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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재사랑산악회-196차 산행] ♣ 호남정맥 광주 무등산
▶ 2019년 1월 20일 (일요일)
* [산행 코스]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화순 이서분교>(11:00)→ 상상공원지킴터→ 규봉암→ 지봉너덜→ 석불암→ 장불재 아래 야외식탁→ 장불재→ 입석대→ 승천암→ 서석대→ 인왕봉 조망→ 상고대→ 목교→ 중봉→ 중머리재→ 증심사→ 증심교→ 주차장(오후 5;30)
* [프롤로그] — 새해, 나라의 앞날이 암담하다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각자 한 해의 따뜻한 소망을 품고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 세상사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도, 그래도 ‘새해’에는 무언가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갖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작금 나라 사정은 모든 면에서 암울하기 짝이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관용은 잊은 지 오래고, 오직 증오와 대립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잘못을 범한 사람을 징계하고 처벌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데 있다. '권력의 눈밖'에 한번 걸려들면 끝장을 내고 만다. 권력의 주구인 검찰은 어떻게든 해당자에게 죄의 굴레를 씌워 인간적인 자존심부터 짓밟아버린다.
집권 3년 차를 맞는 문재인 정권은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안보 등 모든 면에서 끊임없는 패착(敗着)을 두고 있다. 도처에서 국정이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념의 프레임에 갇힌 잘못된 정책들은 개선할 뜻이 전혀 없다. 오히려 대통령 신년사에서 이전의 정책을 더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리하여 사회는 어느 때보다 집단 간의 심한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고, 산업 활동 등 모든 경제지표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 외교는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고, 안보의 우방인 미국과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분명 대한민국은 지금 위기 상황이다.
아니 정권의 아류들은 김정은을 위인으로 칭송하고, 미국대사관 앞에서 노골적으로 반미(反美)의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 그리고 ‘비핵화’의 의지가 전혀 없는 북(北)에 충성을 다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북(北)의 속내는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아 정치적 입지를 굳힐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앞으로 한·미 관계가 상호 신뢰를 잃어가게 되면 궁극에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떠날 것이다. 그후 우리는 북의 ‘핵우산’ 속에 기어들어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다. 생존과 자유를 담보할 수 없는 그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는 비굴하게 연명해야 할지 모른다. 2019년 1월 1일 새해, 아침 <칼럼>이 이러한 상황을 적실하게 지적한다.
“핵(核) 싸움은 진작에 끝났다. 지난 2년여에 걸친 '북핵 싸움'에서 이긴 쪽은 북한이고 진 쪽은 한국과 미국이다. 북한은 우여곡절에도 끄떡없이 핵과 미사일을 지켜냈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의 무릎을 꿇리거나 속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마당에서 한국이 잃은 것은 한국의 입지와 자존심이다. 북한의 '선의'(?)에 매달리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미소와 아부를 보내는 데 올인했다. 김정은이 올 초 답방하겠다니 감지덕지한다. 대통령은 한 나라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토를 보전하는 것 못지않게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존재 이유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곧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어느 다른 나라의 이해관계를 여기저기 부탁하고 다니며 북한 관계 말고는 질문도 안 받는 독단적 처사는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직무 유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정권이 벌이는 '권력의 농단'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탐욕과 도덕적 타락은 후안무치의 극을 이룬다. 예컨대 국회의원 손혜원의 경우, 공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권력형 비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SBS에 보도에 의하면, 남편, 조카, 측근과 측근의 가족이 2017년 봄 이후 목포 구도심 일대에 구입한 것으로 확인된 부동산이 의혹 제기 첫날 9건에서 15건, 20건, 25건으로 계속 늘어났다. 손혜원은 같은 무렵 국회 발언을 통해서 목포 구도심 개발을 정부에 촉구했고 2018년 8월 해당 지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땅값과 집값이 급등했다. 그녀가 속한 국회 문체위 담당 문화재청 예산 500억원을 비롯해 국가 예산 1100억 원이 손 의원 측이 매입한 부동산 일대에 투입된다. 그녀가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11억원 중 7억여 원을 남편 재단에 기부해 목포 지역 부동산 매입 자금으로 쓴 사실도 확인됐다. 그뿐인가 국립박물관 등에 행사한 그의 ‘달변의 갑질’은 한두 건이 아니다. 그동안 언론이 손혜원 의혹에 대해 보도한 핵심 내용들이다. 손혜원은 이 중 하나도 구체적으로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투기하지 않았다. 의원직과 재산과 목숨을 걸겠다"고 당당하게 강변한다. 공인(公人)의 개념이 없다! 그녀는 한낱 '손갑순'일 뿐이다.
