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보성군의 큰 인물 : 홍암 나철과 송재 서재필

[문대식]

보성군의 큰 인물 : 홍암 나철과 송재 서재필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동인학회 원장)

 
보성군은 대한민국 남해안에 접한 농촌지역으로 벌교꼬막과 보성녹차로 유명하다. 서울에서 보성까지 고속버스가 하루에 한번만 왕복하는 오지(?)이기도 하다. 오지란 청정지역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공해와 생활에 찌든 도시인들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 아닐 수 없다.
보성군의 지형을 보면 호남정맥이 서에서 동으로 달리는데, 제암산(807m)에서 발원한 보성강도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소위 서출동류西出東流의 강은 길지를 품었다고 말한다. 보성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명사名士 홍암 나철과 송재 서재필의 생가를 찾아본다.
호남정맥은 금남호남정맥의 주화산에서 분기하여 내장산-무등산-사자산-제암산으로 이어지면서 영산강 유역과 섬진강 유역을 나누고 있다. 보성군은 제암산에서 발원한 섬진강의 지류 보성강을 보듬고 있다. 한양에서 멀수록 벼슬의 길도 멀다. 풍수에서 분류하는 귀貴-부富-손孫의 복을 살펴보면, 명예가 따르는 벼슬의 기운은 숨어 있다. 산의 모양이 후덕하고 순박하여 시류에 편승하는 정치인은 별로 나오지 않겠지만,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의인들이 나타나는 땅이다.

서출동류의 보성강

우리나라의 지형은 백두대간이 등뼈처럼 동쪽에 버티고 있어서 대부분의 강이 동에서 서쪽의 서해로 흘러간다. 이를 동출서류라 한다. 이에 반해 서출동류란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강의 흐름이다. 풍수적으로 서출동류의 강이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의 본류가 있고 그 강의 지류가 서출동류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본류와 지류 사이의 땅은 물이 감싸고 있는 형태가 된다. 

나철과 서재필 생가의 공통점

나철과 서재필의 생가는 용맥 위에 지어진 집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용맥 위에는 학교나 관청 또는 종교시설이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이 숙식하는 주택은 산기슭(용복龍腹이라 한다)에 의지하여 보국이 좋은 곳에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용맥에 집을 짓는 것을 피하는 이유는, 산의 강한 기운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므로 성격이 강하고 리더로서 천부적 자질을 타고난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해내어야 하는 성격을 지니므로 가족들이 희생되거나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서에 의하면 산 정상에서 뚜렷이 연결된 용맥에 지어진 집에서는 현달한 인물이 나고, 산 정상 아래에서 생긴 용맥에 지어진 집에서는 부자가 난다고 했다.

송재 서재필의 생가   망일봉의 능선을 타고 내려온 용맥 위에 지어진 집이다. 집 우측 뒤에 서재필의 외조부 이기대의 묘가 있다. 마을 앞으로 갈천이 흘러 보성강으로 들어간다. 사진 우측 끝에 있는 기와집이 초당이다. 망일봉에서 시작된 능선이 초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송재 서재필 _ 역적에서 독립운동가로

독립운동가 서재필(1864-1951)이 보성출신이라는 점이 생소했다. 대구서씨는 약봉 서성을 필두로 명문가 반열에 올랐다. 명종 대에 대구에서 한양으로 올라와서 조선이 망할 때까지 양반사회의 주류를 구성한 가문이었다. 약봉 서성의 둘째 아들이 서경수, 서경수의 증손이 영조대왕의 국구 서종제이다. 국구란 왕의 장인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서종제의 딸이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이다. 서종제의 7세손이 서광효이다. 서광효는 가세가 기울어 집안이 한미해지자 보성의 재력가인 성주이씨 이기대의 딸에게 장가가서 10년간 처가살이를 하던 중 서재필을 낳았다. 

초당_서재필이 태어난 건물   해방이 되고 미국 하지 준장의 고문으로 귀국했을 때, 외사촌들에게 초당의 모습을 자주 물었다고 한다.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자란 공간을 잊지 못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보여지는 공통적인 모습이다.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는 망일봉에서 내려온 산의 능선을 타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 마을의 중앙으로 내려온 용맥 위에 지어진 초당草堂에서 서재필이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생가 주변에는 돌들도 많이 흩어져 있어서 성격이 남달랐으리라 짐작된다. 그의 탄생과 더불어 부친도 과거에 급제하며 동복(보성)군수를 지내는 경사를 맞이한다.

수구세력에 대항하여 낡은 봉건사회를 개혁하고자 급진개화파인 서재필은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의 13촌당숙)·홍영식과 함께 갑신정변(1884)을 일으켰으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한다. 정권을 되찾은 민씨들의 반격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서재필의 일가는 몰살된다. 부모형제와 처자식은 물론이고 양부모와 처갓집, 외갓집까지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 엄청난 핍박을 당한다. 양부모는 10대조에서 갈라진 21촌 아저씨 서광하였다. 그는 7살까지 외가에서 자라다가 서광하를 따라 상경하여 양모의 동생 안동김씨 김성근의 집에서 학문을 닦는다. 여기서 김옥균을 만나서 개화의식을 접하게 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조선시대에 양자로 간다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자는 물려받지 못했지만, 물질적인 혜택과 그 가문이 가진 정신적인 유산과 인적네트워크를 물려받는 다는 점에서 양부모와 생사를 같이 하게 되는 가족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재필기념공원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 건립된 기념공원이다. 사당과 동상이 서 있다. 멀리 망일봉(652m)을 중심으로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서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다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동상이 어릴 적 뛰어 놀던 망일봉을 바라보며 회포를 풀고 있다.


