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할까. 한 발짝만 움직이면 될텐데 그냥 이대로 나가버릴까? 아니, 난 잘못한게 없는데. 모르는 척하고 저기 앉아? 음, 왠지 살인날 것 같은데.
"뭐 합니까?"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마치 어떤 강력한 충동을 겨우 누르고 있는 듯한. 나는 생애 처음으로 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고민을 그 한 마디에 간단히 결정했다.
나가자. 조금 멀어도 산책한셈 치고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구경이요. 안녕히 계세요."
그대로 문을 닫아버리고 엘레베이터로 몸을 틀었다.
"어- 어디 가세요?"
"그러게요. 여길 왜 왔을까요."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간호사가 의아한듯 물었다. 제일 꼭대기에서부터 천천히 내려노기 시작하는 빨간 숫자를 초조하게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왜 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본능이 여자와 만나지 말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말했지 내가."
모 영화의 싸이코역을 맡았던 배우와 비슷한 목소리와 함께 차가운 손이 후드티 속으로 들어와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분을 잡아 나를 돌려세웠다.
"피하지 말라고."
언제 온건지 여자가 바로 앞에 보였다. 우리나라 여자 평균 키에도 살짝 못미치는 키와 보통 남자를 넘는 키의 갭은 컸다. 당기는 목에 저절로 인상이 찌뿌려졌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여자가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쥐었다. 순간 목을 조를 것 같아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구경은 뭐가 구경이야. 이렇게 뜨거운데. 따라 오시죠."
차가운 손은 도그 칼라 네클리스 정도까지만 목을 조였다가 금방 떨어졌다. 아까보다 확연히 누그러진 목소리에 눈꺼풀이 떨릴만큼 세게 감고 있던 눈을 뜨자 흰 가운을 걸친 여자가 진료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춤주춤 다시 진료실로 돌아가는 나를 간호사가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어색하게 웃어주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
"앉으세요."
문을 닫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자 컴퓨터가 놓인 책상 위에 있던 청진기를 목에 걸며 여자가 제 앞의 진료용 의자를 가리켰다.
은색 금속태 안경에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익숙하게 뭔가를 조작하는 모습은 진짜 의사 같아서 평소에 보던 여자와는 많이 달랐다.
"신기해요."
뒤로 반쯤 눕혀진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하자 여자가 리모컨으로 의자를 세웠다.
"뭐가 말입니까."
"그쪽이 의사란 거요. 난-"
말을 하다 갑자기 기침이 나오려 해 목을 잡았다. 나를 쳐다보고 있던 여자가 인상을 구겼다.
"그걸로는 안 죽습니다만."
"죽을 생각, 은 아니에, 요. 기침 때문에,"
내 대답에 여자가 제 의자를 끌어당겨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치우시죠."
악. 여자가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피부가 약한 편이라 빨갛게 된 손등을 부여잡고 노려봤지만 슬쩍 비웃으며 오른쪽 귀를 가리던 머리카락을 치웠다.
"....38.7도."
귀에 걸려있는 피어싱을 봤을텐데도 변하지 않던 표정이 체온계를 읽으며 찌뿌려졌다.
"아 그래요?"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여자가 너무 심각한 표정이었다.
"지금 그렇냐는 말이 나옵니까? 열은 높고 목소리는 다 쉬었는데? 아까는 구경이라면서 가려고 하더니. 미쳤어요?"
이 여자 어쩌면 뒤끝이 엄청날지도 모르겠다.
"입 벌리세요."
여자가 내 마스크를 벗겨주며 말했다. 의외로 친절하다고 생각하며 얌전히 입을 벌렸다.
젠장-
"?"
욕이 들렸던것 같은데. 여자는 웃고있었다. 조금 이상한 미소이긴 했지만. 항상 최대 음량으로 노래를 듣다보니 귀가 드디어 이상해졌나보다.
"어제....때문인겁니까."
신경질적으로 내 혀를 눌렀던 쇠를 통에 던지듯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마도, 콜록- 그럴걸요."
"왜 왔던 겁니까?"
기침소리에 다시 마스크를 씌워 주고 어떤 통에서 하얀 긴 면봉을 꺼내며 물었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외로웠던 것 같아요."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여자의 옆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것을 말 한 것은 처음이라 내가 말하면서도 놀라야 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을 상상했었을때 많이 울 것 같다는 예상은 틀렸다. 눈물 따위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보고 싶었어요. 따뜻해 보이는 카페 안에 그쪽이 있을 것 같아서."
비바람이 세차게 내리던 어제 밝은 오렌지 빛이 새어나오던 카페가 떠올랐다. 내가 바보같아 실없이 웃음이 나올 것 같다.
"....독감 검사 할 겁니다. 코로 넣을 건데 조금 아플 거에요. 움직이면 더 아프니까 가만히 있으세요."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던 여자가 긴 면봉을 들어올리며 조금 더 다가왔다. 손이 점점 가까워지자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뒤로 뺐지만 언제 뻗은 건지 여자의 손이 머리를 받쳐 움직일 수 없었다. 코 속으로 무언가 들어오는 불쾌한 감각이 느껴짐과 함께 고대 이집트의 미라 만드는 법이 생각났다. 얇은 꼬챙이를 코 속으로 넣어 뇌를 휘저어 빼낸다는-
"컥, 콜록! 욱-"
면봉이 코속으로 들어와 목에 닿았다가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눈이 떠졌고 생리적인 현상으로 인해 헛구역질과 기침, 그리고 눈물이 나왔다.
"으욱-"
헛구역질과 기침은 곧 멈췄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흘러 나왔다.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막아놓은 둑을 터 놓은 것 같다.
"괜찮아요. 울어도 돼. 어떻게 참았어. 혼자 힘들었잖아."
누가 나를 끌어 안았다. 따뜻하다. 정신 없는 와중에 머리 윗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울컥해 더 신나게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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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쨍하고볕든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