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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 그늘을 걸어 응봉산에 오르다 .
“산에 가시나봅니다 ?”
“아 ! 네 .”
"아이구 이렇게 더운데 , 날씨 좀 서늘해지면 다니시지 ."
올 여름은 유난히 후덥지근합니다 .
그래서 지인들로부터
요즘 같은 폭염 속에서도 산에 다니느냐는 질문과 더불어
우려 섞인 인사를 듣게 됩니다 .
그늘 한 점 없는 개활지를 줄곧 걸어야 하는 트래킹은 피해야 합니다 .
그리고 산행 중 지나치게 땀을 많이 흘리는 것도 몸에 좋을 리 없고요 .
하지만 산행만큼 효과적인 피서법도 없습니다 .
우선 산속은 도심지 보다 최소한 2~3 도가량 기온이 내려갑니다 .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계곡의 시냇물도 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갑고
게다가 고도에 비례해서 기온이 떨어집니다 .
거기에서 만나는 산들바람은 도심지 에어콘과는 비교불허 !
'피서 '하면 바다가 아니라 '산 '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입니다 .
산행은 기다림과 초조함의 연속입니다 .
셋째 주에 들어서면 벌써 정기산행에 대한 설렘으로 잠을 설칩니다 .
기대란 실상 실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크다는 경험칙이 이성적 판단이라면
내 감성은 늘 이성을 배신하는 것이 되겠지만 ,
어쩌면 그것조차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
내 기대의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
시간이 흐를수록 애정이란 식기 마련이라는
시중의 진리가 어찌 된 영문인지
이곳 산악회에선 외려 반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
앞으로 책임지시요 잉 ~~~!!
오늘 우리 오솔길 가족이 제 113 차 정기산행으로 울진의 응봉산에 오릅니다 .
약속장소에 이르러 손인사와 눈인사를 나누는데
모두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청초한 풀잎처럼
상큼해 보이며 환한 얼굴들입니다 .
등 떠민들 이럴 수 있겠습니까 ?
누구 하나 지각하는 일 없습니다 .
이 아름다운 세상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언젠가 묻혀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인생살이가 참 별개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
세상에 나와 잠시 머물다 갈 시간들인데
지지리도 지루한 세월 속에 갇혀 있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서글플까요 ?
가끔씩 얼굴을 마주하면서 살아가는 형님 , 친구 , 동생들과
또 이렇게 더불어 산도 보고 , 님도 보고 ,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산뜻함만 남더라고요 .
도심을 벗어난 버스는 먼 길에 줄달음을 칩니다 .
숨 가쁘게 달리는 차창에 비치는 주변 풍경이 눈앞으로 휙휙 지나갑니다 .
계절이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으니
더운 것이야 머 척하면 삼천리 , 툭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이니
말해 무엇하리 ....
인천에서는 장거리 산행인지라
시간이 다소 늦은 11 시 20 분이 되어서야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숨고를 틈도 없이 응봉산의 품 안으로 파고듭니다 .
길은 험하나 그만큼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
아이고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
역시 저는 산을 먹고 살아야합니다 .
필수 아미노 山 !
응봉산 (鷹峯山 ).
머 네이버라는 똑똑한 친구에게 내력을 물어보니
별다르게 이야기 꺼리가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
옛날 민요가수 김세레나의 새타령을 들어보면
온갖 잡새의 이름들이 다 나오는데
그중에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
모두 매를 지칭하는 이름인데 해동청은 사냥하는 매를 총칭하는 말이고 ,
해동청의 사냥 실력이 워낙 우수해서 중국, 일본에까지 이름이 알려졌다고 합니다.
해동청 (海東靑 ) 중에서 흰 색깔을 보이는 매를 특별히 송골매라고 한답니다 .
보라매는 태어난 지 일 년이 안 된 사냥매이고 ,
훈련받은 모든 사냥매를‘수(手)지니’라 하고‘날지니’는 야생매를 말합니다.
새타령은 조선시대 일반 평민들이 주로 부르던 잡가 (雜歌 )를
현대 음률로 고쳐 불렀던 것인데
일반 평민들조차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하는 것으로 보아
매사냥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었는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
일전에 고 김종학 피디가 연출하고 배용준이 주연으로 나온 태왕사신기에도
수지니라는 이름의 여인네가 나오는데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니었는지 ...
