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초에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의 정현경 교수로부터 시드니에서
Universal Fellowship of Metropolitan Community Church의 World Conference 가 열리는데 주제 강의를 하러 온다는 연락이 와서 나는 순전히 재미있는 여자인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UFMCC 총회가 열리는 곳에 갔다. 그런데 거기서 그때까지 전혀 내가 몰랐던 세계를 만나고 말았으니 그것은 바로 동성애자들의 세계이었다.
그 때까지 동생애자 교회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나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동성애자 신자들과 목회자들이 벌이는 깊이 있는 토론과 섬세한 예식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한 시간 강의를 하고 딱히 시드니에서 할 일이 없었던 정 교수와 이틀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루 열 시간 이상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후 1년 동안 시드니에 있는 MCC 교회에 나가면서 동성애자들의 신학과 사상, 철학, 문화와 형식에 대하여 공부를 했다.
나는 동성애주의자들의 교회를 통하여 그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이리처럼 성욕을 채울 대상을 찾아 헤매는 비정상적인 변태성욕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알고 보니 동성애의 문제는 단순한 성정체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성애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관이었다. 그 후부터 나는 몇 해 동안 온라인으로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신앙상담을 했었다.
동성애자들과의 많은 온라인 상담 중에 잊을 수 없는 내용이 있다.
저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입니다. 저는 gay입니다.
저는 그동안 제가 gay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받아들이게 된지 몇 개월이 됩니다. 제가 사귀고 있는 사람은 외국인이고 그 또한 상당한 지위에 있어 노출에 매우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제가 동성애의 감정으로 접촉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태어나서 처음 사랑을 해보고 있습니다.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straight중심의 사회에서 교육받은 사람으로 기본적인 죄책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이해 하실 거라 믿고 기대고 싶습니다.
gay는 하나의 원죄를 더 갖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은 저희의 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내가 이 경우를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이 사람이 그 후 군의관으로 입대를 하면서 남자들만 있는 세계로 들어가는 불안과 기대가 엇갈리는 내용을 고백했었기 때문이다. 실감이 안 나시는가? 남자가 여탕에 발가벗고 들어가는 상상을 해 보시라.
그 해 한국에 돌아와서 20대 여성 동성애운동가인 한채윤을 만났다. 호주에서 백인 동성애자들을 만나다가 처음으로 한국인 동성애자를 만난 것이다. 채윤 씨의 모습은 마치 평복 입은 수녀 같았다.
그 후 몇 년을 온라인 상담을 했는데 한 번은 '보릿자루'라는 ID를 쓰는 사람이 공격적인 글을 보내왔다. 자신이 전도사라면서 보내온내용은 "당신은 동성애자도 아니고 외국에 살면서 왜 남의 나와바리에 와서 설치느냐? 이곳은 내 나와바리이니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꺼져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온라인에서 그가 활동하는 것을 이미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드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세계동성애자 교회 연합회에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줄 터이니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를 했다. 불행하게도 그 후 보릿자루가 동성애자 세계에서 잡지를 내다가 실패하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동성애자 선교에 대한 열정이 식고 유니테리언 교회와 협력을 하는 일에 집중하느라고 유턴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26년 만에 한채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대답했다. 모든 것이 문제이고 하나도 해결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시급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26년 전의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해결해야할 큰 숙제를 안고 살면서도 밝고 투명한 모습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