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루 묘지명의 원문은 역사자료실에 가서 고구려 관련 금석문을 다운받으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계에서는 1935년 일본인이 무덤을 조사하여 1938년 통구하권에 실린 묘지명을 사진 찍은 것으로 글자를 판독하고 있기 때문에 대략 80행으로 추정되는 묘지명 가운데 나머지 10행은 전혀 판독을 못하고 있고, 70행 부분도 부분만을 판독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해석을 제대로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중국의 경철화 가 모두루 묘지명을 다시 판독하여 무덤의 주인공을 염모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그의 연구에 대해서 반신반의 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염모가 주인공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고 모두루로 여전히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염모는 346년 모용선비가 부여를 공격해왔을 때 공을 세운 인물이며, 모두루는 광개토대왕의 부하로 염모의 후손으로 보입니다. 염모 - 자ㅁ- ㅁㅁ - 모두루 이런 식의 족보가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현재 여러가지 이설이 있지만, 염모는 그저 모두루의 선조로 공을 세워 가문을 일으킨 영웅으로 보이고, 모두루가 무덤을 만들면서 자신의 가문을 강조하기 위해 염모의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15행부터 39행까지 염모가 등장하는 것은 아무리 조상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그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조상에 대한 서술이 7행부터 43행까지 임을 고려한다면 그는 모두루 가문에서 최고의 영웅이라고 하겠지요.
44행부터 48행까지는 모두루가 벼슬한 것이 쓰여져 있고, 49-54행에는 광개토대왕의 죽음에 대한 모두루의 감회가 57행부터는 모두루가 벼슬을 지내면서 또 어떤 일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대략 무덤의 주인공은 모두루가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염모가 다시 무덤에 묻힐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염모의 비중이 크다고 해도, 염모와 광개토대왕간이 전혀 무관한데 이를 다 기재한 것은 역시 무덤 주인공이 모두루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