현 정권의 특징은 잘못된 일이 드러나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개를 들고 역정을 내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는 없다"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꼴뚜기" "망둥이"라는 말이 청와대 인사들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여당 대표는 장애인들 앞에서 "정치권에 정신장애인이 많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손혜원 의원은 투기 의혹 등 많은 부적절 행위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무차별적인 역공을 폈다. 참으로 가관이다.
* [오늘의 산행지 무등산(無等山)] — 호남정맥의 중심에 솟은 남도의 명산
무등산(無等山)은 호남정맥의 중심(中心)에 있다. 호남정맥(湖南正脈)은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뻗어 나온 금남호남정맥에 있는 전라북도 장수군 주화산(珠華山)에서 시작하여 내장산을 경유하여 백암산을 지나고, 담양의 추월산(秋月山, 729m)을 거치면서 담양호를 사이에 두고 커다란 U자를 그리면서 강천산, 산성산, 광덕산으로 이어져 광주 무등산(無等山)에 이른다. 그리고 그 산줄기는 보성-장흥까지 계속 남하하다가 순천 조계산으로 북상, 광양의 백운산에서 끝을 맺는다. 정맥의 시작점은 금남호남정맥의 전라북도 진안군의 주화산, 금남정맥과 분기하여 시작한다. 지도상의 도상거리는 약 398.7km정도이며, 종점은 전라남도 광양시 백운산-망덕산이다. (전북 무주의 주화산(珠華山, 565m)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는 ‘금남정맥(錦南正脈)’은 금산 대둔산 - 공주 계룡산으로 이어져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백두대간과 남한의 9정맥도 [산경표]
호남정맥은 낙남정맥(洛南正脈)과 함께 우리나라의 남부해안 문화권의 구획을 나누는 의미 있는 산줄기이다. 호남정맥의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등이 흐른다.
백두대간 - 9정맥과 5기맥 - 모든 강은 백두대간과 정맥과 기맥 사이에서 형성된다
"천하의 형세를 살펴볼진대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수없이 갈라져 나온 것이고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나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김정호 <대동여지도>
天下之形勢 山主分而脈本同其間 水主合而原各異其間 ; 金正浩 <大東與地圖> 序文
현대 지도에서 호남정맥의 산 이름으로 찾아보면, 주화산(565m)·곰재·만덕산·경각산(鯨角山)·오봉산(五峰山)·내장산(763m)·백암산·추월산(729m)·산성산(山城山)·설산(雪山)·국수봉(國守峰)·북산(780m)·무등산(1,187m)·안양산(853m)·천운산·두봉산(斗峰山)·용두산·제암산(帝巖山, 779m)·일림산(日林山)·방장산(方丈山)·존제산(尊帝山)·백이산(伯夷山)·굴목이재(630m)·조계산(884m)·희아산(戱娥山)·동주리봉·백운산(1,218m) 등이다.
특히, 이 중에서 우리가 올랐던 산들은 다음과 같다.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되는 함양의 영취산(1,076m)을 비롯하여, 그 금남호남정맥 장수 장안산(1,237m)과 진안의 마이산(686m), 주화산에서 분기되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호남정맥 중 임실 옥정호의 오봉산(513m), 정읍의 내장산(783m), 담양 담양호 서쪽의 추월산, 담양호 동쪽의 순창 강천산(584m), 그리고 순천의 조계산(884m)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오늘 오르는 무등산(1,187m)이 우리의 등산 목록에 추가된다.
