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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5 "이재명 구속" vs "윤석열 퇴진"… 둘로 갈린 세종대로
“불법 대선자금 주범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구속하라!”(자유통일당)
“정치 보복과 거짓말을 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퇴진하라!”(촛불승리전환행동)
10월 22일 오후 보수·진보단체가 서울 중구 서울시청 교차로 횡단보도를 기준으로 세종대로를 남북으로 가른 채 각각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인근에 집회 참가자 5만 명 이상(경찰 추산)이 집결하면서 일대가 극심한 교통혼잡을 빚었다.
○ “이재명 구속” vs 윤석열 퇴진”
전광훈 목사가 대표인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는 이날 오후 2∼8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약 550m 구간) 왕복 8개 차로 중 6개를 점유한 채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약 3만2000명의 참가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이재명과 문재인을 구속하라” “주사파를 척결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신고 장소가 아닌 광화문광장에도 2000여 명이 모여 집회에 동참했다. 소 모양의 문재인 전 대통령 인형이 집회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날 오후 4시 숭례문 오거리부터 시청 교차로까지(약 450m 구간) 편도 3개 차로를 점유한 채 ‘윤석열 정부 규탄 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약 1만8000명의 참가자는 손팻말을 들고 “윤석열 퇴진하라” “김건희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등의 얼굴을 본뜬 대형 인형이 트럭에 실린 채 등장했다.
○ 몸싸움 벌어지고, 상대 손팻말 찢기도
이날 양 집회 참가자 간 몸싸움도 여러 차례 벌어졌다. 일부 촛불행동 집회 참가자가 ‘김건희 구속’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흔들며 보수단체 집회 장소로 넘어가자 보수 집회 참가자 3명이 달려와 몸으로 막았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깃발을 들고 상대 진영으로 건너가 “이쪽 집회에 참여해 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자기 진영을 침범한 이들을 몸으로 밀거나 손팻말을 빼앗아 찢는 일도 벌어졌다. 다만 집회 관리에 나선 경찰이 중재하면서 충돌이 확대되진 않았다.
촛불행동 측은 이날 오후 6시 반경 용산구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인근까지 행진한 뒤 집회를 마무리했다. 같은 시간 남영역에서 남쪽으로 약 600m 떨어진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는 보수단체 신자유연대 회원 등 약 2500명(경찰 추산)이 맞불 집회를 벌였다.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도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안전운임제 확대적용 쟁취 결의대회’를 열었다.
○ 주말 도심 도로 정체 극심
이날 대규모 집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서울 도심 교통은 정체가 극심했다. 세종대로는 자유통일당 등이 집회를 연 구간에서 편도 각 1차로만 차량 통행이 가능했고, 촛불행동 집회 구간도 왕복 5개 차로만 통행이 가능했다. 촛불행동 측은 행진을 시작하고 10분여 동안 왕복 8개 전 차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서울 도심 평균 차량 통행 속도는 시속 10km로, 공휴일 평균(시속 20.9km)의 절반가량이었다.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으로 주말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계도시문화축제’에 자녀와 함께 놀러 온 박성현 씨(42)는 “아이들이 (집회 소음이) 시끄럽다고 난리여서 일찍 집에 들어가려 한다”고 했다.
○ 민주당 의원 참여 놓고 논란도
촛불행동 집회에는 민주당 김용민, 민형배, 안민석, 황운하 의원 등이 참가했다. 연단에 오른 김용민 의원은 “무도한 윤석열 정부와 검찰 독재를 막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용민 의원은 10월 8일에도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참석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참가한 것을 두고 날선 반응을 쏟아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민주당은 탄핵놀음 불장난으로 집을 온통 태우는 어리석은 짓을 그만하고 더 늦기 전에 이재명 탄핵이나 제대로 하길 진심으로 충언한다”고 했다.
