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공식 개관하면서 광주 지역엔 문화 훈풍이 불고 있다. 새로운 문화 공간들이 문을 열고
다양한 문화 행사들도 활발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역 갤러리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지역 미술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에 문을 닫은 갤러리들은 지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작가들의 초대전을 개최하고 색깔 있는 기획전을 여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크다.
광주시 남구 진월동에 위치한 갤러리 리채가 지난 9일 사업자 등록을 취소했다. 갤러리
리채는 남구에서 처음 문을 연 민간 갤러리로, 2012년 7월 개관했었다. 미술놀이터를 목표로 한 갤러리 리채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포함해 연중
6회 기획초대전을 열며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해 호응을 얻었다.
지난 2006년 개관한 대동갤러리도
최근 폐관했다. 대동갤러리는 지난 9일까지 열었던 ‘이철수 판화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이 갤러리는 지역에서
보기 드문 약 560㎡의 넓은 규모로 대형 전시를 자주 개최하며 주목을 받았었다. 대동갤러리는 사업자가 바뀌며 이번달 말부터 ‘세계 조각·장식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동구 동명동에서 아름다운 전시공간으로 입소문이 퍼졌던 제희갤러리는 지난 5월 문을 닫았다. 2층의 양옥집을
개조해 도로변 널따란 공간에 위치한 제희갤러리는 마당에서부터 갤러리 입구까지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2013년 개관 후 지역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김병종·구본창 등 유명작가들의 초대전을 개최, 눈길을 끌었다.
갤러리가 폐업은 미술시장
불황이 눈에 보이는 원인이긴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갤러리가 제외된 작품 유통 과정이 큰 이유로 꼽힌다.
작품 전시를 주로
하는 미술관과는 달리 갤러리는 상업적 성격이 강하다.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금액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고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구매자들이 미술품을 구입할 때 갤러리를 통하기 보다는 작가와 직접 직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갤러리 관계자는
전시회를 개최하면 콜렉터 등 구매자들이 작품만 보고 가고 작가와 따로 만나 미술품을 구매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광주지역은 미술품
거래가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미술시장은 존재한다”며 “콜렉터들이 작가와 직접 접촉해 갤러리에서 판매하는 금액보다 더 싼 값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지적하는 것은 소위 ‘나까마’ 문화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나까마’는 작품 판매에 급급한 작가들에게
헐값에 미술품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중개상을 의미한다. 이는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사면 비싸다’는 인식을 퍼뜨리며 건전한 작품 가격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갤러리는 이 때문에 전시는 진행하지 않고 이름만 유지하며 타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광주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하지 못한 지역 작가군과 작품에 기인한다는 의견도 있다. 처음
갤러리를 개관할 때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전시를 선보이겠다고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곧 같은 작가의 같은 작품만 전시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전시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춘 작가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데 그런 사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갤러리 리채에서 마지막 전시를 한 김해성 작가는 “전시장이 많아야 우리 같은 작가들이 일반 대중에게 그림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텐데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나상옥 광주미술협회장은 “외국같은 경우에는 콜렉터들이 신뢰를 가지고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구매하며 작가들을 키워내는 경우가 많다”며 “광주 지역은 개인이 하다보니 작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한계에 부딪치고 있으며 자본력과
고객을 갖춘 기업체 등이 나서줘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