무등산을 북-남으로 통과하는 호남정맥 (붉은 선)
* [광주의 진산, 무등산] — 광석대, 입석대, 서석대의 주상절리
오늘 광주 오르는 광주의 무등산(無等山, 1,187m)은 북쪽의 담양과 남쪽의 화순 사이에 위치한 호남정맥의 중심(中心)이 되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무등산(1,187m)은 서쪽으로 광주시를 품고 있고, 북쪽에는 의병 김덕령 장군을 기리는 ‘충장사’와 ‘환벽당’, 그리고 광주호, 성산별곡의 ‘식영정’과 가사문학관, 한국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양산보의 ‘소쇄원’이 있고 동쪽은 동복호가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호남정맥 낙타봉-안양봉을 이어지는 백마능선이 화순으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남하하는 산줄기는 화순-보성-장흥을 경유하여 순천의 조계산(884m)으로 북상하고 난 후, 동쪽으로 이어져 광양의 백운산(1,218m)에 이르게 된다.
무등산(無等山)은 광주(光州)의 진산(鎭山)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산줄기와 골짜기가 뚜렷하지 않고 마치 거대한 둔덕과 같은 토산(土山)이다. 무등산의 특징은 너덜지대인데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경관이다. 무등산은 완만한 산세로 대부분이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정상인 천왕봉(1,187m)을 중심으로 널려 있어 그 웅장함이 더한다. 특히 서석대(瑞石臺), 입석대(立石臺), 규봉[廣石臺]의 주상정리(柱狀節理)의 경관이 절묘하다.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를 일컬어 무등산 ‘삼대석경(三大石景)’이라 부르기도 한다. 봄의 철쭉, 여름의 산목련,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 등 변화가 많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3월 4일 국립공원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무등산국립공원은 광주광역시(북구, 동구)와 전라남도(담양·화순군)에 위치하고 있다. 무등산에는 광주 증심사, 원효사, 약사암, 동쪽의 석불암, 규봉암 등의 사찰이 있다.
* [산으로 가는 길] — 경부/논산/호남/담양 고속도로와 60번 국도, 그리고 887 / 897 지방도로
오전 7시, 미명의 이른 아침 서울의 군자역(능동)을 출발했다. 오늘의 산행지는 멀리 광주의 무등산(無等山)이다. 전라남도 중심에 솟은 호남정맥 무등산을 당일에 왕래하는 원거리 여정이다. 우리의 ‘금강고속관광버스’(권용길 기사님)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일로 남으로 질주하여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타고 공주의 <정안 알밤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그리고 버스는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남행하다가, 장성J.C에서 고창-담양고속도로에 타고 담양J.C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로 타고 남하, 고서J.C에서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동진하다가 창평I.C에서 60번 국도로 내려섰다. 이 도로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고서에서 887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광주호를 끼고 들어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의 산실 <식영정>, 양산보가 조성한 <소쇄원> 앞을 지나, 897번 지방도로로 들어가 무등산 동쪽 들머리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화순초교 이서분교> 앞에 도착했다. 이서분교는 현재 학생수가 줄어서 폐교가 되었다.
오늘은 2019년 ‘신년 산행’이다. 오늘 무등산으로 가는 버스에는 김준섭 회장, 한영옥 부회장, 민창우 기획, 박은배 총무를 비롯하여 호산아·장병국·남정균 고문, 김의락 자문, 유형상·김재철 대장이 포진하고, 꽃구름 지기 이달호 님, 허향순 님, 전진국·안상규 님, 그리고 강완식·윤종선 님, 류 경 님, 이명자·이경숙 님, 김희태 님과 그 친구 분, 하회탈의 지기 여러 분, 열통장의 여러 지기와 화양동 친구 창재 님이 동행했다. 특히 오늘 안수경 님과 그의 지기 박미화, 오윤순 님 등 네 분이 참석했다. 새해를 맞아 함께 산행하는 정겨운 벗들이다.
