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 야고보 신부님 이야기
- 차동엽 신부님 -
하느님의 뜻을 절절하게 묻는 이에게
깨달음을 주고 힘을 주는 한 신부의 사연이 있다.
차동엽 신부님께서 교구 사제 피정에서 직접 듣게 된
한 신부님의 사연을 소개 하셨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부산교구의 허성 야고보 신부이다.
신학교에서 쫒겨나고, 수도회에서 쫒겨나고 선교사로 떠돌다가
천신만고 끝에 41세의 나이로 신부가 된 허 신부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6살 때 허 신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상여를 뒤따라가며
하느님을 많이 원망했었다고 한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형들이 산에서 주워온 기다란 막대기 두 개에
요를 말아 그걸 상여로 삼았을 정도였다.
형수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자란 허 신부는
16세 때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대신학교 4학년을 마칠 무렵, 학장 신부가 그를 부르며 하신 말씀이
"짐을 싸서 이곳을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여주신 종이서류에는
"이학생은 본당 신자들을 분열시키는 성품을 지녔다."라는
본당 신부님의 소견이 씌어 있었다.
발단은 이랬다.
방학 때 본당에서 청년들과 함께 성탄 준비와 행사를 잘 마치고 난 뒤,
한 구역의 청년들이 "학사님 수고했다." 며 떡을 해 왔다.
이를 안 다른 구역의 청년들도 앞 다투어 떡을 해 왔고,
질투심과 소외감 때문인지 싸움이 붙었던 것이다.
그 일로 신학교에서 제적을 당한 허 신부는 고민하다가 수도회에 찾아 갔고
그 곳에서 평수사로 허원하게 된다.
직분은 주방 업무였다.
옛날 주방에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음식 조절이 무척 까다로웠다.
음식이 모자라면 굶어야 했고,
음식이 남으면 원장수사께 묵주기도 15단 보속을 받았는데
공동생활을 하면서 묵주기도 15단을 따로 바치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도 밥이 남자 허 신부는 머리를 썼다.
시장에서 누룩을 얻어와 막걸리를 담고
원장 수사가 기분이 좋을 때 내와서 함께 마셨다.
그러나 수도회에서 7년간의 생활을 타의로 인해 그만두게 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은 그 일 뿐인데
또 한 번의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이에 허 신부는 무작정 당시 부산 교구장이었던 최재선 주교를 찾아 갔고
"오소"라는 마을에 선교사로 발령을 받는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발령을 받아 가보니 신자가 한 명도 없었다.
전쟁 직후라 교회가 밀가루며 분유와 같은 것들을 나눠 줄 때였으니
그것을 바라고 선교사를 희망한 것이었다.
그러니 묵을 방 한 칸조차 없던 허 신부는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7년을 보내야 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허 신부는 다시 최주교를 찾아 갔다.
마지막 희망으로 교회 땅을 빌려 양계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달걀 값이 폭락할 때는 자전거 뒤에 싣고
시장이며 마을이며 직접 팔러 다녀야 했고,
병든 닭고기와 달걀만 며칠씩 먹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며
15년간의 세월을 지나가고 있던 중
우연히 최주교를 찾아 갔다가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혹시 신부 될 생각 없어?"
허 신부의 열심한 사람을 지켜봐 왔던 최주교가
사제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게 하여 허 신부는 청강생으로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 들어가게 됐고,
1974년 7월 5일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사제로 서품 되었다.
허 신부는 첫 미사 강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어떻게 사제가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못합니다.
어머니의 상여를 따라가며 어린 나이에 하느님을 원망해 보았고,
사제가 되고 싶어 신학교에 갔지만 제적 당했고,
평수사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 했지만 그 마저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선교사로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일주일에 다섯 번 쫒겨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제 가혹한 삶에서 늘 하느님께 섭섭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원망만 했던 그 순간에도 저를 사랑하셨고
저를 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도 버리지 않으셨고,
버림 받았던 때에도 사랑으로 보호하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제 그 분은 제 손을 놓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 뒤에 허 신부님이 가시는 곳 마다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게 된다.
고통을 밑바닥까지 체험하신 허 신부님은
많은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부님은 은퇴 후에도 신학교 영적 지도 신부님으로,
교구사제 연수나 수도회 영성지도 등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고 하느님 체험을 하도록 돕고 있으시니
허 신부의 고통은 이제 기적이 된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다.
허 신부의 처절한 실패를 통해서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 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한 인물을 뽑아서 밑바닥까지 가게 한 후
그가 깨달은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는 은혜를 내려 주신 것이다.
고통은 그저 고통이 아니라 고통 뒤에는 숨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댓글 제가 겪는 아픔은 허신부님의 삶에서 그야말로 조족지혈 입니다~~
감사합니다~~
성소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입니다.
허 신부님의 영.육간 건강하시길 빕니다.
초딩칭구 부산교구 박창일 신부님도
대신학교에서 타의로
나와서 부산 성심수도원 수사로
등원하여 필리핀에서
교육을 마치고 5년 늦게 신품받고 수사신부로 북한,~
베트남,~등 동남아시안 평화봉사를
하시고 계시네요,~
평화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