생각건대 이곳에 나무가 적을 당시에
매사냥이 많이 이루어져 응봉이라는 네임이 붙지 않았을는지 ....
우리 일행들이 한 발 , 한 발 응봉산을 오릅니다 .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첫 걸음부터 마지막 걸음까지 한걸음씩 올라야 합니다 .
그 한걸음이 없으면 정상도 없는 것입니다 .
능선에서 만나는 우람찬 낙락장송들은
응봉산이 상서로운 산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
잘생긴 노송들이 길 중간에 척척 자리하고 있어
잠시 숨을 고르고 가기엔 안성맞춤입니다 .
삶이 누르고 있는 숨통을 트이게 하는 산 .
하지만 모든 것은 주고받음이 있습니다 .
마음이 가벼워지는 만큼 몸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니까요 .
7. 8 월 염천 (炎泉 ).
손가락에 묻은 아이스크림에도 미간이 찡그러질 판인데
오늘 산행은 장마가 지나 간지 며칠 되지 않아서
습도가 높아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하여 G R 같습니다 .
그리하야
산행코스를 B코스로 정하고
오늘은 B코스 여인네들하고 어찌 어찌해 볼 심산이었는데
“아! 형님, 산행보다는‘알탕’에서 시간이 충분하니....”
총무님의 일침에 그만 A코스로 ....
남의 타는 속도 모르고
무심한 하늘은 그저 청청하게 드맑기만 합니다.
푸릅니다.
너무도 푸르러서 눈조차 제대로 뜰 수가 없습니다.
일행들은 많이 지쳤는지 힘든 기색이 역력합니다.
우리에겐 이토록 힘들게 올라야 하는 정상이지만
구름은 너무나도 편안하게 그곳을 지나갑니다.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렇게 야성을 상실해 가나 싶어서 약간 서글픈 마음도 듭니다 .
구질구질한 세상을 훌훌 털고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걸어야겠습니다 .
누군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면 불편한 게 인지상정 (人之常情 )인데
더군다나 날씨마저 불볕더위와 함께 발길을 내밀었으니 더할 밖에요 .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
산길 만행 (卍行 ).
응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산행길이 하염없이 멀기만 합니다 .
그 옛날 오래 전에 스님들의 시주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수행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여 봅니다 .
그 때 당시에 무슨 기능성 신발이 있었을까요 ?
속도를 1/3 로 늦췄습니다 .
기분 좋게 안단테 , 안단테 ....~~ 콧노래가 나옵니다 .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만 좋아한 것이 아닙니다 .
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참 좋아합니다 .
산행을 좋아하는 그 마음 하나로 따뜻한 인연이 되는 길에서
험한 길의 힘겨움도 비경의 황홀함도 모두가 같이 나누며 걷습니다 .
향수란 지나온 공간과 시간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입니다 .
무의식의 창고 깊숙이 숨어 있다가
소쩍새 울음 같은 시그널에 암호가 풀리는 것처럼
상념이 되어 떠오릅니다 .
이곳 울진에서 영주로 넘어가는 불영계곡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이곳 응봉산이고 왼쪽에 통고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몇 해 전에 다녀왔던 통고산 왕피천 .
길 (路 )따라 천 (川 )따라 허벅지 실핏줄처럼 한농마을은 얽혀져 있었습니다 .
<모두가 남이 아닌 일가 마을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다 건 이교도집단 ....
모든 것을 유기농법에 입각하여 성실히 일한대로 열심히 일구어
목구멍이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 더욱이 돈 거래가 필요 없는
어쩌면 너무나 순박한 백성들이 살고 있는 평화의 마을 ....
너무 순박하고 평온스럽다 못하여 카더라 풍문에 의하면
사람을 납치해서 자기네 편으로 꼬신다는 설도 전해지고
특히 ‘네 것 , 내 것 ’이 없는 관계로
심지어 내 남자 , 네 여자도 없이 아무나 한 이불을 덮고 잔다는 둥
해괴한 풍문이 자자한 적도 있었던 마을입니다 .
정말로 풍문대로 <내 남자 , 네 여자 >가 따로 없어
아무나 하고 몸을 섞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곳이야 말로 지상천국이 아니겠는지요 ?
하여간에 허벌나게 좋다는디 ....