일본을 거쳐 망명한 미국에서의 10년. 인종차별과 언어불통의 문제를 극복하고 미국사회에 적응한 1890년 그는 미국으로 귀화한다. 그리고 1895년 복권이 되고 김홍집내각의 요청으로 미국인으로 귀국한다. 중추원고문으로 임명되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개화운동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독립과 자주근대화를 위해 독립협회도 창설했다.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으며, 윤치호와 함께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고 노비해방운동도 전개하였다. 아관파천으로 정부가 자주성을 잃었다고 판단한 선생은, 정부의 탄압과 정적들의 공격이 이어지자 다시 미국으로 출국한다. 1919년 삼일운동의 소식을 접하자 의사로써 미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전개한다.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구국운동가에서 민족종교가로 _ 홍암 나 철

나주나씨는 고대중국의 황제를 기원으로 하는 씨족으로 신라시대에 망명한 나부공을 시조로 하고 1대가 나득규羅得虬이다. 그의 23세손이 나철(호적이름:斗永)이다. 나주나씨는 나주를 거점으로 한 지방호족이면서 대대로 관직에 나아가서 벼슬을 할 정도로 매사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깨어 있는 가문이었다.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마을에서 홍암 나철(1863-1916)이 태어났다. 생가는 용맥 위에 우뚝하게 지어져 있다. 강한 용맥 위에서 태어난 사람은 가시덤불 숲을 뚫고 나가는 기개를 지닌다.

나철 생가전경   마을 중앙 붉은 벽돌 담장이 있는 단아한 기와집이 나철 생가이다. 집 뒤에서 용맥이 들어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담장이 산 능성의 영역에 따라 쌓았음을 보여주듯 길숨하게 만들어져 있다.

홍암 나철 생가  노강산(323m) 정상에서 연결된 용맥 위에 지어진 집이지만 특이하게도 집 앞에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땅 속의 기운이 집안에 머물게 하는 방편으로 만든 연못이다.
수백년의 세월을 버텨온 노거수老巨樹가 서 있는 자리는 명당에 속한다. 수백년동안 천재지변이 미치지 않은 곳이고, 사람의 화도 미치지 않은 곳이다. 또한 노거수는 비가 아닌 땅속의 물을 흡수하며 산다. 하루에도 엄청난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명당 주위에는 이렇게 맑은 물이 지나간다. 물은 생기를 공급하는 기재이다. 풍수고전 <금낭경>에서도 “음양의 기는 내뿜으면 바람이 되고 오르면 구름이 되며, 떨어지면 비가 되고, 땅 속을 돌아다니면 생기가 된다”고 하였다.

 

2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로 나가지만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비밀단체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벌였다. 홍암은 1905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라고 일왕의 궁성 앞에서 3일간 단식 항쟁을 하였다.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나라 안의 매국노를 처단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판단하고 귀국. 1907년 1월부터 암살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여 오적의 주살(誅殺)을 시도는 실패하고 10년의 유배형을 받지만 고종의 특사로 풀려난다.

1908년 일본에서 구국 활동할 때 두일백(杜一白)이라는 노인이 찾아와서 단군교를 포교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라는 가르침을 받고는 귀국한다.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 단군교를 공표하고 1910년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외세가 밀려오자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해 열강들의 눈치를 살피며 기회를 엿보는 사대부를 질책하며 민족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 민족의 선조 단군을 섬기는 고유의 신앙을 민족 종교로 부활시킨 것이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에서의 포교활동이 어렵게 되자, 만주에서 대종교의 확대 포교를 구상하고 총본사를 이곳으로 옮기어 대종교(大倧敎)를 크게 번창시켰다. 또한 독립정신을 고취시켜 북로정서군 총재 서일,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을 비롯한 무장독립운동세력과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김교헌과 같은 민족사학자들과 한글문화운동을 일으킨 주시경, 지석영, 김두봉, 그리고 민족지도자 이시영, 신규식, 안재홍, 이동녕 같은 인물들이 모두 대종교 사상을 바탕으로 활동했다. 이 당시 평민은 동학을, 양반지식층은 대종교에 가담했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이겨내기 위해서 단군을 정점으로 한 민족의 재발견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려한 것이 방황하는 지식인층을 움직인 대사건이었다.

홍암 나철의 사진  생가에 모셔져 있는 홍암 나철의 생전 사진



홍암 나철이 태어난 금곡마을 전경  마을 우측에 새로 짓는 대궐 같은 기와집은 나철선생을 성역화하기 위한 사당이다.

 
조선의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대종교의 교세가 확장되자, 일제는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탄압한다. 이에 나철은 1916년 8월15일 구월산 삼성사에서 3일 단식동안 조식법調息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교를 단행하여, 광복의 날이 8월15일임을 암시한다. 유언에 따라 대한민국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묻힌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