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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 설 연휴 가족여행
아들 내외가 직업군인으로 21년째 전후방에서 복무하고 있다. 군 선배로서 군 복무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관학교 교수로 복무했던 내가 알고 있는 야전 생활의 실정은 그 일부에 불과했다. 특히 온 가족이 모여 단란한 정을 나누는 명절 때는 아들 내외는 이제까지 단배(團拜)라는 전통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부대 장병들과 늘 함께해야 해서, 손자와 손부로서 차례상에 술 한 잔 올리지 못하고 성묘도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지내왔다.
나는 있는 건 시간밖에 없는 교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온가족이 다 함께 여행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그것이 아들 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어, 호시탐탐 가족여행을 한번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손주들에게도 할아버지와 함께 떠난 여행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야, 먼 미래에 두고두고 차례를 지낼 때마다 내가 남긴 가장(家狀)과 우리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하여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설날 연휴는 금토일월 나흘간이어서 온 가족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어서 내가 먼저 가족여행을 제의했다. 그러자 아들은 참모 직책에 있어 휴가가 가능하나, 전방에서 대대장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며느리는 최근 들어 단배의식은 사라졌지만, 하급자들에게 연휴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본인은 부대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지휘관의 본분이고, 또 앞으로도 보직 관리상 여유시간을 장담할 수 없으니 본인을 빼고라도 한번 다녀오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 부부·아들·손주 그리고 딸 가족이 함께하는 다음과 같은 일정의 여행을 추진했다.
1일 차 2/09(금) 차례를 위해 아들과 파주 며느리 집으로 이동하면서, <마장호수> 산책하고 <벽초지수목원> 견학
2일 차 2/10(토) 08:30 설 차례를 같이 지내고, 며느리는 부대 출근. 딸은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평창 라마다호텔로 이동
3일 차 2/11(일) 08:00 파주 출발-11:00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참배-14:00 <발왕산 케이블카> 탑승-17:00 <대관령 양떼목장> 방문-18:00 평창 라마다호텔에서 아들·딸·사위·손주들과 가족 식사-21:00 딸 가족 귀경
4일 차 2/12(월) 08:00 라마다 출발-10:00 지평 이재효 갤러리 방문-12:00 서울 도착-13:00 아들 휴가 마치고 근무지로 복귀
마장호수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 451-2에 있다. 2001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된 저수시설로 호수와 산기슭으로 연결되는 데크로 조성된 둘레길은 3.6km에 달해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이 족히 걸린다. 호수 주변에는 산책로, 220m 길이의 출렁다리, 15m 높이의 전망대, 수상레저 시설, 캠핑장, 유명 카페와 맛집 등이 있어서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울 근교의 관광과 휴양을 접목한 대표적 수변 테마공원이다.
벽초지수목원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부흥로 242 도마산초등학교 맞은편에 2005년 문을 연 수목원으로 면적 12만㎡로 27개의 동·서양의 정원으로 조성돼 있다. 그리고 ①설렘의 공간: 빛솔원, 여왕의 정원, 하경원에서 펼쳐지는 꽃과 식물의 화려한 꽃 정원, ②신화의 공간: 베르사유 스타일의 프랑스 정원부터 이탈리아의 워터가든까지 유럽의 영웅과 신들이 함께하는 고풍스러운 유럽 정원, ③모험의 공간: 모래놀이, 숲속 모험, 나무 쉼터 등 100% 친환경 숲속 놀이터, ④자유의 공간: 파주의 아치를 지나 끝없이 펼쳐지는 잔디광장, ⑤사색의 공간: 낭만적인 사색을 즐기는 장소, ⑥감동의 공간: 물, 나무, 바위, 교각, 정자, 수중관람 데크 등 벽초지수목원의 하이라이트인 연못 정원이다.-이상 6개의 테마로 나누어져 있다. 수목원 입구를 들어서면 중앙에 설렘의 공간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동양식 정원과 반대편 프랑스식 말리성 문을 들어서며 시작하는 서양식 정원들로 조성돼 있다. 1,000여 종의 식물들과 함께 사계절 변화하는 수목원의 모습은 드라마 <빈센조>, <호텔 델루나>, <태양의 후예>, <별에서 온 그대>, <영화 아가씨> 등 매년 수십 편의 영화나 드라마에 담겨 있어 작품 속 풍경을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즐길거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게도 동절기에 방문하여 화초·나무·연못이 조화를 이룬 벽초지수목원의 절경을 보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들이 운전하여 중부고속도로와 광주원주고속도로를 경유 영동고속도로 접어들자 멀리 치악산과 고산준봉들이 보이면서 태백산맥이 세로 지르는 강원도로 들어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양지쪽은 잔설이 녹는 편인데, 강원도는 적설량도 많고 기온이 낮아서인지 사방에 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 설경을 감상하기에는 그런대로 좋았다.
