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구원론
제1장 구원론 서론
제1절 구원론과 종말론의 연관성
조직신학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다루는 신론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왜 죄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인간론,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기독론에 이어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에 관한 구원론을 다룹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까닭에 죄인이 되었고, 아담의 죄가 온 인류에게 전가되어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그 내용을 다루는 것이 구원론입니다.
구원론은 조직신학의 다른 분야와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구원론이 종말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궁극적인 목적은 마지막 때, 즉 종말에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종말론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먼저 시한부 종말론을 떠올리고 종말론은 이단 사설이라고 정죄하는 사람도 있는데, 시한부 종말론은 정상적인 종말론이 아니지만 종말론은 성경과 신학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종말의 날은 언제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시한부 종말론은 종말의 때를 안다고 하니까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은 이단 사설이지만, 성경적 종말론은 우리의 영생이 걸린 주제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종말론은 “시작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으로 구분합니다.
‘시작된 종말론’은 성도들이 종말론적인 축복을 현세에서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말 그대로 마지막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태어나시며 시작되어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종말이 시작되었으니까, 종말론은 일차적으로 ‘시작된 종말’로서 그날들을 다룹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죄인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새 생명을 주셨으므로 죄인들은 육신이 죽기 전에 이 땅에서도 구원의 축복을 누리며 삽니다. 그것이 시작된 종말론입니다.
특히 오순절에 공식적으로 이 땅에 임하신 성령님이 주시는 열매는 믿는 자들이 장차 가게 될 천국을 영으로 경험하며 종말의 날들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미래적 종말론’은 실제로 이 땅에 임하는 마지막 날을 말합니다. 믿는 자들은 ‘이미’ 구원을 성취하고 천국을 경험하며 살지만, 다가올 구원의 완성과 천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이루어진 종말인 천국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적 종말인 천국 사이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그 종말이 없다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교의학 즉 조직신학은 종말론에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제2절 구원의 서정(序程)
구원론에서는 구원받는 순서를 다루는데, 그 순서를 구원의 서정이라고 말합니다. 서정이라는 말은 어떤 감정적인 정서가 아니라 순서와 과정을 말합니다.
구원의 서정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순서가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교파에 따라서 각기 다른 구원의 서정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각 교파의 구원의 서정을 다 공부하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다 공부할 필요는 없고, 개혁파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의 서정만 공부합니다.
1. 구원의 서정의 定意와 의의
1) 구원의 서정의 정의
구원의 서정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구속 사역을 죄인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다양한 활동들을 논리적이며 상호 연관적인 순서로 서술하는 것”입니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김길성 교수는, “구원의 서정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객관적인 속죄가 선택받은 개인에게 어떻게 주관적으로 적용되는가 하는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루이스 벌코프는 “구원의 서정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진 구원의 사역이 죄인들의 심령과 삶에 주관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용어”라고 정의합니다.
2) 구원의 서정의 意義
‘구원의 서정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구원의 은혜를 부여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어떻게 적용하시는가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한 루이스 벌코프의 말이 개혁파 신학의 중요한 관점이며 구원의 서정의 意義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원의 서정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서 구원론에 대한 전체적인 신학의 틀이 바뀌게 됩니다.
구원의 서정을 설정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혁파가 말하는 방향으로 구원의 순서를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해서 구원의 전체적인 주도자가 하나님이시라는 방향입니다.
다른 하나는 비개혁파가 주장하는 방향으로, 구원의 출발점을 인간 쪽에 두어서 구원의 주도자가 인간이라고 하는 방향입니다.
2. 칼빈주의적 구원의 서정
1) 개혁주의자들의 다양한 입장
구원의 서정은 교파마다 다르게 규정합니다. 로마가톨릭과 개신교가 다르게 말하고, 개신교 중에서도 교파마다 각기 다르게 말하고, 개혁파 신학자들도 각기 다르게 말합니다.
개혁파 신학자의 대표격인 헤르민 바빙크, 존 머레이, 루이스 벌코프, GC 벌카우어, 박형룡 등은 각기 나름대로 구원의 서정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을 근거로 구원의 서정을 말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에서 공통적으로 예정, 부르심, 믿음, 칭의, 성화, 영화의 순서를 추출해서 자기 나름의 세부적인 구원의 서정을 말합니다.
루이스 벌코프는 구원의 서정을 “소명 → 중생 → 회심 → 신앙 → 칭의 → 양자 → 성화 → 성도의 견인 → 영화”의 순서로 말합니다.
2) 칼빈주의 구원의 서정의 특징
개혁파 구원론은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하기에 무능력하므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가된 의에 의해서만 죄의 영향력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제29, 30문답에서 구원은 성령께서 적용하시는 역사이며 성령님께서 인간들이 믿도록 역사하시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는 10장 “하나님의 예정과 믿는 성도들의 선택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그리고 순 은혜로 사람의 그 무엇을 조건으로 삼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뜻하신 믿는 성도들을 예정 혹은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때문에 택하시는 것이지 우리를 직접 택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이제 신앙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는 사람들이 택함을 받은 사람인 것을 확증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