* [화순 이서분교 앞] — 붕긋한 무등산의 거대한 산체가 시야에 들어오는
오전 11시 20분, 화순 이서분교 앞에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무등산의 동쪽에서 올라가는 길이다. 897번 도로에서 산으로 가는 길은 ‘잠업권역마을’까지 포장도로였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붕긋한 무등산의 거대한 산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 올려다 보이는 정상 부근에는 상고대가 형성되어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행장을 차리고 무등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산행에 들어갔다. 오늘 선두는 민창우 기획이 길을 잡고 후미는 유형상 대장이 담당하고, 대열의 중간에 김재철 대장이 수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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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상상공원지킴터] —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하다
오전 11시 36분, 상상공원지킴터[이정표]에서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들었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정했다. 요즘 서울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로 인해 ‘나쁨’의 경보가 내려져 있는데 남도의 하늘은 청정했다. 맑은 하늘에서 겨울햇살이 따뜻하게 내린다. 비록 싸늘한 바람결이 느껴지지만 봄기운이 감도는 아주 상쾌한 겨울날이다. 낙엽이 쌓인 산길은 촉촉하게 물기에 젖어 있었다. 요즘 겨울 가뭄이 극심한데 산길은 해동하는 듯한 느낌이다. 상상수목원지킴터에서 0.1km 올라온 ‘승지원교’[이정표]를 지나고 나서도 길은 아주 완만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0.7km 올라온 지점[무동 07-02]의 이정표를 지나면서 산의 허리를 아주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이었다. 화사한 햇살이 빗겨드는 산록에서는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말없이 서 있고 길가에는 초록의 산죽(山竹)이 싱싱한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상공원지킴터’에서 1.3km 올라온 지점, 장대하고 싱그러운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평탄한 산록의 길에 내리는 햇살이 따스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에 오는 대원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가는 나무테크 계단 길, 처음에는 완만하게 오르다가 점점 경사가 급해지고 있었다. 계단은 길고 가팔랐다. 온몸이 뜨겁고 얼굴에 땀방울이 떨어진다. 고도를 높이는 경사가 가파르다. 그렇게 이어지는 계단 길이 0.7km였다.
* [규봉암 갈리길 - 이정표] — 꼬막재와 장불재가 갈라지는 길목
오후 12시 35분, 규봉암 갈림길에 도착했다. 우측으로 가면 신선대-꼬막재(3.5km)로 가는 길이요, 좌측으로 가면 규봉암(0.1km)-장불재(1.9km)로 가는 길, 우리의 산행은 규봉암으로 향한다.
한 차례 너덜바윗길을 지나자 규봉암의 범종각의 다락이 올려다 보였다. ‘無等山圭峰庵’이라는 현판이 걸린, 가파르고 높은 계단 위에 지어진 2층 누각, 비어 있는 그 아래층이 암자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암자는 그렇게 절벽 위에 지어져 있었다. 범종각을 지나 ‘원형(圓形)의 문(門)’을 들어가니, 규봉암의 전경(全景)이 시야에 들어왔다.
* [무등산 규봉암] — 광석대를 병풍처럼 두른 순결한 관음도량
규봉암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무등산의 동쪽에 있는 암자이다. 창건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이 없고 다만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지며, 혹은 고려 초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규봉암 뒤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주상절리의 네모진 돌기둥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규봉(圭峰)은 모난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산봉이라는 뜻이고, 널따랗게 펼쳐진 그 바위들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하여 광석대(廣石臺)라고도 한다. ‘해설판’에 의하면 광석대는 입석대, 서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로 꼽힌다. 해발 고도 약 950m, 무등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약 8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찰인 규봉암을 중심으로 늘어선 수십 개의 주상절리대는 화산 폭발 시 분출된 화성쇄설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졌다. 광석대 주상절리의 크기는 높이 30~40m, 최대 너비 약 7m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볼 수 없는 규모이다. 이곳을 이루는 암석은 무등산 안산암질 응회암이다.
규봉암 경내의 중심에는 광석대를 배경으로 ‘觀音殿’이 자리하고 있고 그 왼쪽에는 작고 아담한 ‘三聖閣’이 있으며 관음전 오른쪽에는 ㄱ자 모양의 ‘요사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성각 앞 마당에는, 널따란 나무테크 마루가 깔려 있고 그 한 가운데 순백의 한복차림을 한 ‘통일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한 손에는 약병을 받쳐 들고 또 한 손에는 무처럼 생긴 것을 들고 있었다. 이로 볼 때, 광석대[규봉] 절벽 아래 자리한 이 작고 아담한 암자는 청정 관음도량이다. 옛 시인이 이르기를, "규봉암을 보지 않고서 무등산을 올랐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규봉암은 무등산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다.