설마 스와핑 집단이기야 할까 하고
제대로 한 번 찾고 싶었는데
오늘도 옆만 살짝 스치고 갑니다 .
이곳 울진은 예전에는 강원도 삼척도호부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
1963 년 군이 강원도 관할에서 경상북도로 이관되고
최근까지 울진 ·평해의 두 지역으로 나뉘어 발전해 왔습니다 .
김대중 정권 때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 씨가 이곳 후포 출신입니다 .
그 분이 동문인 후포고등학교에서 했다는 연설이 떠오릅니다 .
“우리 후포고등학교는 최고입니다 . 후포에서는요 .”
지당하신 말씀을 연설문에 까정 ....
응봉산이 있는 이곳 울진은 나에게 두 가지의 추억이 있습니다 .
하나는
어찌하여 이곳 죽변항 봉평해수욕장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한 일이 있었는데
울진에서는 제일 크고 시설 또한 제일이라서
지역 유지 대우를 받으며 지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지역 행사에 찬조도 많이 하고 발전에도 쪼끔 기여한 탓에
관공서 직원들 , 주민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다보니
울진에서는 어디를 가나 외상술 정도는 대수도 아니었으며
미친 넘처럼 술에 취해 케세라세라만 외치고 시내를 활보하면
파출소 직원들이 나를 태워다주고 , 차는 다음 날에 직원이 가지고 왔으며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업소 앞 주차장 300 여 평의 눈을 중장비로 치워주고
염화칼슘을 10 여 포씩 내려주고 갔습니다 .
둘은
울진에 내려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술집에 술을 마시러 갔는데
써빙하는 여인네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맥주나 몇 병 마시고 갈려는데
주방에서 나오는 여인네에 그만 ....
“얼씨구나 좋구나 , 지화자 땡이로구나 ”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지요 .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다는 것은
그건 그간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
모레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은 듯이
마음이 서걱서걱합니다 .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
포항과 속초 간의 고속국도가 뚫리기 전
7 번 국도변의 항구와 작은 지자체들은 차가 밀릴 정도로 번영했습니다 .
울진의 죽변항은 전국 면 단위에서 차량 보유대수가 제일 많았으니까요 .
그러나 이젠 그 편리함을 위해 만든 고속국도로 인하여
사람들은 찾지 않고 경제는 피폐해지고
불야성을 이루던 오징어 배의 집어등은 희미할 뿐입니다 .
이처럼
날마다 자라나는 우리나라의 동맥 같은 도로들은
어느 지역을 풍요롭게도 , 낙후하게도 만드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 때문에 나도 업소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
수천 년 모진 풍상을 격은
소나무 숲 사이를 한발 한발 내딛으며
수천 년을 말없이 묵묵히 버틴
인내를 배우며 지납니다 .
소나무는 한자로는 송 (松 )이라고 씁니다 .
나무 (木 ) 중에서 가장 귀한 (公 ) 나무임을 나타낸 것이지요 .
외국의 어느 나라에선 쓸모없는 나무로 인식해서
소나무를 모두 베어냈다고 합니다만 ,
우리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독야청청 늘 푸른 소나무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푸르게 자리 잡고 있는 민족의 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척박한 토양에서도 꼿꼿이 뿌리내려
사시사철 변함없는 솔향기로 숲속을 가득 채우는 소나무
우리가 이를 나무의 으뜸으로 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한두 가지 이유만이 결코 아닌 듯싶습니다 .
헌데 전국의 소나무들이 재선충 병으로 인하여
앞으로 20 여년 후에는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다는 소리가 있으나
저는 절대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
당국에서의 철저한 방역도 있어 다행이지만
소나무는 우리의 민족처럼 꿋꿋하게 이겨낼 것이라 믿기에 ....
우리나라가 이처럼 산림보호에 힘을 쓰다 보니
지금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조림 성공국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그리하여 이렇게나마 아름다운 산으로 남았지 않나 생각하면서
또한 이러한 보호활동은 미래세대와 북녘 땅을 위해서도
지금에 사는 우리들의 약속이 아닐까하고 한 번 생각해 봅니다 .
또한 단속이라는 말보다는 우리 산객들의 문화가 성숙되어
지금을 사는 사람들도 찾으면서 보호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하는 쬐끄만 소망 하나를 품어봅니다 .
