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30일 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8월의 마지막 주간의 월요일 아침을 열면서 감사드립니다. 지금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많은 고통과 불편이 지속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 특히 우리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냄에 있어서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어떤 환경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그늘 안에 보호받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각자 골방기도로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제 8월을 잘 마무리 하시고 희망을 걸고 9월은 반드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 노력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내는 초가을의 9월을 위하여 “파이팅!!” 하며 보람되게 시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마태복음 21장1-11절 }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 제 목 ◑◑◑◑
◗◗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왕으로서 입성하심과 논쟁
◑◑◑ 본문 이해와 요약 ◑◑◑
◗ 21장에서는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자신이 메시아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 드디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위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입성하신 뒤 성전에 들러 정화하신 것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한편 선민임을 자랑하며 예수께 도전하는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바리세인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세상에 속한 자를 심판하실 메시야라는 것을 더욱 드러냅니다.
◈ 이제 21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5절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시고, 6-11절에서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시에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은 또한 왕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예수님은 이 땅에 만민의 왕으로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하셨지만, 그러나 그분은 늘 온유와 겸손으로 행하셨습니다.
- 그리고 12-17절에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18-19절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 한편 20-22절에서 믿음의 능력을 가르치시며, 22-27절에서 권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을 때에, 예수님의 답변 대신 오히려 질문을 하심으로써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드셨습니다.
- 또한 허탄한 논쟁과 어리석은 변론 자체를 피하는 지혜를 보여주셨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논쟁과 변론 속에서 헤매이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 그리고 28-32절에서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실천적인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 한편 31-41절에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와 42-46절에서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예수님을 밝히고 있는데, 모퉁이 돌은 건물에 있어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초석입니다.
- 유대인들은 모퉁이 돌을 먼저 세운 후에 그 돌을 기준으로 해서 집을 건축한다고 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버린바 되셨으나 교회에서는 바로 이러한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 또한 세상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걸림돌이었으나 성도에게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초석이 되셨습니다.
- 바로 이 모퉁이 돌 되시고 초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열매를 맺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 그리고 거듭난 자의 소유인 것입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하나님 안에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3절에서 주님께서는 무엇이든 임의로 하실 권세가 있습니다.
- 한편 4-5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가 온전히 성취됩니다.
- 또한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는 가장 위대한 겸손의 모습입니다.
- 그리고 6절에서 말씀에의 순종은 믿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 한편 8절에서 신앙의 모방은 모양보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 그리고 9절에서 종교인은 많아도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적은 때입니다.
- 한편 12절에서 교회 안에 상업주의와 물질주의가 침투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때에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은 또한 왕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 많으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시며 만유를 다스리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예수님은 이 땅에 만민의 왕으로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하게 하셨으니 예수님은 늘 온유와 겸손으로 행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언제나 만홀히 여기지 말고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명심하여 존귀와 거룩하심을 두고 우리의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신앙생활은 말이 아니라 행함이다. (마태21장 8-9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종교인은 많아도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적은 때입니다.
❥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온 백성들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려고 길가에 나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고 환호하는 모습을 봅니다.
-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아주 특별한 왕이심을 온 천하에 알리신 의미 있는 퍼포먼스를 행하신 모습입니다
- 특히 9절을 살펴보면 “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앞과 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호위한 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 무리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로 불렀습니다.
- 이는 다 같이 메사야를 가리키는 말로, 군중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 그리고 ‘호산나’란 말은 ‘부디 구해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즉 무리들은 마치 고난에 처한 백성들이 자기들의 왕이나 혹은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 참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의심할 바 없이 예수님을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로 환영하였습니다.
- 이처럼 수많은 무리가 경건한 제자들처럼 보였음에도 막상 그분의 십자가 죽음 시에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사실은 기막힌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문제는 오늘 우리의 교회들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 기독교가 자신의 종료라고 믿고 또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사분지 일, 전 세계적으로는 인류의 삼분지 일에 육박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될까? 이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문제입니다만 얼마 못 된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현장에는 사람들이 넘치게 많았습니다만 제자가 되라고 부르시는 곳에서는 소수만이 남아서 좇을 뿐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에서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 오늘도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는 자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룹니다.
- 그러나 정작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낼 수 있는 자리, 즉 일군이 되고 제자가 될 것을 다짐하는 자리에는 찾아오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영광 받기를 원하면서도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기는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옳지 못한 태도입니다.
-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고자 하면, 고난에도 반드시 참예해야 합니다.
- 바울이 로마 교회에게 편지하면서 8장 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공식이요, 기본 원리입니다.
- 이런 공식과 원리를 무시하고서는 문제를 풀 수가 없는 것처럼 제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성도는 천국에서 기업을 이을 수 없습니다.
- 그런즉 우리가 약속에 참예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 바로 고난입니다.
-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원한다면,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님의 뒤를 좇아 행하는 삶이 됩시다.
-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13-14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나는 예수님이 인정하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감격 없는 종교인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참 믿는 자의 모습은 어떻게 행하는 삶인지? 예수님의 고난이 있었기에 영광의 보좌가 예비 됨을 믿는다면 예수를 위한 어떤 고난의길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오늘 아침에 성령님은 어떤 신앙의 길을 갈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종교인은 많아도 진정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적은 때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말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 그런즉 입술로만 소리치고 부르짖는 사람들을 두고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46절에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라고 탄식하였습니다.
- 고난이 없는 영광이 없는 말처럼 우리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 받기를 조금도 원치 않으시고 다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고난의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하면서 5장24절에서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자신의 의를 나타내려고 해서는 안 되며, 성도의 특징 중에 하나는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점에서 자기를 비우고 예수로 살아간다면, 자연스럽게 전도가 될 것이며, 언제 들여다보더라도 우리 자신의 모습이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발견되도록 함으로서 맛을 잃은 이 시대에 우리가 겸손히 섬기고 희생함으로 사회적 선한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