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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카페 게시글
^^---산행 사진---^^ 스크랩 볼거리는 없으나 울창한 숲길이 고운, 천마산-자개봉(‘16.8.22)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80 16.08.30 07: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마산(天馬山, 385.7m) - 자개봉(紫蓋峰, 858.7m)

 

산행일 : ‘16. 8. 25()

소재지 : 경북 영주시 부석면과 단산면의 경계

산행코스 : 옥대리(931번 도로)천마산왕복버스로 이동소천5467자개봉서남능선좌석교(산행시간 : 3시간20)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조선 중기의 풍수가인 남사고(南師古·1509~1571)가 갑자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했다는 산이 바로 소백산이다.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면서 말이다. 현인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는가마는 넉넉하게 생긴 소백산의 산세(山勢)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개봉은 그런 소백산의 한 줄기이다. 그래선지 소백산의 기풍(氣風)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제대로 된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한 육산(肉山)인 것이다. 때문에 산은 흙산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별한 볼거리가 일절 없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헬기장으로 닦아 놓은 자개봉 정상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지맥(支脈)을 답사하려는 사람들이나, 하나라도 더 많은 봉우리를 오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없는 시간을 쪼개어가면서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는 산일 것 같다. 다만 폭신폭신한 흙길로 이루어진 산길이 걷기에 무척 편하고, 울창한 숲으로 인해 쾌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산행들머리는 금대마을 입구(영주시 단산면 옥대리)

영동고속도로 풍기 I.C에서 내려와 931번 지방도를 타고 단산면소재지인 옥대리까지 들어온다. 이때 풍기읍 시가지를 지나게 되니 참조한다. 옥대리에서 부석면 방향으로 1Km쯤 더 들어가는 지점이 산행들머리이다. 하지만 기점을 삼을 만한 지형지물이 눈에 띄지 않아 길 찾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저 50m쯤 못 미치는 지점에 금대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하나 왼편으로 나뉘고 있다는 게 특이사항일 따름이다.




오른편으로 난 시멘트 포장 농로(農路)를 따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햇빛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어 여름철에 이용하기에는 최악의 코스라 할 수 있다. 특히 오늘 같이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에는 말이다.



주변은 천지가 과수원이다. 사과, 자두, 포도, 오미자 등 이건 숫제 종합세트이다. 영주 하면 그저 사과만 생각했었는데,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요즘 경제분야 뉴스들을 보면 다변화(多邊化)’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과수업(果樹業)에 까지도 전이(轉移)가 되었나 보다. 아무튼 이곳의 기후가 그 과일들의 성장발육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5분쯤 지났을까 과수원 지역이 끝나면서 농로는 비포장 임도로 바뀐다. 그리고 2~3분 후에는 왼편으로 오솔길 하나가 나뉜다. 이정표 등의 시설물이 없기 때문에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가 물기 없는 작은 개울을 가로지르도록 만들어 놓은 통나무다리를 참조하면 되니까 말이다. 가늘은 통나무 몇 개를 엮어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오솔길의 들머리를 놓쳤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고갯마루에서 왼편으로 진행해도 정상에 오를 수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오솔길의 사정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지 않은 탓인지 잡목들이 산길까지 비집고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사가 완만해서 오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오솔길로 접어든지 10분쯤 지나면 천마산 정상이다. 구릉(丘陵) 형태의 정상 한가운데에는 묘() 한 기()가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무인산불감시카메라에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 깜빡 잊을 뻔 했다. 이곳이 산봉우리의 꼭지점임을 알려주는 삼각점(영주302)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영주에서 말 마()자를 쓰는 산은 이곳 천마산(天馬山) 외에도 대마산(大馬山. 372.9m)이 있다. 두 산은 모두 소백산 형제봉에서 갈려 나와 동남으로 뻗은 자개지맥(紫蓋枝脈) 상에 있는 산들이다. 산행이 조금은 여유로웠나보다. 산의 이름과 말()이 어떤 관련이 있을까가 궁금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대마산 근처에 있는 과현(현재의 진우)’ 고갯마루에 대마산목장이라는 말 목장(牧場)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보면, 후세에 이곳에 말목장이 생길 것을 미리 예언한 우리네 선조들의 지혜가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옛날 이 부근에 말목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데 무게를 두고 싶다. 삼국사기(三國史記)소지왕 11(489) 9월에 고구려가 북변을 내습하여 과현(戈峴)에 이르고 10월에는 호산성(狐山城)을 함락하였다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과현은 영주시 상망동에서 진우로 넘어 가는 고개이다. 과현 고갯마루 아래에는 술골(戌谷)이라는 마을이 있다. 술병(戌兵, 지키어 막는 병사)들의 주둔지(駐屯地)라는 뜻을 지닌 마을이다. 과현에 고구려 군사가 주둔했다면 그 후방에는 말을 관리하는 마사(馬舍)나 조련장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다면 근처의 산 이름에서 마()자를 유추해 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연화봉에서 비로봉을 거쳐 국망봉에 이르는 소백산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산은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일행들은 너 나 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갔지만 우리 부부만이 이 코스를 이용해봤다. 마침 통나무계단까지 놓여 있을 정도로 산길이 잘 닦여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정상에서 보았던 소백산 방향의 능선이 조망된다. 그 아래에 있는 부석저수지도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조망은 잠시 뒤 다시 한 번 펼쳐진다.