레고랜드 '2050억 폭탄'… "최문순 탓 "vs "김진태 무지"
여야는 10월 23일 채권시장 자금경색 상황을 불러온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의 원인으로 각각 더불어민주당 출신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와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현 강원도지사를 지목하며 책임을 돌렸다. '레고랜드 사태'는 최근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발행한 2050억원 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보증 철회 의사를 밝혔다가 채권시장이 빠르게 경색되는 등 금융 시장에 불안이 번진 것을 말한다.
이에 정부 당국은 이날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동원해 회사채, 기업어음(CP) 매입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또, 채권시장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해 50조 이상을 투입할 것과 모든 지자체의 채무지급보증을 확약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경제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한 문재인 정권의 '퍼주기식 포퓰리즘 리스크'가 채권 시장에 폭탄을 던졌다"며 "그 시발점은 8년 전 최문순 강원도정이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도 없이 무책임하게 밀어붙인 '레고랜드 채무 떠안기'"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최문순 도정은 도의회 승인을 생략하고 레고랜드의 2050억원 채무에 빚보증을 섰고, 이 빚은 고스란히 강원도민의 부담으로 남게 됐다"며 "문재인 정권은 중앙, 지방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한 채권 발행, 채무 보증 등을 남발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쇼에 나라의 미래를 팔아넘겼다"고 비판했다. 이어 "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로 알려진 지방채의 신뢰도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은 지난 5년간 급격하게 증가한 채무 때문"이라며 "지난 5년간 국가부채는 763조 증가했고 지난해 기준 전국 지자체의 지방예산 대비 채무 비율은 10.4%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제 파티는 끝났다. 지난 정권이 비운 나라 곳간을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반드시 채워나가겠다"면서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빚 파티 끝에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민생경제위기 대책위원회는 이날 긴급 성명서를 통해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사업의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가 이달 10월 21일 다시 채무를 상환하겠다고 번복한 것을 두고 "경제에 무지한 단체장이 오직 정치적 목적으로 전임자 흠집 내기에 나섰다가 아무런 실익도 얻지 못하고 국가 경제에 중대한 피해만 입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진태 지사의 경거망동은 가뜩이나 위축된 자금조달 시장에 불신의 망령을 들게 했고, 투자 위축과 유동성 경색이라는 위험천만한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며 "김진태 지사의 2000억 채무 불이행이 2000조 가계부채를 흔드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또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도 "금융시장이 한 달 전부터 위험 신호를 보냈음에도 야당 탄압에나 몰두하느라 위기를 수수방관한 대통령이 화마를 키웠다"며 "시장이 발작을 일으킨 후에야 늑장 대책, 뒷북 대책, 찔끔 대책을 내놓은 윤석열 정부에 과연 경제위기 극복 의지나 있기는 한 것이냐"고 물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는 경제위기에 대한 무지·무능·무관심으로 초기 방화벽 구축에 실패하고 선제 대응 시기를 놓친 잘못을 인정하고, 존재감이 실종된 경제수석과 경제금융비서관은 한 달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소상히 해명하라"며 "채권시장의 생명과도 같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경제위기 트리거를 자초한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국민에 공개 사과하고 채무 상환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대한항공기, 필리핀 공항 활주로 이탈… "인명피해 없어"
10월 23일(현지시간) 오후 11시 7분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 후 활주로를 이탈(오버런·over-run)했다. 10월 24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에서 10월 23일 오후 6시 35분 출발해 세부 막탄 공항으로 향한 A330-300 여객기(KE631)가 현지 기상 악화로 비정상 착륙했다.
해당 여객기는 악천후로 인해 3번의 착륙 시도 끝에 도착예정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게 공항 착륙에 성공했지만, 활주로를 지나 수풀에서 멈춰 섰다. 여객기에는 승객 162명과 승무원 11명이 타고 있었지만, 현재까지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객기 바퀴와 동체 일부가 파손됐다. 승객들은 여객기에서 슬라이드를 통해 긴급 탈출했고, 현재 공항에서 나와 현지 호텔로 이동 중이다.
현재까지 승객들 중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오버런 이후 세부 공항 착륙이 중단되면서 다른 항공사 항공편들은 회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해당 여객기를 타고 귀국할 예정이었던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대체 항공편을 보낼 예정이다.
