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깊은 숲/이미영
우리는 여럿이 모여 목요일 저녁마다 책을 읽는다. 노자와 니체를 만났고 안나 까레리나와 돈키호테의 나날을 지켜보았다. 삶을 말하는 철학에서 길을 헤매고 다른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애틋이 바라본다. 지나간 책들의 내용은 앙상한 뼈대만 남았지만, 함께 책장을 넘기면서 털어놓았던 그 날의 고민은 희미해지고 주고받은 위로는 도탑게 쌓였다. 가까운 곳에서 손을 잡아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처지는 어깨가 추슬러진다.
가까운 깊은 숲으로 간다. 집에서 삼십여 분 걸리는 곳에 백 년 묵은 왕버들이 늘어지고 절벽 높은 곳에 은신한다는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틀었다니 당장 손을 잡고 가볼밖에. 쨍쨍한 7월 어느 주말 이른 시간에 아직 잠이 덜 깬 수리부엉이가 비틀거리며 왕버들 가지 위로 날아드는 숲으로 간다.
준비물은 장화다. 숲과 장화라니 낯선 조합이다. 왕버들은 습기가 많고 축축한 땅이나 바로 옆에 물이 있는 개울가에서 터를 잡는 나무란다. 뿌리를 물가에 두면 둥치가 썩을 것 같은데 백 년이나 굳세게 살고 있다니 장한 모습이 그려진다. 수풀 사이로 겁이 많은 담비가 동그란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는 사진을 미리 보았다. 나무 옆으로 흐르는 강물에는 야생보호종인 얼룩코미꾸리가 헤엄을 친다고 한다. 얼른 숲으로 가고 싶어 장화를 신었다.
말로만 듣던 야생생물의 은거지는 금호강 팔현습지이다. 시댁을 갈 때 늘 지나는 화랑교 아래쪽이다. 어릴 적 금호강이 꽁꽁 얼면 오빠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스케이트를 타던 바로 그 다리 밑이다. 어린이날이면 엄마의 손을 잡고 놀이기구를 타러 가던 동촌유원지 근방이다. 무심코 오가던 교량 옆으로 작은 산이 이어지고 강으로 연결되는 조그만 숲속에 책에서 보던 야생생물이 살고 있다니 등잔 밑은 여전히 어두운 곳인가 보다.
팔현생태공원 주차장에 장화를 신은 책마실 친구들이 나타났다. 7월 대구의 땡볕 아래 소리소문없이 사는 귀한 생명을 만나겠다고 바짓단을 걷어붙였다. 생태공원 표지판을 따라 한참 올라가는데 예상하지 못한 파크골프장이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팔현습지의 한 부분을 뚝 떼서 만들었단다. 골프공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장화를 신은 무리를 갸우뚱 쳐다보았다.
파크골프장을 지나자 갑자기 보이는 깊은 숲의 자태에 탄성이 절로 터진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호강과 7월의 초록으로 가득한 풀밭에서 왕버들이 울창한 물가로 이어지는 하천숲은 여름의 잔칫상처럼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산책로로 단장된 길이 끊어지자 장화가 쑥쑥 빠지는 늪이 나온다. 미끄러질 것 같은 얕은 수풀을 헤치고 왕버들 군락으로 들어선다. 이른 장마에 강으로 떠밀려온 플라스틱 물병이 나무의 발목에서 걷어챈다. 너덜너덜한 검은 비닐봉지는 나뭇가지에 높이 걸려 스스로 풍장을 치른다. 허연 스티로폼 조각은 진흙 군데군데 들러 붙어있고 다 쓰고 버린 전기장판까지 떠내려와 왕버들 둥치에 걸려 볼썽사납게 몸을 말린다. 멀리서는 여름의 향연으로 펼쳐지더니 다가갈수록 쓰다 버린 쓰레기가 점령한 숲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장화를 신은 발을 옮기기가 버거워진다. 책마실 친구들의 말수도 줄어든다.
