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모니터링
(작성자 : 모예림 ) (동아리명 : 꿈말사람들 )
(작성일자) 2014년 5월 24일 (토)
(문화재명) 거창신씨 묘역,/문화류씨 묘역
(문화재 종류) 시도유형문화재 제78호/시도유형문화재 제79호
(문화재 소재지) 서울 송파구 오금동 51
(찾아가는 길)오금역 2번출구에서 오금공원 안쪽으로 10분 도보
(문화재 관리)거창신씨종친회 /문화류씨 종친회
(문화재 해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선경의 묘를 비롯한 거창 신씨들의 묘역이다. 신성경은 세조 1년 사헌부 장령을 거쳐 동지추부정사를 지냈다. 거창 신씨는 원래 중국 송나라 개봉부 출신인 신수가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왔다가 고려에 귀화하여 고려인이 됨으로써 거창 신씨의 시조가 되었다. 신선경의 묘는 약 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정부인 한씨와의 쌍분이다. 2개의 봉분 가운데에는 묘비,상석이 1개씩 있고 문인석이 한쌍이다. 묘비 윗부분이 연꽃무늬로 장식되어 있어 묘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이항복과 함께 3등공신으로 선조대왕을 보필한 문양공 류희림(柳希霖), 문원군 류복룡(柳伏龍), 공조참의 류인호(柳仁濠)의 묘소이다.류희림은 복룡의 아들로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명종 15년(1560) 1,000여명의 성균관 유생을 대표하여 다시 일어나고 있는 불교를 비판하고, 선종·교종 모두를 폐지하자는 상소를 올렸다.명종 16년(1561)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선조 14년(1581) 형조참판으로 동지사가 되어 중국 명나라에 다녀왔으나 가지고 간 지방의 산물이 부족하여 낮은 벼슬자리로 옮겨졌다.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첨지중추부사로서 왕을 호종하여 좌승지로 발탁되었다.이후 동지중추부사·예조참판 등을 거쳐 1597년 동지돈녕부사가 되었다.죽은 뒤인 선조 37년(1604) 호성공신 3등에 봉해지고 문양공에 봉해졌다.묘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공원내에 있으며, 묘역에는 상석·망주석(望柱石: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돌기둥)·문인석·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들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무덤 가까이에 세워두는 비) 등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모니터링 내용)
처음에 거창신씨묘역과 문화류씨묘역으로 가고 있을 때 표지판을 보았는데 분명 묘역을 가는 길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묘역에 대한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다. 또 거창신씨 묘역같은 경우는 외진곳에 있어서 처음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었다. 표지판도 제대로 세우고 묘역가는 길도 제대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묘역들을 찾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신씨묘역은 처음 들어갈 때 볼록 튀어나온 묘같은 것이 있었다. 한동안 관리를 안했는지 잡초도 무성했고 여름인 지금에도 낙엽이 아직도 떨어져 있어서 보기에 안좋았다. 문화류씨 묘역은 다행히도 길은 나있었고 찾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이번 거창신씨묘역과 문화류씨묘역은 왕릉과 많은 차이점을 보이는데 일단 왕릉은 도읍지의 4대문 10리 밖 80리안에 위치해야 한다는 법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한양 외곽에 위치해 있다. 또 왕릉은 풍수지리를 물,산,땅,바람 등의 자연현상이나 지형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왕릉 입구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준비하는 곳인 재실이 있고, 이어서 연못과 금천교라는 다리가 있다. 금천교는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과 속세의 공간을 구분해 주었다. 금천교를 지나면 이곳이 신성한 장소라는 것을 뜻하는 붉은색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 앞에는 참도라는 길이 이어져 있는데 참도는 죽은 영혼(왕)이 이용하는 신도와 살아 있는 왕이 이용하는 어도로 나누어져 있다. 참도가 끝나는 지점에는 정자각이 있다. 정자각은 향을 올렸던 곳으로 실제로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정자각 뒤편은 본격적인 능침(무덤) 공간이다. 정자각 뒤로 참도가 약간 이어진 끝에 무석인과 문석인, 석마 등의 돌조각이 놓여 있고, 두 문석인 사이에는 묘역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장명등이 있다. 또 무덤 앞에는 혼유석이라는 넓은 돌이 있다. 혼유석은 음식을 올려놓는 곳이 아니라 영혼이 능침에서 나와 휴식을 취하거나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에 비해 거창신씨 묘역과 문화류씨 묘역은 재실,연못,금천교,홍살문,정자각이 없고 왕릉에 비해 묘역이 단촐하다. 또 왕릉같은 경우에는 신도비에 비각이 있는데 이 묘역은 비각이 따로 없다.
(관련사진)
사진소개1- 거창신씨묘역과 문화류씨묘역 가는 길이 없는 표지판
사진소개2-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있는 거창신씨묘역
사진소개3-거창신씨묘역 전경
사진소개4-거창신씨 쌍분
사진소개5-문화류씨 묘역
사진소개6-문화류씨묘역 신도비
사진소개7-문화류씨 상석
사진소개8-문화류씨 망주석,문인석
(소감 및 후기)
이번에 모니터링 한곳은 오금공원 내에 위치하는 거창신씨묘역과 문화류씨묘역이다. 오금공원은 워낙 많이 온 곳이라 이 묘역들도 가끔가다가 계속 봐왔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본 것은 처음이었다. 미리 조사를 해온 사람들은 발표를 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잡초라도 뽑았으면 문화재가 깨끗해지는데에 도움이 됬을텐데 허락을 받지 않은 터라 잡초를 뽑지 못하여 아쉬웠다. 다음에는 관리가 잘 되어있는 묘역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활동은 묘역을 2군데만 돌아서 다른 활동에 비해 일찍 끝났다. 다음 활동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