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꽃을 쓰세요 나는 시를 썰테니
이원형
잊을만하면 나타나곤 한다
시의 행간에 목 빼고 앉아 먼 산 바라보는 목련
그녀 흰 목덜미에 마음이 흥하여
꽃이나 보러 갈까 하는 당신의 유혹
따라나설까 하는 이 마음의 유흥
수국나라 수문장 같은 당신
꽃보다 유창한 헛꽃의 말인 줄 알지만
내 시에 쏟아 붓는 살가운 환대로 받아
시냇물처럼 졸졸 따라나서지
이꽃 저꽃 시를 쓰는 창가
당신은 또 벌처럼 징징거리지
암술과 수술이 그러하듯이
이 생에 한 번은 해봄직한 신방을 차리고
시의 웃자란 말을 다듬어주는 동안
당신은 꽃에 물을 주고 켰다 껐다 하고
꽃의 흐린 말에도 귀가 솔깃한 당신에게
책상 모서리처럼 지루한 시를 이해시키느라 하루가 터무니없고
내 시를 오해하느라 한 시간이 하루 같은 당신
나무가 꽃을 버린 건지 꽃이 나무를 떠난 건지 분분하지만
그들이 그러하듯이
그놈의 시 때문에
우리 헤어질까 하는 말 꺼내지도 못하네
당신은 꽃을 쓰세요 나는 시를 썰테니
--- 이원형 시집 {당신은 꽃을 쓰세요 나는 시를 썰테니}에서
유혹이란 무엇이고, 유흥이란 무엇인가? 유혹이란 그럴 듯한 말과 행동으로 우리 인간들을 나쁜 곳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하고, 유흥이란 어떤 놀이에 빠져서 흥겹게 노는 것을 말한다. 이원형 시인의 [당신은 꽃을 쓰세요 나는 시를 썰테니]는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 사이에서, 그러나 아름다운 꽃과도 같은 당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너무나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참다운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정신’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당신은 꽃과도 같은 여인이고, 나는 시를 쓰는 남자이다. 당신은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목련”과도 같고, 나는 당신의 “흰 목덜미에 마음이 흥하여” “꽃이나 보러 갈까 하는 당신의 유혹”에 빠져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나 “이꽃 저꽃 시를 쓰는 창가/ 당신은 또 벌처럼 징징거리지/ 암술과 수술이 그러하듯이/ 이 생에 한 번은 해봄직한 신방을 차리고” 싶지만, 그러나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꽃에 물을 주고 켰다 껐다 하고/ 꽃의 흐린 말에도 귀가 솔깃한 당신에게” “책상 모서리처럼 지루한” 나의 시를 이해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녀는 그녀의 꽃밭, 즉, 성적 욕망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나는 그 반대방향에서, 성적 욕망보다는 나의 시, 즉, 정신적 사랑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꽃은 ‘말의 헛꽃’이고, 나의 시는 ‘진실의 꽃’이다. 당신의 사랑은 성적인 유혹이고, 나의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이다. 말의 헛꽃과 진실의 꽃, 성적인 유혹과 시적(정신적)인 사랑 사이에서, 그러나 나는 변증법적인 비책을 통해 “당신은 꽃을 쓰세요 나는 시를 썰테니”라고 사랑을 노래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남자와 여자는 둘이 아닌 하나이며,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도 둘이 아닌 하나이다. 당신과 나의 사랑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지 못한 부조화 때문이지, 당신은 나를 유혹하는 나쁜 여자이고, 나는 당신의 사랑을 거절해야만 하는 착한 남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가 꽃을 버린 건지 꽃이 나무를 떠난 건지 분분”하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그러니까 “그놈의 시 때문에/ 우리 헤어질까 하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은 꽃을 쓰세요”는 당신은 시를 쓰듯이 꽃을 피우세요를 뜻하고, “나는 시를 썰테니”는 나의 시로 영양만점의 음식(사랑)을 대접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나무도 꽃을 버릴 수가 없고, 꽃도 나무를 버릴 수가 없다. 꽃은 모든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대표하고, 시는 모든 남자들의 마음을 대표한다.
시와 꽃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이원형 시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