필리핀 놀러 갔다 졸지에 감옥行… 한국인 대상 '셋업 범죄'
“형님, ‘공돈’ 500만 원이 생겼는데 필리핀 안 가실래요?” 2019년 4월 25일, 60대 A씨는 후배 B씨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다. 평소 B씨가 주식투자를 대신 해준 터라 그는 의심 없이 필리핀행(行)에 응했다. 열흘 뒤 두 사람과 또 다른 후배 C씨는 마닐라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야외 수영장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은 현지 여성 5명과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하지만 객실로 이어진 술자리에 A씨가 잠깐 담배를 가지러 옆방에 갔다 온 사이 참석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몇 분 뒤 들이닥친 경찰은 그에게 미성년자 강제 추행 혐의를 씌워 유치장에 구금했다. 그때부터 후배들은 “미성년자 성추행은 최대 20년형”이라며 사건 무마 대가로 8억3,000만 원을 요구했다. A씨는 돈을 약속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A씨의 재산을 노린 ‘셋업(Set upㆍ함정)’ 범죄 일당이었다.
◆ 유흥, 부패, 총기… 셋업 범죄 '천국' 필리핀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표적 삼는 셋업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셋업은 미리 정한 대상을 함정에 빠뜨려 석방을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 방식이다. 요즘엔 한국인 관광객에게 미성년자를 접근시켜 성매매를 하게 하고 경찰 신고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을 많이 쓴다. 경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관광길이 끊기면서 한동안 뜸하던 필리핀 셋업 범죄가 관광 재개와 함께 다시 고개를 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8월 필리핀으로 향한 한국인은 16만8,176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3,254명) 대비 5,068% 폭증했다.
사실 필리핀은 코로나19 전에도 셋업 범죄의 천국이었다. 2017년 1월부터 이달까지 셋업 범죄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국내 수사를 거쳐 판결까지 내려진 사건은 총 9건이었다. 언뜻 적어 보이지만, 신고를 꺼리는 성매매 특성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23일 “셋업 범죄는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건이 대부분인 ‘암수(暗數)범죄’”라고 설명했다. 실제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세부 분관은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홈페이지에 ‘셋업 범죄를 조심하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한 외사 경찰관은 “태국, 캄보디아 등지에서도 셋업 범죄가 종종 발생하긴 하나 필리핀에 비할 바는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필리핀이 셋업 범죄의 온상이 된 배경은 복합적이다. 필리핀 사정에 밝은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은 “지리적 인접성, 유흥 문화의 발달, 뿌리 깊은 부패, 자유로운 총기 사용 등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2015년 5월 필리핀 현지에서 50대 한국인 관광객 4명을 상대로 이뤄진 셋업 범죄에는 이런 요소들이 모두 녹아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현지 교민이 중심이 된 셋업 일당은 ①사전에 현지 여성과 현직 경찰을 섭외(매수)하고 ②인터넷 카페에 ‘황제관광’으로 불리는 성매매 여행상품을 광고한 뒤 피해자를 유인한다. 이후 ③경찰이 호텔을 덮쳐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피해자를 체포해 유치장에 구금한다. ④경찰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당은 “합의 안 하면 한국에 못 간다”고 거들며 수천만~수억 원을 뜯어내는 식이다.
◆ "덫에 걸리면 무죄 석방은 불가능"
문제는 공권력이 범죄의 주체이다 보니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필리핀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며, 특히 18세 미만 성매매는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피해자 입장에선 ‘대사관에 알려져 한국에서 미성년자 성매매로 처벌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느니 돈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10월 19일 이 같은 수법으로 한국인 관광객에게서 5억 원을 갈취하려다 검거된 40대 남성이 국내 송환됐는데, 극히 드문 사례다.
