표는 '100초의 미학(美學)'과 '꾸준한 업데이트'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모바일 게임은 100초 안에 이용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이용자를 잡은 뒤에도 최소한 3~4번 이상은 꾸준히 업데이트를 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죠."
40여명의 직원이 카카오톡·트위터·페이스북·이메일·전화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고객들에게 실시간으로 답변을 해주는 것도 컴투스만의 고객 관리 노하우다. 박 대표는 정부의 모바일 게임 규제 움직임에 대해 "한참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게임산업이 해외 업체와의 역차별로 자칫 고사할 수 있다"면서 "규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녀의 게임 중독을 걱정하는 부모들에겐 "아이가 칭얼댄다고 너무 쉽게 스마트폰을 주지 말고, 부모가 먼저 스마트폰을 잘 알고 난 뒤에 가족 간의 룰(rule)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컴투스는 세계 모바일 게임사 순위 평가에서 16위에 올랐다. 박 대표는 "미국·일본 등 글로벌 시장을 키우는 데 주력하면서 국내에도 다양한 모바일 게임을 선보일 계획"이라며 "컴투스의 본격적인 성장은 내년부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