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성태 교수
홍대앞 거닐며 대중 속 파묻혀도… 유행·소비자 심리 파악할 수 있어… '회사의 일거리'에 매달리다보면… 세상에서 배어나오는 영감 놓쳐…
아이폰이란 제품 하나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혹자는 애플이 자체 IT 기술도 없이 아웃소싱을 통해 제품을 구성하는 취약한 구조라며 평가절하하려 한다. 하지만 기술을 가진 기업은 많다. 시장의 진정한 승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기업이다.촛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구를 발명할 수는 없다. 같은 이치로 휴대폰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이폰을 생각해낼 수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형태(form)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sight)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가? 우선 '배회 탐색(free-range exploring)'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동참하고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거리의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 그저 배낭을 메고 대중 속에 휩쓸리거나 가로수길, 홍대 앞 등 유행의 정점을 서성거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거리는 이동의 통로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어 조금만 눈여겨보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때 눈에 보이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묘사하거나 나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fact)을 파악하려 애쓰기보다 특이한 성향(idiosyncrasy)을 눈여겨보는 것이 아이디어 창출에 훨씬 더 유용하다.
환경의 변화는 소비자가 그 변화를 수용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기업이 강압적으로 변화를 주도한다 해도 소비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즉 관찰된 변화란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그러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 '원인'인 고객의 심리를 유추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소비자가 왜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기업인으로서 평소 자주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동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뇌를 주로 활용하는 디자이너나 예술인 또는 다른 연령층이나 이성 등과 어울리면서 끊임없이 "왜 그럴까?"라고 물어보라. 고객과의 접점지대에 있는 매장 점원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 보는 것도 좋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보다는 "왜 좋아하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세상의 트렌드가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므로 이를 일일이 다 쫓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잡지들이야말로 시대의 흐름을 가장 신속하게 전달하는 매체임을 유념하라. 여성 잡지는 물론 남성, 예술, 과학 등 다방면의 잡지를 꼼꼼히 살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수집할 수도 있다. 외국의 애플 컴퓨터 매장들에는 '지니어스 바(Genius Bar·천재들의 카운터)'란 이름의 서비스센터가 있다. 고객들은 갖가지 궁금한 문제를 들고 이곳에 온다. 애플 PC나 아이팟 또는 아이폰으로 이런 것은 안되는지, 저런 것은 안되는지 물어본다. 카운터에 앉은 천재 상담원들은 많은 질문에 즉시 답을 해준다. 그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나 정말 재미있는 질문은 곧바로 상부에 보고된다. 고객 서비스센터이자 아이디어 수집 창구인 셈이다.
몸으로 체험하는 탐색법도 시도해봄 직하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마운트 시나이 병원(Mount Sinai Hospital)의 응급실은 다른 병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설계를 맡은 디자인 회사 아이디오(IDEO)는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환자 체험을 해보게 했다. 디자이너들은 앰뷸런스에 실려가 간이침대에 누워 복도에서 응급 처치를 기다리는 과정을 체험했다. 그런 체험의 결과가 그 유명한 응급실이다. 진정한 아이디어란 고객의 감정까지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떠오르는 것이다.
주방 그릇을 만드는 코렐(Corelle)은 '고객 가정 방문(Follow Me Home)'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객의 가정에까지 따라가서 제품 사용의 순간을 관찰하는 것이다. 세탁·청소용품을 만드는 클로락스(Clorox)는 고객의 화장실까지 쫓아다니며 그들이 어떻게 변기를 청소하는지 관찰했다. 일회용 머리 솔이 달린 브러시 '토일렛 웬드(Toilet Wand)'는 그 결과이다. 광고대행사의 프리랜서로 2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샘 해리슨(Sam Harrison)은 이처럼 곳곳을 탐색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사람을 '아이디어 스팟터(idea spotter)'라 부른다.
오늘날 세상을 앞서가는 힘은 IQ나 EQ가 아니라 CQ(Curiosity Quotient·호기심 지수)이다. 아인슈타인은 "나에게 특별한 재능은 없다. 다만 넘쳐나는 호기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제 우리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거리에 나서 아이디어 스팟터가 되어보자. '회사의 일거리'에만 매달리다 보면 세상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영감을 흘려버리게 될 것이다.
날이 바뀌면 새로운 아이디어 거리가 주변에 쏟아져 나온다. "매일 매일을 비슷한 것으로 여긴다면 장님이 될 수 있다"는 파울루 코엘류의 말을 귀담아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