오대산 방향으로의 여행은 25년 전 대구대 국문과 동료 교수들과 하계연수차 들린 후 처음이라, 익숙도 하면서 낯설기도 하였다. 오대산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서 동대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산 전체가 불교성지라고 하겠다. 자장율사에 의해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되었다. 자장은 중국으로 유학하여 산시성 오대산의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 이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하면서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이후 귀국하여 찾게 된 곳이 강원도 오대산이며, 이때 월정사를 창건하였다. 상원사는 양산 통도사·인제 봉정사·영월 법흥사·정선 정암사와 더불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한 곳이다. 25년 전 월정사 입구 전나무의 퍼레이드를 보면서 느낀 바가 있어, <월정사 전나무처럼 살리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 글의 일부분만 적어보고자 한다.
매년 오대산을 찾는 백만이 넘는 탐승객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여기에 오는 걸까? 오대산의 후덕함을 보기 위해서인가, 상원사의 적멸보궁에서 석가를 친견하기 위함인가, 세조대왕처럼 문수동자를 만나기 위함인가, 신선이 된 한무외처럼 수단복지(修丹福地)를 찾아서인가, 아니면 백두산으로부터 내려오는 큰 줄기[白頭大幹]의 중심부를 정복하기 위해서인가. 제언하건대 나는 하늘 향해 힘찬 기지개를 켠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를 보기 위하여, 그리고 그것을 보고 이제까지 훼절과 실수로 얼룩져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 위해 오대산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동안 우바새로서 참선에 정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자 바로 상원사로 달려가 부처님 진신사리 앞에서 좀 더 참다운 불자가 되겠노라고 다짐하는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발왕산 케이블카는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로 715 ‘왕[챔피온]이 날 자리’란 의미의 발왕산(發王山)에 있는데, 평창올림픽을 개최한 곳인 발왕산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다. 안정성과 속도감이 뛰어난 100대의 8인승 케빈으로 왕복 7.4Km를 오가는 국내 최대 길이의 발왕산 관광 케이블카는 드래곤 프라자 탑승장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높은 해발 1,458m의 발왕산 정상의 드래곤 캐슬 하차장에 이르는 데 18분이 소요된다. 케이블카에 탑승하면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한 유유한 멋과 싱그러운 자연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스카이워크로 올라가서 4방 일망무제의 주변 산들을 둘러보면 가슴이 뻥 뚫리면서 자연의 순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시원한 산들 바람, 아름다운 풍경, 깨끗한 공기가 몸을 정화한다. 그런데 우리는 스키 시즌에다 연휴 기간이 겹쳐 주차장과 스키장 리프트와 공유하는 케이블카 이용으로 한마디로 인산차해여서 30분 헤매다가 주차를 겨우 했고, 다시 티켙을 발급한 후 2시간 반을 기다려서 탑승할 수 있어서 힐링 나들이가 아니라 고생 나들이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 세대만이라도 한가한 시간대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마루길 483-32에 있는 대관령양떼목장은 발왕산케이블 승차장에서 10㎞ 20분 거리에 있다. 20만 5,000㎡의 넓은 초지에 양들을 자유로이 방목한다. 여기서 즐길거리는 산책로 걷기와 먹이 주기 체험이다. 목장을 에두르는 1.2km 길이의 산책로는 40분 가량이 소요된다. 야생식물이 자라는 산책로를 걸으며 초지에서 풀을 뜯는 양 떼를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양은 초지 풀이 자라는 5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방목되고, 겨울에는 축사 안에서 사육된다. 산책로 중간 지점이자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목장 정상인 해발 920m에서 바라보는 백두대간은 막힌 가슴을 시원스럽게 뚫어준다. 산책로 마지막 코스인 먹이 주기 체험장에서는 축사 안의 양에게 건초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릎 높이까지 쌓인 눈으로 산책은 불가했고, 손주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양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다시 7㎞ 14분 거리에 있는 평창 라마다호텔로 가서 딸 가족과 회동했다. 라마다호텔&스위트 강원 평창은 강원 특별자치도 평창군 오목길 107에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하여 프랑스 파리의 건축가 '스테판 쁘리에'가 한국의 자연과 문화를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건축 공간을 창조한 호텔로 36,000㎡의 대지 주변으로 펼쳐지는 평창의 아름다운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건축물이다. 호텔의 생김새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원도의 산들이 '평창'의 정체성이자, 아름다움의 근원이라는 생각으로 산들로부터 대지까지 이어지는 강원도 산마루의 형태[Ш]를 이어받고 있다. 고루포기산의 능경봉을 등지고 대관령을 바라보는 산자락에 있는 호텔에서는 모든 객실에서 대관령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모든 객실이 다락방이 있는 구조라서 3대 5명이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고, 회원권 보유 시 저렴하게 목욕탕·헬스시설·조식 뷔페를 이용할 수 있어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휴양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호텔 지하 1층 식당에서 석식 후 딸 가족은 객실로 돌아와 우리 부부에게 세배를 하고 21:00에 귀경길에 올랐다.