설령 A씨 사례처럼 성매매를 하지 않은 경우도 무죄 입증이 여간해선 쉽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셋업에 가담한 경찰은 범죄가 들통나면 처벌받기 때문에 끝까지 유죄를 주장할 것”이라며 “또 이역만리 타국에서 증거를 모아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ㆍ금전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필리핀 여행 상품은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형님, ‘공돈’ 500만 원이 생겼는데 필리핀 안 가실래요?” 2019년 4월 25일, 60대 A씨는 후배 B씨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다. 평소 B씨가 주식투자를 대신 해준 터라 그는 의심 없이 필리핀행(行)에 응했다. 열흘 뒤 두 사람과 또 다른 후배 C씨는 마닐라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야외 수영장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은 현지 여성 5명과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하지만 객실로 이어진 술자리에 A씨가 잠깐 담배를 가지러 옆방에 갔다 온 사이 참석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몇 분 뒤 들이닥친 경찰은 그에게 미성년자 강제 추행 혐의를 씌워 유치장에 구금했다. 그때부터 후배들은 “미성년자 성추행은 최대 20년형”이라며 사건 무마 대가로 8억3,000만 원을 요구했다. A씨는 돈을 약속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A씨의 재산을 노린 ‘셋업(Set upㆍ함정)’ 범죄 일당이었다.
◆ 유흥, 부패, 총기… 셋업 범죄 '천국' 필리핀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표적 삼는 셋업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셋업은 미리 정한 대상을 함정에 빠뜨려 석방을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 방식이다. 요즘엔 한국인 관광객에게 미성년자를 접근시켜 성매매를 하게 하고 경찰 신고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을 많이 쓴다. 경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관광길이 끊기면서 한동안 뜸하던 필리핀 셋업 범죄가 관광 재개와 함께 다시 고개를 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8월 필리핀으로 향한 한국인은 16만8,176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3,254명) 대비 5,068% 폭증했다.
사실 필리핀은 코로나19 전에도 셋업 범죄의 천국이었다. 2017년 1월부터 이달까지 셋업 범죄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국내 수사를 거쳐 판결까지 내려진 사건은 총 9건이었다. 언뜻 적어 보이지만, 신고를 꺼리는 성매매 특성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23일 “셋업 범죄는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건이 대부분인 ‘암수(暗數)범죄’”라고 설명했다. 실제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세부 분관은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홈페이지에 ‘셋업 범죄를 조심하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한 외사 경찰관은 “태국, 캄보디아 등지에서도 셋업 범죄가 종종 발생하긴 하나 필리핀에 비할 바는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필리핀이 셋업 범죄의 온상이 된 배경은 복합적이다. 필리핀 사정에 밝은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은 “지리적 인접성, 유흥 문화의 발달, 뿌리 깊은 부패, 자유로운 총기 사용 등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2015년 5월 필리핀 현지에서 50대 한국인 관광객 4명을 상대로 이뤄진 셋업 범죄에는 이런 요소들이 모두 녹아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현지 교민이 중심이 된 셋업 일당은 ①사전에 현지 여성과 현직 경찰을 섭외(매수)하고 ②인터넷 카페에 ‘황제관광’으로 불리는 성매매 여행상품을 광고한 뒤 피해자를 유인한다. 이후 ③경찰이 호텔을 덮쳐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피해자를 체포해 유치장에 구금한다. ④경찰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당은 “합의 안 하면 한국에 못 간다”고 거들며 수천만~수억 원을 뜯어내는 식이다.
◆ "덫에 걸리면 무죄 석방은 불가능"
문제는 공권력이 범죄의 주체이다 보니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필리핀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며, 특히 18세 미만 성매매는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피해자 입장에선 ‘대사관에 알려져 한국에서 미성년자 성매매로 처벌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느니 돈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10월 19일 이 같은 수법으로 한국인 관광객에게서 5억 원을 갈취하려다 검거된 40대 남성이 국내 송환됐는데, 극히 드문 사례다.
설령 A씨 사례처럼 성매매를 하지 않은 경우도 무죄 입증이 여간해선 쉽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셋업에 가담한 경찰은 범죄가 들통나면 처벌받기 때문에 끝까지 유죄를 주장할 것”이라며 “또 이역만리 타국에서 증거를 모아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ㆍ금전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필리핀 여행 상품은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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