두 번째 조망을 즐기자마자 고갯마루가 나타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아까 올라올 때 이용했던 임도로 내려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한다. 하지만 길이 또렷하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 또한 그런 전철을 밟고 말았다. 그리고 10분 동안이나 악전고투를 치러야만 했다. 능선은 온통 명감나무와 아카시아나무 등 가시나무 천지, 그중에서도 우릴 가장 힘들게 만든 것은 산초나무였다. 아무튼 우린 가시에 찔리거나 긁히는 것은 물론 싸대기까지 얻어맞고 난 뒤에야 겨우 아까의 고갯마루로 되돌아 나올 수가 있었다.



두 번째로 오르게 될 자개봉의 산행은 소천5리 조금 못미처에 있는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근처에 행복한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듭니다.’라고 적힌 안내판을 문패처럼 내걸고 있는 잘 지어진 전원주택이 한 채 보이니 참조한다. 천마산의 하산지점에서 이곳까지는 산악회의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지맥(支脈)을 답사하는 사람들이라면 걸어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들이라면 일부러 고생을 사가면서까지 오뉴월 염천(炎天)의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왼편의 사문로 135번 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부석저수지로 연결되는 간이도로이다. 도로 오른편의 너른 들녘은 온통 과수원이다. 아까 천마산 입구는 벼가 심어진 논도 많이 보였지만, 이곳은 오로지 과수원뿐이다. 눈이 닿는 곳이 전부 사과밭인 것이다. 영주의 사과생산량이 전국 최고라더니 사실인 모양이다.



널따란 들녘은 온통 사과밭 천지이다. 누군가는 사과밭 길을 일컬어 카멜레온(chameleon) 이라고도 했다. 봄이면 예쁜 꽃으로 치장된 하얀 길이지만 여름철엔 녹음 짙은 녹색 길로 변하고, 가을이 되면 빨간 사과 길로 바뀌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가을의 문턱인 오늘의 색깔은 과연 뭘까? 짙은 녹음 속에서도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하나 둘 보이고 있다. 철모르는 무더위가 제아무리 기승부려도 계절까지는 속일 수 없었나 보다. 참고로 사과는 배수가 잘 되고, 일교차 크고, 일조량 많고, 비가 적은 지역이 당도가 높고 맛있다고 한다. 소백산의 남쪽에 위치한 영주가 이 조건에 딱 들어맞는 곳이란다.



