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경제 난국이 빚어내는 기업의 무더기 도산으로 한때 직함과 권위를 갖고 기세 당당하게 세상을 주름잡았던 회장님,사장님,이사님 그리고 정권교체 및 경제파국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고위층 관료들이 하루아침에 이름 없는 실업자로 전락하였다. 소리소리 호령치던 영예로운 자리를 떠나 가정에 칩거하게 된 고개 숙인 아버지/남편들은 그래도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빚에 몰리고 식구들을 부양하지 못해 결국 거리를 배회하게 된 불운한 아버지/남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세상에 내 말 한마디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믿으며 영화를 누렸던 사람일수록 더욱더 돌연히 권위와 경제력을 빼앗긴 지금의 비참한 처지를 직면하기가 어렵고,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과 상실감을 감당하기 또한 매우 힘들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의 꼭대기에서 밑바닥으로 갑자기 뚝 떨어지게 된 사람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리어왕’(1605∼6년경 작)에서 만날 수 있다.
○밑바닥 떨어진자의 슬픔
암흑 같은 치욕과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오늘의 실직자들은 왕위에서 밀려난 후 폭풍우 몰아치는 황야에서 반미치광이가 되어 울부짖는 리어왕의 처절한 외침 속에서 자신들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의 비극의 주인공들에게 요구되는 일은 그저 리어의 비통한 울부짖음에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며 자신의 슬픔을 달래보는 일만은 결코 아니리라.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아마도 리어왕의 절규가 전달하는 예리한 통찰을 힘들지만 용감하게 직시하는 일일 것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그들의 사회적,경제적 추락이 몰고 온 고통의 한파와 상실의 서리를 이겨내고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새로운 출발이라는 결실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진실한 막내딸 코딜리어를 내쫓고 화려한 수사적 표현을 빌려 아첨하는 두 딸과 사위들에게 영토와 실권을 넘겨준 어리석은 리어왕,실제 통치권은 양도하고 왕이라는 명의와 경칭만 갖고 있겠다고 선언한 망상에 젖은 리어왕.
그는 급기야 그 두 딸들로부터 버림받고,왕의 이름과 그 직책과 따르는 모든 권한을 딸들과 사위들에게 빼앗긴 채 황야를 헤매게 된다.
리어의 복받치는 슬픔은 그의 말문을 막아버리고 그를 반광란의 상태로 몰아 넣는다.그러나 리어가 겪는 배반과 빼앗김의 경험은 그에게 뼈를 깎는 아픔과 함께 매우 값진 소득을 안겨 준다.왕의 자리를 잃고 거리의 떠돌이로 돌변한 리어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헛된 망상과 착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통찰력을 얻게 된다.
느닷 없이 더 이상 왕이 아닌 자신을 직면하게 된 리어는 왕궁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대신 거친 황야를 떠돌아다니며 광대 바보와 수수께끼 같은 대화나 벌이고 있는 자신이 정말 조금 전에 왕이었던 리어인지,그가 깨어 있는 지금의 이 참담한 현실이 정말 그가 왕으로서 살았었던 현실과 같은 현실인지를 묻는다….
“이것은 리어가 아니다… 아! 이것이 내가 깨어 있는 현실일까?그렇지 않다.내가 누구라는 것을 누가 나한테 말을 해 줄까?”.
리어는 이 질문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다.그리고 그의 유일한 말벗 광대 바보의 도움으로 차츰 과거 자신이 왕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본질적인 왕다운 성품 때문이 아니라 그가 차지했던 왕이라는 지위와 그것이 보장해 주는 권위 및 경제력 때문이었다는 점,권위란 개인의 내적 가치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그것에 부착된 권력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왕의 자질을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망상 속에서 절대권력을 한 손에 쥐고 세상사를 마음대로 총괄했던 리어는 이제 자신이 더 이상 왕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이름 없는 인간에 불과하며 심지어는 천하기 천한 광대 바보보다도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지금의 헐벗은 나는 조금 전 왕으로서의 영화로운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이 인식은,리어에게 나는 물질적 환경과 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즉 현재의 나 자신을 형성해 주는 것은 나의 본질이 아니라 현재 나를 둘러싼 역사적,사회적,물질적 환경이라는 객관적 관점을 부여해 준다.
리어의 냉철한 자각은 또한 곧바로 그에게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는 겸허한 자세를 갖게 한다. 특히 리어는 자신을 낮추고 광대 바보와 (위장한) 광인 에드가와 같은 소외된 계층의 낮은 목소리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 간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각성하고 겸허한 자세를 갖춘 리어는 실권을 지닌 왕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킬 아무런 권위도 힘도 없다.리어의 통찰은 너무 늦었다.
○깨달음은 헛되지 않은것
그러나 정말 리어의 정신적 자각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뼈아픈 인식일뿐 현실의 제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 것일까? 적어도 리어왕은 그랬다.권력을 쥐고 있을 때 그는 망상에 사로잡혔고 백성의 고층을 이해하지 못했으며,자기 인식에 이르고 헐벗은 백성을 배려하는 자세를 갖추었을 때는 권력과 현실적 행정 능력을 결여하고 말았다.
그러나 세상은 리어왕 한 사람의 독무대는 결코 아니다.리어왕이 그리는 물질적 비극과 정신적 희극의 쌍곡선을 바라보며 자신과 세상을 냉철히 돌아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이 맡은바 임무에 임하는 동료들과 후배들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무대는 리어왕의 무대처럼 언제나 비극적 결말로 끝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의 무대는 불운의 바퀴를 타고 밑바닥까지 내려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행운의 바퀴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사람들로 붐비게 될 우리의 무대도 기다리고 있다.
리어왕의 비극적 삶의 행로를 지켜보고 그의 각성에 깊은 감동을 받은 젊은이들이라면 행운의 바퀴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간다 하더라도 리어왕이 각성하기 이전 왕으로서 걸어왔던 오만과 무지의 전철을 다시 밟지는 않게 될 것이다.
리어왕의 깨달음으로부터 교훈을 얻은 젊은이들은 권좌에 오르고 주요한 직책을 맡게 되어도 ‘권위란 자신이 차지하게 된 자리가 부여해 주는 일시적인 통치력’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국민들 하나 하나를 배려하며 자신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리어의 깨달음은 그 자신을 예전의 자리로 복귀시키거나 그가 살고 있던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어의 죽음 후에도 삶은 여지없이 지속되며,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리어의 깨달음은 분명히 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지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