* [무등산 지공너덜] — 주상절리의 암봉이 풍화하여 떨어져 내려온 곳
규봉암을 관람하고 종루(鐘樓) 아래의 높은 계단을 다시 내려와 규봉암 옆을 돌아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갈림길[이정표]에서 왼쪽으로 가면 ‘장불재’로 바로 가는 길이고, 오른 쪽 위로 올라가는 길은 ‘지공너덜’과 ‘석불암’을 경유하여 ‘장불재’로 가는 길. 민창우 대장이 산행 안내를 하면서 지공너덜은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꼭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이곳은 주상절리의 암봉이 풍화하여 그 돌들이 떨어져 내려온 곳이어서 바위가 반듯반듯 네모지거나 평평한 절리를 그대 이루고 있다. 그래서 화순군에서는 문화재청에 지질명승지 인증을 신청했다고 했다. ‘지공너덜’은 규봉암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무등산에는 두 개의 ‘너덜’이 있는데, 산의 서쪽 사면에 ‘덕산너덜’이 있고 동남쪽 사면에 ‘지공(指空)너덜’이 있다. 그 중에서 장불재와 규봉 사이에 약 3km의 넓은 돌바다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지공너덜이다.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指空大師)에게 설법을 듣던 화옹선사(和翁禪師)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지공너덜이라고 명명하였고 지공대사가 여기에서 석실을 만들고 좌선수도하면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지공너덜에는 크고 작은 석실이 있는데 한국 불교의 큰 빛을 남긴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창건하기 전 이곳에서 좌선수도한 곳이라 하여 보조석굴(普照石窟)이라고 한다.
* [지공너덜에 바라본 백마능선] — 낙타봉-안양산,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
지공너덜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백마능선이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백마능선은 무등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가는 호남정맥의 산줄기인데 해발 800~900m 사이의 2.5km의 능선이다. 백마(白馬)의 잔등 같은 지형 위에 하얗게 핀 억새의 모습이 백마의 갈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 이 길은 우리가 올라갈 장불재에서 능선을 따라 가면 낙타봉을 거쳐 안양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안부의 능선이다. 봄철에는 철쭉의 군락이 능선을 빨갛게 물들이며 가을철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민 대장이 원래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뜻에서 백마능선 길로 오를 계획을 세웠으나, 규봉암의 광석대와 지공너덜을 보기 위해 오늘의 산행 코스를 잡았다고 했다.
* [무등산 석불암] — 1,033년에 조성된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지공너덜을 지나는 길은 모두 반듯한 평석(平石)으로 만들어 놓았다. 장불재로 가는 길목, 석불암이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작은 암자지만 여기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225cm, 너비 220cm의 규모로 바위 절벽에 새겨져 있다. 연대는 1,033년 고려시대 초기이다. 부처님의 소라형 머리 모양인 육계(肉髻), 결가부좌하여 앉은 자리가 연꽃무늬 좌대(座臺)로 되어 있다. 불상의 시대적 특징과 양쪽 바위 표면에 새겨진 시주자, 화주, 석공 등의 기록이 새겨져 있어 연대를 알 수 있다.
* [장불재 쉼터의 점심식사] — 따사로운 겨울 햇살로 내리는 식탁
오후 1시 25분, ‘장불재 쉼터’에 도착했다. 저만큼 장불재가 올려다 보이는 지점인데 세 개의 나무테크 식탁이 마련되어 있어 이곳에서 대원들이 점심식사를 했다. 비록 바람결이 좀 차갑지만 따뜻하고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야외 식탁이다. 대원들이 세 군데의 식탁에 분산하여 도시락을 내어놓고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 꽃구름이 끓여온 청국장이 구수하고, 열통장 지기가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온 우거지 된장국이 아주 따끈하고 맛이 깊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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