제가 무슨 대단한 환경론자는 아니지만
얄팍한 지식으로 아는 체하며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
개똥철학은 누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
출발한지 3 시간
이쯤 되니 오르는 길이 무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듭니다 .
하지만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끝이 있는 법 .
언뜻 이런 산골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았을까 ?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러나 척박하면 척박한대로 사람들은 그 적응하는 법을 터득하며 살아갑니다 .
양철지붕 위에 올라선 고양이처럼
다리를 번갈아 가며 들어 올려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여서
짜증만 키우다 인내의 수위가 한계를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
“더위 네 이늠의 (시키 )....
니 언제까지 청춘일줄 아네 ....”
용광로의 쇳물마냥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
응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거친 길은
어느덧 대화마저 잊게 만듭니다 .
이 드라마가 언제 끝날지 ....
또 어떻게 결말이 날지를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
바라만 볼 수밖에 없어서 바람이라고 했던가요 ? ....
나무들 위 가지는 지가 살아서 움직이는지, 바람 때문인지 알 수 없고 ....
육체가 한계에 다다를수록 의지는 뜨거워집니다 .
목표가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
숨이 가빠질 때쯤 그 끝에 올라섰습니다 .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일에
그만한 수고와 고통이 수반됨을
우리들이 모르는 바는 아니나
시시때때 혀끝으로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날이 많습니다 .
나라는 사람은 그래서 못나기 짝이 없는 문명인입니다 .
애쓰고 버둥거려도
자연 그대로의 숲에 미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 때가 많습니다 .
정상에서 맞는 오찬
아마도 그 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자리를 잡고
오찬을 즐기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
언제나 술 인심 풍성하여 막걸리에 맥주까지 다양합니다 .
주님 앞에 남녀노소 불문 , 주정청탁 불문 . 만취대취 불문이라는 삼불문이
이날 이후 전해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
술에 팔인팔색의 안주가 있고 ,
아름다운 여인네들과 자리를 같이 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
닭발이 어찌나 무르고 쫄깃하고 앙징맞고 맛있어서
배속에서 "그만 " 외쳐도 혀는 "또 " 땡기니 ,
한 몸뚱이면서도 각자의 위치에 따라 배반의 장미가 꽃피는 이 무슨 조화일까요 ?
암튼 닭발이 그리워 산행에 참여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
(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이겠지요.)
어디 닭발뿐이겠습니까 ?
가지고 오신 모든 음식이 제 입맛에 맞습니다 .
또한 등짐의 무게와 산행의 피로감은 비례하는 것인데
그 모든 것 다 제쳐두고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과 정성에
이 자리를 빌러 감사의 말씀과 사랑을 전합니다 .
일미를 맛보아 즐거움이고
등짐을 비워서 다행이니 ....
하산하는 발걸음이 더욱 가볍습니다 .
버리고 온 세상 길 다시 찾아
이젠 하산을 서두를 때입니다 .
아래에 알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올라갈 때는 살아온 삶처럼 갈 길이 멀게 느껴지고 발걸음을 떼기도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때는 앞으로 살아갈 삶처럼 길은 짧게 느껴지고 발걸음은 빨라집니다 .
나는 잠시 나옹 선사의 시를 떠올리며
‘말없이 살라하는 산 ’과
‘티 없이 살라하는 창공 ’을 올려다봅니다 .
올 때와 떠날 때는 다른 법 .
큰 바윗돌 위에다 저 곧은 소나무 베어서 서까래를 걸치고
벽을 황토로 떡칠 삼아 초가삼간이라도 지어 살아보고 싶습니다.
마음에 두는 것은 삶의 환경에 따라 변절될 수 있으니
사진이라도 한 컷 ....
하산 길에 계곡이 가까워지자 새 소리 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듯 주위가 훤히 밝아옵니다 .
아 ! 알탕 알탕 .... 송림동 알탕 말고 ....
내림의 길에서 여인네들만의 은밀한 일(소P)로 인하여
잠시 커다란 소나무가 짙게 드리운 그늘에 앉아서 쉼과 수다를 떱니다 .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느라 흘린 땀을 바람이 식혀줍니다 .
드뎌 덕구온천 원천에 이르렀습니다 .
필경 지역민이 두고 간 것으로 보이는 손잡이가 있는 물바가지는
비록 시골 틱한 표주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목이 타는 나그네의 숨통을 터주는 데에는 그만한 것도 없어 보입니다 .