5분쯤 걸었을까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소천5리 마을회관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삼거리의 코너에 이정표(양지마을 1.3Km/ 사그레이 0.3Km)가 하나 세워져 있다. 상단에 문화생태탐방로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영주판 둘레길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둘레길의 이름이 소백산 자락길이란다. 그리고 그 둘레길의 11구간이 이곳을 지나가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요 아래에 있는 소천5리의 옛 이름이 사그레이였던 모양이다.



2분 정도 더 걸으면 왼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양지마을로 연결되는 자락길일 것이다. 하지만 산길은 갈림길에서 부석저수지 방향으로 50m쯤 더 들어간 곳에서 열린다.  아무튼 ()영주문화연구회에서 만들었다는 이 둘레길의 정확한 명칭은 自樂이다. ‘스스로 즐기며 걷는 길이라는 의미란다. 걷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스스로 하는 행위다. 그리고 즐거움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다. 길에서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사색과 즐거움이 교차하기도 한다. 언제 한번쯤 짬을 내어 소백산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 들머리를 찾는 일은 쉽지가 않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더욱 난감할 따름이다. 산자락이 온통 칡넝쿨로 뒤엉켜 버리는 탓에 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저 자락길을 갈려 보내자마자 만나게 되는 산자락을 치고 오른다고 생각하고 들어서는 수밖에 없다. 이때 두어 번의 차단용 그물망을 만나게 되지만 이를 무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잠시 후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묘()를 만난다. 조금 전 이정표에 표기되어 있던 사그레이마을이 한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니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망을 즐겨볼 일이다.



사그레이사그랭이라고도 부르는데 한자로는 사문(沙文)이라고 쓰며, 모래밭에 글쟁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옛날 학문이 높은 선비 김희소(金熙紹)가 경치가 좋은 산천을 찾아다니다 이곳에 왔다. 그는 이 동네에 있는 폭포에서 글을 읽고 폭포로 이루어진 모래밭에 글을 썼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글쟁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사글쟁이가 사그랭이를 거쳐 사그레이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희소라는 선비는 실존 인물임을 참조한다. ‘의성 김씨로 영남지방에 살던 남인계 문인으로 1874년에 목판본으로 발행된 문천집(文泉集)’이라는 문집(文集)을 남겼을 정도로 학식이 뛰어난 선비였다고 한다.



묘역(墓域) 위에는 임도 같은 길이 나있다. 묘역을 관리하려고 닦아 놓은 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산길은 이를 따르지 않고 곧장 능선을 치고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거기다 흔적까지도 그다지 또렷하지가 않다. 우리야 산악회 회장님이 깔아놓은 진행방향 표시지만 보고 오르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길 찾기에 만만찮게 애를 먹겠다.



힘겨운 싸움 끝에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선다. 12분 만이다. 이어서 잠시 완만해지는가 싶던 산길은 잠시를 못 참고 또 다시 가팔라져 버린다.



그리고 11분이 더 흐른 후에는 또 다른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왼편으로 길 하나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 467m봉이 아닐까 싶다. 첨부된 지도를 보면 467m봉 근처에서 자개지맥(紫蓋枝脈)과 만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개지맥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 고치령 동남쪽 약 1.1km 떨어진 959m봉 직전에서 분기해 자개봉(紫蓋峰/858.7m)과 천마산(天馬山/386m), 대마산(大馬山/372.9m) 등을 지나 서천과 내성천이 합류하는 무섬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가 대략 47km 쯤 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이제부터는 자개지맥을 따른다. 그리고 잠시 후부터는 산길은 단산면과 부석면을 양 옆구리에 차고 이어진다. 두 면의 경계를 따라 나있다는 얘기이다.



