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14일, 분노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유럽세계의 정치적인 축을 뒤흔들어 놓는, 그리고 역사의 한 전기를 마련하게 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왕정을 중심으로 하여 지배권력을 왕족과 성직자,일부 세습귀족이 나눠갖는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유럽의 군소국가들에 혁명의 열기는 위협이었고,부패하고 무력한 왕정의 쇄신을 기대하던 일부 지식인들이나,불만을 품고 있던 민중들에겐 새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희망이었다.
워즈워스는 바로 이러한 낭만주의 시대로 알려진 문학사의 한 지평을 열었던 시인이다.낭만주의 시대는 흔히 계몽주의적 사유,즉 극도로 이성을 신봉하는 사유에 대한 반동이라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실제로 낭만주의 시대는 계몽주의적 사유가 확보한 평등의 개념에 대한 신념을 공유한다는 점에선 계몽주의 시대와 이어지는 지점을 갖는다.워즈워스는 이런 신념을 갖고 스스로를 보통사람의 시인으로 이해하였다.
○혁명좌절 극복 시적대응
이렇게 자신을 정의한 워즈워스가 새로운 시를 꿈꾸었다.한 번도 문학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시,그것은 바로 자신에 관한 장편의 시였다.본래 그는 이 시를 인간, 자연, 사회(혹은 역사)를 모두 아우르는 시로 계획하였다.어쩌면 이 시는 프랑스혁명에 걸었던 기대가 좌절되는 경험을 했던 시인이 자신의 좌절과 역사적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문학적 대응방법으로 모색되었을 것이다.그러나 애초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고,워즈워스는 결국 ‘서곡’( The Prelude)이라 부르는 도입부분만을 완성하였다.이 도입부분은 한 번의 개작을 거쳐 1850년 워즈워스 사망후 출판된다.도입부분에 불과하다고 하였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장장 13권에 달하는 장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인의 정신성장의 자전서
‘서곡’은 시인 스스로 ‘시인의 정신의 성장’에 관한 시라 부른,말하자면 시인의 자전적인 시였다.어떤 경험과 힘에 의하여 자신이 시작(詩作)을 평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를 서술하면서 시인은 자연의 힘 속에서 근원을 찾는,그리고 동시에 자연을 그 외적인 대응으로 삼는 자신의 상상력을 찬양한다.자연과 상상력의 긴밀한 관계가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인간과 자연이 산업혁명(넓게는 자본주의)의 이행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그의 인식때문이었다.물론 이 상상력은 워즈워스라는 한 특정한 개인만이 소유한 것이 아니고,인간의 정신이 외부의 자연과 조응하면서 독특한 영역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문학이,예술의 본질이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력이라고 하는 매우 근대적인 신화가 낭만주의 문학관과 더불어 자리잡게 되는 순간이다.
워즈워스의 ‘서곡’은 창조적인 개인 안에 담겨있는 시적 정신(상상력)이 어떻게 세상,즉 사회와 역사와 관계를 맺는가를 보여주는 과정의 탐구다.그리고,근대적인 시인즉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내면을 외부세상과의 관련 속에서 구성하고자 하는의 자기탐색 작업이다.문학을 가능케 하는 추동력이 천재적인 개인의 상상력이라고 하는 신화는 바로 워즈워스같은 낭만주의 작가들의 작업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우리 시대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관념적 자연매몰로 변질
프랑스혁명이 성취해낸 것이,보통사람의 중요성 그의 법적 권리라든가,존엄성이라든가에 대한 인식이라면 워즈워스의 시는 바로 이같은 믿음,즉 보통사람의 한사람으로서의 시인의 역할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해답일 것이다.그러나 그 해답을 찾는 가운데서 낭만주의 시인들은 어쩔 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보통사람의 한사람으로의 시인의 작품을 가능케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시와는 무관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보통사람의 삶이라기보다 오히려 세상과 자연과 역사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조응하는 천재의 창조적 정신이라는 모순적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정치적 역사적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을 시 안에서,그리고 시인의 정신 안에서 찾고자 했던 그들의 절실한 노력은 이렇게 해서 현실보다는 이상화된 자연과 같은 세계 속에서 그 답을 얻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