다시 알탕을 되뇌이며 용소에 이르렀습니다 .
찬물에 발을 담구고 담배 한 개피 물으니
종아리에 몰렸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집니다 .
저 맑은 옥색 물빛에 빠져 들어 간 것은 내 마음 뿐일까요 ~??
NO~~no~No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무척 좋아하지요 .
예전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경관이 빼어난 곳을 찾아 거기에 자리를 잡고
산천경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마음을 수양하고 ,
시를 읊는 지극히 정 (靜 )적인 산행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
코스 즉 선 (線 )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포인트 즉 점 (點 )을 찾아 머무는 개념이었죠 .
그러다가 서양의 등산개념이 들어오면서
점차적으로 정 (靜 )적인 산행에서 동 (動 )적인 산행으로 바뀌었습니다 .
그렇다고 해서 지금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
쉼과 움직임이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산행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
저는 그것을 풍류산행이라 생각합니다 .
온 세상이 뜨겁게 달아올라도
이곳에선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
아무튼 더위와 땀과 싸우며 걸은 산행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모두들 잘 내려왔습니다 .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연이든 필연이든
많은 사람과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
나와 함께한 인연은 오래도록 소중하고
아름답게 지켜가고 싶습니다 .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지요 .
철따라 세월가고
세월따라 청춘가니
오는 백발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지요 .
품안 자식들도 제 새끼 만들어 다들 떠납니다 .
사진을 찍는 일에서도 , 산행에서도
깨끗하게 들어온 빛이라야
예쁘고 선명한 색으로 갈무리됩니다 .
오늘 응봉산행을
추억 속으로 갈무리 합니다 .
맘에 맞는 사람들과
산이라는 이 멋진 공간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그것이 바로 진짜 힐링이지요 .
거기에 뽕이라도 딴다면 금상첨화구요 .
놀아본 쥐는 웃을 줄도 압니다 .
인간이 현대의학으로 모든 병을 이겨내고 있다지만
노화 (老化 ), 즉 늙는 병만은 아직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
그렇다면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것이 최선입니다 .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산행이라고 합니다 .
상경길 차안에서 오늘의 일정을 돌이켜봅니다 .
아날로그 시간보다 7 배가 빠르다는 디지털 인터넷시간의 세상에서
방향을 잃은 나는 그저 Analog 식 등산이 체질에 맞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걸음걸음 내딛을 때마다 전해지는 발바닥 촉감 , 무릎관절 삐걱대는 소리 ,
묵언으로 잠행하듯 묵묵한 발자욱의 울림 ,
원시의 쏟아지는 햇살과 숲의 광합성 따위 등
주파수가 오늘도 내 원시의 잠재를 일깨웁니다 .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도 산행의 묘미는 여전히 옛 그대로입니다 .
이 느낌을 마지막 숟가락 놓는 그날까지
계속 가지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며 ,
내일도 현실의 벽에 굳건히 맞서리라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
평범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벼랑 끝에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좋은 집에서 말다툼보다
작은 집에 행복 느끼며 ....
흘러간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하던가요 ?
푸른 7 월을 만끽하며 갔던 길
되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 만난 사람은 다 아름다웠습니다 .
눈과 가슴이 행복....
자연이 주는 선물....
콕콕 담아놓고 살면서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
추억의 창고에서 꺼내볼 수 있는 행 ~~복 ~
산행을 다녀온 지가 벌써 언제인데
일에 밀려 . 더위에 지쳐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려니
금세 자신감이 없어져 마음이 헝클어집니다 .
식은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질 않고
어딘가에 걸린 듯 했는데
이렇게 늦게나마 기억을 더듬어 졸필 휘둘러봅니다 .
우리는 가끔 이렇게 시간과 계획을 조금 어겨도 괜찮습니다 .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대세에는 별 지장이 없으니까요 .
산행기가 늦었다고 책망하시면 또 달게 받겠습니다 .
응봉산의 즐거운 산행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면
전적으로 내 표현부족 탓입니다 .
8 월에 한탄강에서 봐요 .
그 안에라도 보고 싶음 폰 때리세요 .
꼭 참석한다는 답은 그 때 시간 봐서 드릴께요 ....
안뇽 ~~~~
2018. 7. 22,
ㅇ ㅖ 소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