지맥을 만나면서 산길은 고와진다. 길이 넓어진데다가 경사까지 완만해진다. 그런데 오른편 길가에 통제구역, 입산금지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있는 게 보인다. 그것도 20m 정도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촘촘히도 매달려 있다. 사면(斜面)에 잣나무와 소나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송이버섯 채취지역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잠시 후 움막이 보인다. 그런데 평소에 보아오던 송이버섯 움막이 아니다. 제법 규모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철에는 사람이 상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송이버섯보다는 산양삼 등 희귀 약재를 기르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능선은 가파른 오름짓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가끔은 봉우리를 만나기도 하지만 내림구간이 극히 짧은데다 완만한 탓에 봉우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힘이 들지만 폭신폭신한 흙길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지루하고 힘든 힘겨룸 끝에 두 번째 움막에 도착한다. 첫 번째 움막에서 26분 만이다. 이번의 움막은 이층으로 되어 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라도 막고 싶었던 모양이다.



두 번째 움막을 지나면서 산길의 가파름은 많이 누그러진다.



그리고 9분 후에는 세 번째 움막을 만나게 된다. 움막의 생김새는 가장 초라하지만 앞에 의자까지 만들어 놓은 걸로 모아 이곳이 가장 주된 초소(main sentry post)가 아닐까 싶다.



세 번째 움막에서 6~7분쯤 더 오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정표가 없어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그저 정상 조금 못미처에 있는 묵묘()’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왼편은 단산저수지 방향으로 연결되는 지맥 길이다. 오늘은 하산지점이 조재기마을이니 정상을 둘러본 후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만 한다. 정상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의 능선을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잠시 후 자개봉 정상에 올라선다. 소천리 삼거리를 출발한지 1시간 30분 만이다. 널따란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번호를 식별할 수 없는 삼각점 하나만이 외로울 뿐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이나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한쪽(남쪽) 귀퉁이의 나무기둥에 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들 몇 개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자개산은 단산지옆의 큰 산이 한밤중인 자시(子時)에 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자개봉 너머에는 도화동(桃花洞)이 있다는 얘기도 구전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요 아래에 있는 단산저수지 주변 마을에는 선비의 효성에 탄복해 천도복숭아를 내렸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상향(理想鄕)을 꿈꾸던 민초(民草)들의 바램이 물씬 풍겨나는 전설이 아닐까 싶다. 꼭 전설이 아니더라도 그 천도를 얻었다는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석문(石門)을 한번쯤 찾아보고 싶다. 이 자개봉 어딘가에 있다니 말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괜찮은 편이다. 정상을 둘러싼 잡목(雜木)들 때문에 아랫도리가 잘려나긴 했지만 왼편에는 백두대간이, 그리고 오른편으로는 국망봉이 시원스럽게 내다보인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봉우리 앞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킨다. 무더위로 인해 체력이 고갈되어가는 마당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산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고집만 내세울게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할 줄 아는 지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는 과정이나 결과가 모두 옳아야 한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뭔가 눈여겨 볼만한 것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산행이 계속된다. 그만큼 편한 산길이 이어진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노송(老松) 한 그루를 발견한다. 커다란 소나무가 무에 그리 색다를까 만은 오늘 만은 예외이다. 하도 오래 묵은 나무들이 귀하다보니 저 정도만으로도 훌륭한 눈요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능선의 좌우(左右)가 확연히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능선을 기준으로 왼편 사면(斜面)이 온통 소나무들의 독차지가 되어 있는데 반해 오른편은 참나무들 세상이다. 마치 좌우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념(理念)의 현장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그 경계를 넘어선 놈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까짓것 그냥 스파이(spy) 정도로 쳐두자. 그것도 아니라면 청개구리파라고 제켜놓던지, 어디나 성질 못된 놈들은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30분 만에 630m봉에 올라선다. 그런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뭔가가 눈에 띈다. 이곳이 630m봉임을 알려주는 정상표시 코팅지가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것도 조재기봉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서 말이다. 오늘 산행을 함께 하고 있는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 조금 전에 붙여 놓고 가신 모양이다. 문헌(文獻)은 물론 구전(口傳)에서도 찾아지지 않는 이름들이라 바람직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오늘부로 이 봉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얻을 수도 있겠다.



