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학기 10주차 과제
소설 -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요한복음 7:53-8:11)
정 우 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데리고 온 여성은 이미 얼굴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성전까지 끌려오면서 온갖 욕과 조롱을 당한 듯했다. 불륜을 저지르다 현장에서 붙잡혔음에도,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여자만 끌고 온 데서 그들의 간교함을 엿볼 수 있었다. 간음죄를 범하는 남성은 ‘능력자’로, 동일한 죄를 범한 여성은 ‘걸레’로 보는 비뚤어진 인식이 그 시절에도 있었을지 모른다.
“모세가 우리에게 준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소만. 예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이 질문이야말로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내보이는, 모순적이고도 어리석은 함정이었다. 차라리 무지한 문자주의자들이었다면 예수에게 끌고 올 필요도 없이 그녀를 현장에서 ‘즉결처형’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합을 이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일부러 처형의 시기를 늦췄다. 그들은 율법의 판단과 이행을 예수를 무너뜨리기 위한 함정으로, 즉 자신들의 도구로 사유화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율법조차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오용하는 자들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들에게 율법을 준 하나님이신 예수는 잠시 입가가 씁쓸해졌다. 예수는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몸을 굽혀 쭈구려 앉으셨다. 그리곤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저 양반 대체 뭐하는 거야?’
‘또 무슨 이상한 짓거릴 하는 거지?’
상대적으로 가까이에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땅에 쓰고 있는 내용이 다름 아닌 ‘십계명’임을 알아보았다. 자신들이 목숨처럼 붙들고 살아가는 바로 그 율법이었다.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 것인가! 그들은 더욱 다그쳐 예수를 몰아붙였다. 대답해보시오. 율법이 말씀하는 대로 저 여자를 돌로 치면 되겠소이까? 당신의 생각은 어떠시오?
마침내 예수가 입을 뗐다. 그의 말은 단순했다.
“당신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 여자를 돌로 쳐도 좋소.”
그리고 그는 다시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십계명이 아니었다. 그의 기이한 행동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점점 가까이 몰려들었다. 잠시 후 그들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예수는 거기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은밀한 죄들을 땅에 쓴 글로 폭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드론 계곡 출신의 시몬이 8세 때 아버지의 은화를 훔쳤던 일이 첫 머리에 적혀 있었다. 엔로겔 샘 근처 마을에 사는 유다는 자신의 아내 사라가 셋째 아들을 출산하기 직전부터 같은 동네의 어린 과부 한 사람과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죄목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었다. 모두가 십계명을, 율법을 어기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고발되었다. 그들이 뒤집어 쓰고 있던 위선의 가면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었다.
부끄러울 일이 압도적으로 많은, 연로한 자들이 가장 먼저 꽁무니를 뺐다. 그나마 솔직한 양심을 갖고 있던, 연소한 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모두가 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하자 어중간한 자들 역시도 허겁지겁 사라져가는 인파 속으로 자신의 얼굴을 숨겼다. 그렇게 모두가, 땅바닥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그리고 그 옆에 나열된 자신의 죄목으로부터 도망쳐버렸다.
마침내 여자와 예수만 남았다. 여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자에게 이용당했음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존재의 빈곤함과 삶을 짓누르는 공허함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렇게 한 대가로 고아인 아들과 함께 하루하루 연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자여, 당신을 정죄하던 이들이 어디 있습니까?”
“다... 사라져 버렸네요, 선생님.”
“저도 당신을 정죄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마십시오. 당신의 삶을 살아가세요.”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뛰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본 뒤, 예수는 잠시 텅 비어있는 성전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오래 전 솔로몬이, 그리고 스룹바벨이 그를 위해 지어 헌상한 건축물이었다. 이방인 헤롯은 이곳을 증축하고 더 확장하여 아름답게 꾸며두었으나, 이 성전의 진정한 주인은 문득 깊은 고독함을 느꼈다. 임재한 하나님이신 그의 눈에 이미 이곳은 돌 하나 남지 않은 폐허와 같았다. 조금 전에 일어난 그 일이 바로 퇴락의 증거였다.
예수는 과거 두 돌판에 자신의 계명을 새겨 모세에게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돌판, 곧 ‘땅’ 자체에 자신의 계명을 새겨버렸다. 양심을 가진 인간은 땅에 새겨진 예수의 계명으로부터 도망갈 곳이 없다. 그 땅에는 자신의 죄 또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땅으로부터 ‘돌’을 들어 누군가를 치는 것은 이제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의 계명이 새겨진 새로운 돌판을 훼손하는 일이며, 이곳에 새겨진 너의 죄목을 먼저 읽어보라고 땅이 항변할 것이다. 돌들은 소리칠 것이다.
율법은 그것을 잣대로 삼아 사람을 구별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라고 주신 계명이 아니었다. 율법은 인간의 연약함을 폭로하고,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나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간단한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새겨 준 것이었다. 율법은 어린아이의 머리통 만한 돌을 들어 죄인을 쳐 죽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손에 쥔 돌을 내려놓고 그 손으로 서로를 보듬고 끌어 안으라고 주신 사랑의 계명이었다.
율법을 통해 인간은 자비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율법을 수호한다는 이들은 오히려 그 율법으로 끊임없이 타인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멸시하며, 죽이고 있었다. 수천 년이 지난 먼훗날에도 마찬가지리라. 그래서 예수는 아팠다. 그는 인간들에게 ‘빛’이 필요함을 다시금 느꼈다. 빛을 선포하기 위해 옮기는 그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