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 많음이라
(사도행전 18 : 1-11)
사도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때 소아시아에 잇는 교회들을 세우고, 2차 전도 여해은 1차 전도 여행때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는 것과 교회가 아직 설립되지 않는 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밤에 환상이 사도바울에게 보여 마게도냐로 향합니다. 마게도냐 첫성 빌립보에서는 귀신들린 점쟁이의 귀신을 쫓아내는 바람에 그 주인의 고소를 당하여 매 맞고 투옥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그 빌립보 지경을 황급히 벗어나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는데 유대인들이 괴악한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사도바울을 몰아낸 배뢰아로 갔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원정 오는 바람에 거기서도 황급히 아테네로 도망갑니다.
결국 조롱만 받고 계속 반대를 당하고 어려운 상황속에 있었고 지치고 낙심한 상태에서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 시작하였습니다.
1.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살았습니다.(3절)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하는데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살아 갔습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16장 3절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평가하기를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같은 사람이 있기에 고린도교회가 사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강론이 되고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권면합니다.
신명기 6장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사도행전 18장 4절에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능력, 감사는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할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으로 동참하고 기도로 동참하고 감사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2.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였습니다.(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 오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리스도’란 원래 ‘기름을 붓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말은 구원자, 메시야이라는 말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에게만 기름을 부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란 말은 예수님께서 제사장으로, 왕으로, 선지자로, 오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씀의 의미는 먼저 예수가 제사장으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하는 역할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제사를 드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따라서 예수님이 제사장으로 오셨다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흠 없으신 온전한 가운데 드려진 피로 말미암아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토록 백성들의 죄를 사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1-12절에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죄사함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말씀은 그 분이 왕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왕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멜렉’인데 그 뜻이 ‘다스리는 자’라는 뜻도 있지만 ‘보호하는 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뜻은 왕의 권세를 가지고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의미는 그 분이 선지자로 오셨다는 말씀이다.
·선지자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우리에게 선지자로 오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결국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통달하는 성령님께 뜻을 묻고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선지자로 오신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권면하였더니 유대인들이 대적하고 비난 하였습니다.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으로 옮겨져 갈 것이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 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시편 34편 9절에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잠언 19장 2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시편 2편 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3.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었습니다.(8절)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레를 받았습니다.
밤중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셨습니다.
일 년 육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본문 9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결국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복음전파 하는 데는 결과에 대해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전하는 것뿐입니다. 전해서 효과가 있을까 이 사람이 믿을까 안 믿을까―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요.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나는 씨를 뿌리면 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에는 남녀노소 지위 고하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야 되는 것이므로, 누구든지 다 죄인이므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어떤 이유로든 간에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으로 오늘의 본문에 강조된 말씀은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하십니다. 대단히 귀한 말씀입니다. 깊이 새겨두어야 하겠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착각에 빠질 때가 있어요.
내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면 "너나 잘 믿어라"할지도 몰라요. "당신처럼 믿을 바에야 그만두겠어" "당신이나 제대로 믿어"―이런 말을 듣는 한이 있어도 복음을 전해야 돼요. 왜요? 하나님의 말씀에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잠잠하지 말고 말해야 합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여기에 영생이 있고 구원이 있고 평강이 있고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직은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백성이 여기에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가 잠잠하면 구원을 받겠느냐? 하나님 백성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는 중요한 사명이 수반한다는 것을, 경륜이 거기에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돼요.
"내 백성이 많다"―그런고로 전도하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도성에 많습니다. 의정부에 많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면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에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청년바보의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기독교인 안수현이라는 의사입니다. 안수현의사가 병들어 33살에 죽었습니다. 33살에 장례식장에 4천명이 몰렸습니다. 안수현의사가 살아있는 동안에 선행이 했습니다. 그 선행의 은혜를 입은 그 가족과 친척들이 몰려 온 것입니다.
안수현 의사는 자기 환자들을 병실에 돌아 다니면서 기도해 주고
자기 환자들중에 죽으면 장례식장에 가서 위로해 주고
병원비가 없어 고생하는 조선족 사람을 대신하여 병원비를 대납하고
어린아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산까지 가서 선물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안수현 메일에는 스티그마 안수현이라고 하였습니다.
스티그마는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나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안수현의사는 말과 행동에 예수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 가는 사람입니다.
고린도교회를 통해 승리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는 사람들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더불어 주를 믿는 사람들로 죄사함을 받고 지혜와 능력있는 사람입니다.
환상을 통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는 사람들로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