갑자기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하지만 암릉으로 부르기에는 난감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눈에 담아둘 만큼 잘생긴 것도 아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바위들 몇 개가 능선을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오늘 산행 중에 유일하게 만난 바위이다 보니 이 또한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훌륭하다 할 것이다.



산길은 대체로 가파른 편이다. 하지만 내려서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 하나 부담스러운 것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여오다 보니 거의 맨땅 수준으로 굳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폭신폭신한 낙엽의 느낌까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그저 양탄자 위를 걷는다는 느낌으로 서서히 내려서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고도(高度)가 낮아지면서 주변의 나무들이 식생(植生)에 변화를 준다. 자연적으로 자라난 참나무들이 주류를 이루던 숲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인위적(人爲的)으로 식재한 숲으로 변하는 것이다. 잣나무 숲이 나타나는가 하면 뒤이어 리기다소나무 숲이 나타나고, 그런가 하면 낙엽송(일본이깔나무)들이 나도 여기 있다며 고개를 내민다.



630m봉을 내려선지 25분쯤 되면 주변이 깔끔하게 벌초(伐草)된 등산로를 만난다.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만큼 아래에 자그마한 산촌마을이 나타난다. 조재기마을에 이른 것이다. 마을 앞에 있는 바위가 공작새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마을에 내려오니 잔일을 하고 계시던 노인장께서 어디서 왔냐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신다. 산골마을에 살다보니 어쩌다 보이는 나그네가 반가우셨던 모양이다. 몇 마디 한담(閑談)을 주고받다 돌아서려는데 낯선 경고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양송이 양여구역이니 입산을 금()한다는 내용이다. 지금이야 괜찮겠지만 가을에 이곳으로 오르내릴 때에는 눈총깨나 받겠다. 아니 아예 통행 자체를 막아버릴 지도 모르겠다.



날머리인 도로까지는 마을 진입로를 따른다. 길과 함께 개울이 나란히 나있으니 산행 중에 흘린 땀이라도 씻을 요량이라면 개울로 내려설 일이다. 풍족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물속에 들어앉아도 될 만큼의 양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가뭄에도 이 정도의 물이 흐르고 있다면, 평상시에는 요란스러운 물소리까지 만들어가며 흐를 게 뻔하다. 그렇다. 이곳은 소백산 줄기가 분명하다.



이곳도 역시 과수원 천지다. 오른편은 사과, 그리고 왼편은 포도이다. 그런데 그 종자가 머루포도란다. 어린 시절에 먹던 새콤달콤한 맛이 생각나 냉큼 한 박스를 사고 본다. 4들이 한 박스에 3만원이라니 가격도 괜찮은 편이다.



산행날머리는 좌석교()

마을에서 5분쯤 내려오면 단산면소재지인 옥대리에서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좌석로로 연결되는 군도(郡道 : 영단로)에 내려서게 된다. 도로의 아래는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축조된 단산저수지이다. 아니 지금은 홍수 조절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니 다목적 댐(dam)인 셈이다. 그리고 아까 조재기마을 앞으로 흐르던 개울이 단산저수지로 들어가 직전에 그 물길을 가로 건널 수 있도록 놓은 다리가 좌석교이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40분이 걸렸다. 간식과 목욕을 위해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다리를 건너 조금만 더 올라가면 소백산 자락에 자리 잡은 앉은 바위마을이라는 뜻의 좌석리가 나온다. 앞서 얘기했던 소백산 자락길11자락 마지막 마을이다. 좌석리 뒤로 넘어가는 산길은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기 위해 영월로 오가던 길이다. 참고로 소백산 자락길은 모두 12자락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를 다시 26개의 소문화권으로 구분하면서 그 특성에 따라 선비길, 구곡길, 달밭길 등의 별칭(別稱)들을 붙였다. 소수서원에서 출발한 자락길은 충북 단양군을 지나고 봉화군 오전약수탕관광지를 거쳐 10자락길 부터는 다시 영주로 이어지는데, 그 길이는 대략 360리길, 158km이다. 이 길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생태관광부문에서 한국 최고의 관광지인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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