수풀 사이로 쇠꼬챙이에 걸린 노란 깃발과 빨간 깃발이 규칙적으로 줄지어 섰다. 사람들이 오가며 낸 오솔길 끝에 손바닥만 한 짐승의 두개골이 나뒹군다. 호기심 많은 친구가 주워들고 뼈 맞추기를 한다. 어린이 과학책에서 본 공룡의 두개골을 닮았다. 삵일 수도 있고 수달인지도 모르겠다고 사방을 훑어 뼈들을 주워 모은다. 널브러진 뼛조각을 맞추는 친구 옆에서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사는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먹이 활동을 상상한다. 알 수 없는 들짐승은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었다가 해골로 남아 이곳에 존재했음을 알린다. 해골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사냥 장면이 떠올라 이 작고 울창한 숲이 거대한 자연의 한 조각으로 여겨진다.
왕버들에 기대어 금호강으로 시선을 돌린다. 장화 속으로 강물의 찰랑거림이 전해진다. 다리가 긴 하얀 새가 부리를 강물에 넣었다가 빼고 다시 집어넣는다. 맛있는 먹잇감을 낚아채려고 노려보는 모양이다. 물고기는 느릿느릿한 강물에서 수영 실력을 발휘하고 있을 게다. 새와 물고기의 단순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화랑교를 지나 출근을 하고 다시 가족들에게로 돌아간다. 야생의 생물들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둥지를 트고 먹이를 찾는다. 가까운 곳에 깊은 숲이 있어 새들이 날고 만화 영화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던 담비가 뛰어다니고 수달이 헤엄친다. 갑자기 우리의 나날이 영화의 한 장면이 된듯하다.
책마실의 친구들은 같이 책을 읽으며 안나 까레리나의 시절을 안타까워하고 산초 판사의 우아한 속담 릴레이에 감탄했다. 혼자라면 덮어버렸을 노자의 두께와 가볍게 춤 출수 없는 인생의 한계를 되뇌며 짜라투스트라의 마지막 장을 함께 넘겼다. 그래서 여름날의 목요일은 청량하고 한겨울의 목요일은 포근할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토닥여 주는 이들 덕분이다.
금호강 팔현습지에 사는 수리부엉이와 담비와 수달은 강과 산이 이어진 하천숲에서 연결되어 살아간다. 새들은 강물 위를 날고 담비는 뛰고 수달은 둥둥 헤엄치는 따로 또 같이 평화로운 공간이다. 숲과 장화는 어색했지만, 습지의 왕버들과 강물의 새들은 제법 어울리는 이웃이었다.
우리가 모여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듯 야생의 생명도 고요히 어우러져 산다. 수풀 사이에 꽂혀있던 붉은 깃발과 노란 깃발들이 그들의 터전을 헤집으면 어쩌나 괜스레 걱정으로 연결된다. 여느 때처럼 다리를 지나 출근을 하고 시댁을 가고 다리 아래에서는 먹이 활동을 하고 새는 날고 수달은 둥둥 헤엄치기를. 우리와 짐승들이 따로 또 같이 무심히 살아가는 시간을 바라게 된다.
가까운 깊은 숲이 조용히 울울창창하기를 바라는 7월 어느 아침이다.
첫댓글 가까운 깊은 숲이 조용히
울울창창하기를 바라는
7월의 어느 아침이다.
늪을 한 바퀴돌아 나와
강변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긴 이선생이 그려집니다.
이른 아침 변변치 못한 글에 답글을 달아주시는 선생님
격려에 용기가 납니다^^
얕으면서도 깊이 흐르는 강물 처럼 ,오랜 독서와 깊은 사유가 작가의 정신 세계에 형해 形骸로 남은 거기서, 다시 피어오르는 청량하고도 포근한 무위자연의 경지를 담담하게 빚어 낸 멋진 작품^^
그저께 비 그친 내 고향 박곡지에 가니 연분홍 연꽃이 티 없이 활짝 피었더랬습니다. 그 맑음이 지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이 댓글을 남기면 차를 몰고 다시 가서 연꽃를 보고 올 심산 입니다. 그리고 매년 그랬듯이 주돈이의 <애련설>을 읽을 것입니다.^^
글보다 훌륭한 답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