12일에는 서울로 복귀하여 아들은 다시 근무지인 대전으로 내려가야 하기에 서둘러 08:00 간편 조식 후 귀경길에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출렁다리와 울렁다리가 있는 국내 최고 관광지로 평가받는 원주 소금산관광지에 들르고 싶었지만 트레킹에 3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시간 관계상 생략하고, 대신 경기 양평군 지평면 초천길 83-22에 있는 이재효 갤러리에 들렀다. 이재효 갤러리는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설치 예술가인 이재효 작가의 작업실, 전시장, 카페가 함께 있는 공간이다. 외딴곳에 있는 문화공간이지만 천장에 붙은 낙엽, 공중에 매달린 돌멩이 등 둘러볼 곳이 많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 놓았다. 돌, 나무, 못, 낙엽 등의 소재로 제작된 작품들과 드로잉 작품을 관람할 수 있으며 총 5개의 전시실과 카페로 구성돼 있다. 기존 갤러리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을 만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장소라고 생각된다. 나는 무언가 남과 달라야만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들·손주들을 솔거하여 이곳을 찾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일찍 서두른 결과 마지막 날 러시아워를 피해 12:00에 서울 아파트에 도착하여 점심을 같이 먹고, 13:00에 아들은 다시 근무지인 계룡대로 떠났다.
오랜만에 기회를 포착하여 차례(茶禮)를 겸한 3박4일 설 연휴 가족여행을 다녀오니, 운전은 아들이 했지만 나의 육신은 조금 피곤하나 마음만은 즐거웠다. 세뱃돈과 여행비를 결산해보니 얼추 100만 원 정도 지출한 것 같다. 이 정도 지출하여 견문을 넓히고 가족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했으니 가심비 높은 여행이 아니겠는가. 앞으로도 시간을 쪼개어 아들딸 가족과 회동하는 가족여행 일정을 자주 잡으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이때는 아들딸이 경제적 부담감 없이 흔쾌히 동참할 수 있도록 이번처럼 부대 경비는 내가 전적으로 부담하려 한다.
최고의 모임은 수백 명이 시중드는 자리가 아니라, 부부 아들딸 손자와의 만남이다. -추사 김정희
(2004. 2. 13.)
첫댓글 매우 의미있는 설연휴를 보내셨군요.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있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결단을 잘 내리고 실행에 옮긴 갈헌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나도 출국이 좀 늦어지는 바람에 아들내외와 조카 손자들 세배를 받았습니다.
대를 이어 군문에 들어 위국 봉사하는 갈헌의 가족이 존경스럽습니다. 여의치 않은 여건이지만 갈헌의 세심한 준비와 건사로 차례도 올리고 알찬 가족 여행도 즐기는 호사를 누리시는군요. 사실 모든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을 하기가 쉽지 않지요. 갈헌이 이니셔티브를 취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찬사를 드립니다~
갈헌의 가족 사랑은 참으로 아름답네요. 자손들과 더불어 의미있는 여행을 하신 갈헌 가족에 대해 경의와 부러움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