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이 망하더라도 네가 옳다고 믿는 것을 하라."
현실에서 이런 경우를 찾자면 중국 명나라의 학자, 방효유가 있겠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자신의 손자인 건문제에게 제위를 물려 주었지만, 그의 네 번째 아들인 연왕 주체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큰 인물이어서 끝내는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건문제가 거느린 병사들은 60만에 달했지만, 주원장이 벌인 숙청으로 유능한 장군들이 모두 제거되어 버린 바람에 제대로 군대를 통솔할 사람이 없었고...
반면 연왕 주체는 휘하에 용맹스러운 몽골 기병들을 거느렸고, 그 자신부터가 원래 교활하고 병법에 능숙한 인물이어서 건문제가 보낸 진압군을 모조리 격파하고 마침내 수도인 남경까지 쳐들어 왔죠.
결국, 건문제는 황후와 함께 불 속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황위는 연왕 주체가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켜 찬탈한 주체, 영락제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가 바로 대학사인 방효유였습니다.
영락제는 방효유에게 자신이 일으킨 반란은 정당하니, 자신의 등극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축하하라는 글을 쓰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방효유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나중에 네 글자를 쓰고 붓을 던져 버렸는데, 영락제가 보니 "연적찬위"였습니다. 연나라 도적이 황제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뜻이죠.
자신을 모독하는 글귀에 격분한 영락제는 "당장 그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지 않으면 너의 삼족을 멸하겠다."라고 윽박질렀지만, 방효유는 "내 9족이 모두 죽더라도 결코 지울 수 없소이다."라고 맞섰습니다.
미친듯이 화가 난 영락제는 방효유의 가족과 친척 및 그의 제자들을 모두 잡아와 그가 보는 앞에서 한 명씩 한 명씩 모두 죽였지만, 방효유는 끝내 영락제를 찬양하는 조서를 쓰지 않고 버티었습니다. 이 때, 방효유의 눈 앞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모두 8백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방효유는 영락제의 명령에 의해 입이 찢어지고 사지가 토막나 죽는 형벌을 받았지만, 결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 선비의 굳은 절개를 보여주었다 하여 사후에 칭송받게 되었죠.
영락제처럼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세조)을 따르지 않다가 죽임을 당한 우리나라의 사육신과 비슷한 인물이라고나 할까요?
첫댓글 전 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방효유 정말 대단하다~가 먼저 생각나는게 아니라...죽어나간 8백명의 가족과 친척 및 제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지금이야 방효유는 이름도 남기고 업적도 남기고 선비의 굳은 절개를 보여줬다고 칭송받지만...죽어나간 8백명의 사람들은 이름도 못 남기고...그저 1사람의 지인이 황제에게 개기는 덕분에 죽은 것 아닙니까...불쌍하게시리. 그런 걸 생각하면 참...역사라는 것이 지나치게 냉정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달리 생각해 보면 그렇죠. 방효유가 자신의 생각을 조금만 바꾸었더라면 그 사람들이 죽을 일은 없었겠지요.
ㅋㅋㅋ 그러게 말입니다...암튼 너무 대쪽같아도 피곤하네요. ㅋ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건, 일반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가족을 버리더라도 양심이나 공적 이익을 우선시할 것인지, 혹은 현실과 타협하더라도 가족을 우선시할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 몫이라 봅니다. 다만, 우리는 양자 중 '전자' 를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추앙하게 되겠지요. / 일제시대의 예를 생각해 보면, 독립운동가가 대쪽같이 행동하여 그 가족들이 (영락제 시절처럼 몰살까지는 당하지 않았겠지만)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되었을 때, 가족의 희생에도 멸사봉공한 그 가치를 존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