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16권, 중종 7년 윤5월 28일 신축 1번째기사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함경북도 절도사 윤희평이 속고내 등의 침략 행위를 보고하다
함경북도 절도사(咸鏡北道節度使) 윤희평(尹熙平)이 치계(馳啓)하기를,
"상보 을하(上甫乙下)에 사는 야인[彼人]의 중추(中樞) 이이리합(李伊里哈)이 진고(進告)하기를, 매하(每下)의 아들 속고내(速古乃) 등이 군사 4백 명을 거느리고 와서 2백 명은 뒤에 둔치고 2백 명이 그의 집에 와서 ‘조선 사람을 잡아왔을 때, 회령부(會寧府)에 진고하고 대가(代價)도 없이 쇄환(刷還)했다.’는 것으로 화를 내어, 창문을 부수고 소 세 마리를 빼앗아갔다고 하며, 또 야인 거롱합(巨弄哈)은 진고하기를, 허제(虛濟)에 사는 오랑합(吾郞哈) 장수 거을부(巨乙夫)가 군사 30명을 거느리고 5∼6일 전에 어유간(漁遊澗) 등지로 향해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령진(會寧鎭) 나야탄(羅也灘)에 사는 오랑합의 중추(中樞) 탈렬(脫列)이 진고하기를, 허제에 사는 오랑합 거로(巨老)가 보병 50여 명을 거느리고 단천(端川) 오을족(吾乙足)으로 향해 갔다고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조치할 모든 일을, 의정부·부원군(府院君)·육조(六曹)의 참판 이상에게 회의(會議)하게 하라."
하자, 좌의정 유순정 등이 의논드리기를,
"지금 속고내 등이 우리 국경에 가까이 살면서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입었는데, 하루아침에 하찮은 일을 가지고 침략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우리의 변방 방비가 허술함을 알고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야인들의 형세를 보면, 속고내뿐만 아니라, 오랑합의 거을부 또한 군사를 모아 작란을 하니, 다른 부(部)에서도 앞으로 계속 절발(竊發)하여 크게 변방의 걱정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신 등의 의논한 바 안건을 하나하나 열거하겠습니다.
첫째, 안변(安邊)·덕원(德源)·문천(文川)·고원(高原)·영흥(永興)·정평(定平)·함흥(咸興)·홍원(洪原) 등 고을의 군량을 우선 북도(北道)로 실어 보내고, 강원도·경상도 등의 군량을 수송하여 그 수를 채우소서.
둘째, 마소[牛馬]로 호인(胡人)들의 모물(毛物)과 바꾸는 것은 이미 금령(禁令)이 있으나, 말과 말을 바꾸는 것은 전부터 금방(禁防)이 없으므로, 변방 사람들이 이 때문에 우리 나라 마소 7∼8두(頭)를 주고 호마(胡馬) 한 마리와 바꾸니, 이 때문에 호인들의 마축(馬畜)은 날로 번성하고 변방의 축산은 날로 줄어듭니다. 지금부터는 비록 말과 말을 바꾸더라도 엄하게 금하고, 범한 자는 금물(禁物)을 잠매(潛賣)하는 과조(科條)로써 논단하고, 적발하여 단속하지 아니한 병사(兵使)·진장(鎭將)도 중죄로 논하소서.
세째, 경기·강원·충청·전라·경상도의 속(贖)으로 받아들이는 포화(布貨)를, 북도의 군량이 흡족할 때까지 각도의 감사들로 하여금 있는 대로 다 북도로 수송하게 하고, 본도(本道) 감사는 각 고을에 나누어 주어 곡식을 사서 군량을 보충하게 하소서.
네째, 사섬시(司贍寺)의 상면포(常緜布)261) 를, 해마다 남·북도를 막론하고 적당하게 들여보내어 곡식을 사게 하고, 또 평안도의 곡식을 바꾸어 주는 예에 의하여 내수사(內需司) 조곡(租穀)도 본도(本道)에 바치는 대신 경창(京倉)의 쌀로 환급(換給)하소서.
다섯째, 국가에서 때때로 남쪽 백성들을 옮겨 변방을 채우나 곧 도망하여 돌아가 버리고, 또 변장(邊將) 가운데 혹 못된 사람은 변방 말을 많이 사 올 뿐만 아니라, 갈려서 돌아올 적에 수종하는 말[從馬]을 많이 끌고 와 먼 길에 지치게 되고 또 전수를 돌려보내는 사람도 적어, 이 때문에 북도의 인마(人馬)가 날로 줄어들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장삿군들이 긴요하지 않은 물화(物貨)를 싣고 가서 오래 변방에 머무르며 변방의 곡식을 소모하고, 또 군사의 마소[牛馬]를 사서 야인들에게 넘겨 주고 모물과 교역하는데, 이러한 폐단은 금하기 어려우니, 중국의 산해관(山海關)과 같이 마천령(磨天嶺) 위에 관문(關門)을 설치하고, 물망이 있는 5품(品) 이상의 문신 1원(員)을 뽑아 보내어 어사(御史)를 겸임하여 규찰(糾察)하게 하되, 1년 만에 체임하소서.
여섯째, 무릇 적을 방어하는데 철갑(鐵甲)이 없으면 엄심갑(掩心甲)262) 이 가장 편리하고 좋은데, 변방 군사들이 가난하여 마련하지 못합니다. 사섬시에 쥐가 쏠은 면포가 많이 쌓여 있으되 쓸 데가 없으니, 적당한 수량을 각사(各司)에 나누어 주어 검정물을 들이고 종이로 솜을 만들어, 엄심갑 1천 벌을 제조하여 양계(兩界)에 나누어 보내는 것이 매우 합당합니다."
하고, 이어 아뢰기를,
"종성 부사(鐘城府使) 남순종(南順宗)은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능하나 무재(武才)가 모자라니, 모름지기 무재가 있는 사람을 뽑아서 임명하여 보내소서. 신 등의 생각에는, 붕중(弸中)은 화친을 허락하지 않으면 반드시 간청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일은 기회가 있는 것이니, 화친을 허락하는 것이 온편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여러 의논이 매우 합당하나 화친을 허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니, 다시 의논해서 하나로 합의(合議)하여 아뢰라."
하였다.
[註 261] 상면포(常緜布) : 질이 낮은 무명.
[註 262] 엄심갑(掩心甲) : 가슴을 가리는 갑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