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삶은 어렵고 힘들다. 별일 없어 보이는 사람도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 견디며 살아가고, 나 역시 망설이거나, 피하거나, 참거나, 아주 조금 용기를 내면서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 그 삶의 갈피마다 나에게는 시가 있었다. 시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어설픈 욕망들을 이해해 주었고,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나의 모멸감을 달래 주었다. 그리고 뜻대로 풀리지 않은 일에 화가 날 때 나를 다독여 주었고, 인정받기 위해 기를 쓰는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 위로해 주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 「정말 그럴 때가, 이어령」 중에서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허수경」 중에서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 「사십대, 고정희」 중에서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 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백창우」 중에서
주변에도 시름시름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파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직장도 잘 다니고 아부도 잘 하고 돈벌이도 아직 무난하다. 내가 병든 것이다.
--- 「병, 공광규」 중에서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 목차들 재미없어도 크게 서운해하지 않겠다. 너무 재미있어도 고단하다. 잦은 서운함도 고단하다. 한계를 알지만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의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도 길러보겠다.
--- 「오늘의 결심, 김경미」 중에서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이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 「밤의 이야기 20, 조병화」 중에서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 중에서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렇게 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눈이 보인다. 귀가 들린다.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고맙다! 인생은 아름다워.
--- 「인생은 아름다워, 쥘 르나르」 중에서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 「발작, 황지우」 중에서
첫댓글 시가 이렇게 좋은거였음을.. 새삼 느낍니다.
내 가슴속에서, 내 삶 속에서 살아숨시는 시 하나 간직하고 산다면 이 어려운 시기 힘이 될듯하네요.
우리 모두는 시인입니다. 도시인(都市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