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김성문
지인과의 약속이 있었다. 만나는 장소가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곳까지 가려면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목적지까지 도착 시각을 정확하게 맞추는 교통수단은 지하철이 나의 마음을 안심시켜 준다.
지하철역으로 갔다. 역 입구에서 승차하기까지 몸이 불편한 사람은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열차 안에는 마침 앉을 좌석이 있었다. 열차가 다음 역에 정차하니 약속 시간이 아침 출근 시간이라서 많은 사람이 승차했다. 열차 안은 승객이 붐볐다. 지하철에는 칸마다 좌우에 임산부석이 한 좌석씩 있고, 교통약자석이 세 개씩 있다. 임산부석은 바닥과 의자 등받이 위에 임산부석을 알리는 분홍색의 포스터가 있다. 따스함이 스며온다. 교통약자석 벽면에는 노약자, 장애인이라는 포스터를 붙여 두었다. 인권이 최대로 존중되고 있다. 대중교통에 임산부 배려석까지 마련했지만, 그 좌석이 비어 있음은 출산율이 낮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지하철에서 복잡하게 서 있는 사람 누구도 임산부석에 앉지 않고 공석이 된 채로 열차는 아랑곳없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서 있는 사람 중 누군가가 임산부석에 잠깐 앉았다가 임산부가 승차하면 자리를 양보해도 될 것 같은데 그대로 서서 가고 있었다.
작년의 일이 떠 오른다. 내가 탄 지하철 칸 안의 교통약자석에는 모두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통로에 서 있는 한 노인은 몸이 불편해 보였다. 교통약자석에는 건강해 보이는 젊은이 한 사람이 얌전하게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나 몰라라’는 듯이 있었다. 두 정류장을 지나자, 옆에 서 있는 젊은 누군가가 “여보시오! 자리 좀 양보하시지!”하는 소리에 나는 시선을 주시했다. 그래도 그 젊은이는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이번에는 자리 양보하라고 말한 사람이 더 큰 소리로 “여보시오! 못 들었어요.”라고 시비조로 말했다. 교통약자석의 그 젊은이가 슬그머니 일어서면서 "더러운 사람 다 보겠네" 하면서 마지못해 일어서는 경우를 보았다. 나는 젊은이가 몸이 불편한 줄 알았다.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이와 양보하면 좋겠다고 말한 사람과의 다툼이 없었던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했다.
복잡한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안에는 운 좋게 앉아가는 사람과 계속 서서 가는 사람은 서로의 운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임산부석이나 교통약자석을 비워둘 것이 아니라, 잠깐 앉아가다가 임산부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승차하면 자리를 양보하는 배려도 생각해 볼 일이다.
목적지에서 용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볼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이번에는 볼일 보는 곳에 지하철이 없는 지역이라서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낮 시간대라서 빈 좌석이 여러 군데 있었다. 버스 안이 조용했고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었다. 나는 편안하고 내리기 좋은 곳을 택했다. 한 정류장을 더 가니 노인 몇 분이 시끌벅적하게 하면서 승차했다. 그들은 앞부분에 있는 교통약자석에 승차한 순서대로 자리에 앉아 조용히 있었다. 승차할 때의 대화는 온데간데없었다. 시내버스 안의 교통약자석은 의자에 노란 커버를 씌워 밝고 따뜻함을 주고 있다. 그런데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은 편한 좌석이 없어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왼손으로는 버스에 고정해 둔 손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편한 자리에 앉은 나는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그대로 있어야 하나의 갈등이 마음을 두드렸다.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에게 옷자락을 당기면서 앉으시라고 권유했다. 그 노인은 괜찮다고 말로써 표현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일어나 다시 " 여기, 앉으십시오"라고 하니, "아이고,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환한 얼굴에 큰 미소를 보냈다. 나는 뒤편 좌석의 빈자리로 옮겼다. 낮 시간대에는 노인들이 많이 이동하는 것 같다. 다음 정류장에서 할아버지 한 사람이 걸음이 불편한 듯 어렵게 승차했다. 바로 내가 앉았던 편한 좌석 뒤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더니 방금 올라온 할아버지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양보했다. 할머니의 심성이 우리의 아름다운 기본 심성인 것 같았다. 요즈음은 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노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현상을 가끔 보게 된다.
우리는 젊다고 무조건 자리를 양보할 것이 아니라, 건강이 안 좋은 젊은이나 하루 종일 공부한 학생들은 피곤함이 누적되기 때문에 좌석이 필요할 터이다. 이럴 때 건강한 노인들이 자리를 양보해 주는 미덕도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서로 공감하고 배려심이 있을 때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고 한다. 나는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상대를 먼발치에서 공감해 주는 데 시간을 보낸 때도 있었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에게 다가가서 나와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타인과 서로 부대끼며 살고 있다. 상대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작가 ‘그렌빌 클라이저(Grenville Kleiser)’는 “다른 사람들을 한결같이 배려하는 습관은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고 했다. 대중교통에 있는 임산부석이나 교통약자석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초석인 것 같다.
첫댓글 옛날에는 어르신들에게 별생각도 없이 자리를 양보했었는데...
70~80년대로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현권)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가치관이 개인주의로 흐르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