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만 해도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음악 감상, 독서, 사색 등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미술관에는 거의 가본 적도 없으면서 미술 감상이 취미라며 고상을 떠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등산, 수영, 스케이팅, 스키, 골프, 자전거 타기 등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왜 그렇게 대답이 달라졌을까? 그 까닭은 삶의 방식이 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일상의 일이란 게 주로 근육을 사용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여가시간에는 피로한 근육을 쉬게 하고 달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근육 운동에 의존한 생활은 빠르게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니 쉴 때 즐기는 취미란 게 예전과는 달리 위축된 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쪽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서 돈 드는 활동 참여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조건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건 그렇게 생활과 노동의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_ 57쪽, ‘막다른 골목에서 찾아낸 기회’ 중에서
인식적 측면에서 수평적 사고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지배적 사고만 고집하지 않고 새롭고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창의력 전문가인 에드워드 드 보노Edward de Bono는 창의력은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에 의해 증가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수학을 배울 때 더하기를 먼저 배우고 곱하기를 나중에 배운다. 더하기를 아무리 배워도 곱하기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수학적 확장은 불가능하다. 수직적 사고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기존의 유형에 맞춰가게 할 뿐이다. 새로운 가정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게 바로 수평적 사고다. 수직적 사고로는 현대가 요구하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창의력이 심각하게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_107쪽, ‘우공이산愚公移山은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중에서
그러나 근대 이후 지도를 제작하면서 이러한 시각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지도를 보면 늘 북반구가 위에 있고 남반구는 아래에 있다. 그 지도를 뒤집어 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 지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여기에는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유럽은 지도의 상단에, 아프리카는 지도의 하단에 표시된 것은 그 지도의 제작자나 국가의 가치관이 철저하게 투영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지도는 문명에 나타난 세계관이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시각적 요소와 개념적 요소가 명백히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지도는 서양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형성하는 권력의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_133쪽, ‘가끔은 지도를 뒤집어 보자’ 중에서
일제는 교묘하게 우리 역사서를 편의적으로 골라 왜곡하며 식민사관을 심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포석정이다. …『삼국유사』 「경애왕편」에 ‘11월’이라고 한 기록만 유심히 봤어도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도대체 왜 그 추운 겨울에 야외에서 주연을 베풀며 놀았을까? 그리고 아무리 한심한 임금이라 할지라도 남의 나라에 원병을 청할 만큼 위급한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을까?’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애왕은 왜 포석정에 갔을까? 사실은 거기에 포석사라는 ‘사당’이 있었다. 포석사는 문노文弩라는 화랑을 모신 사당이었다. 문노는 모든 화랑의 모범이 되는 화랑이었다. 그러니 포석사는 성지였고, 경애왕은 바로 포석사에서 문노에게 나라를 지켜달라고 제사를 지내러 갔던 것이며, 경주의 도읍 백성들에게 문노를 본받아 신라를 지켜내자는 일종의 정치적 이벤트를 하러 갔던 것이다. 술판 벌이고 무희들을 희롱하러 간 것이 아니다!
_157~158쪽, ‘포석정에는 정자가 없다’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