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개요> #가리왕산은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정선읍과 북면(北面) 및 평창군 진부면(珍富面) 사이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561.85m이다. 태백산맥의 중앙부를 이루며, 상봉 외에 주위에 중봉(1,433m)·하봉(1,380m)·청옥산(1,256m)·중왕산(1,371m) 등 높은 산들이 있다. 청옥산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같은 산으로 보기도 한다.
옛날 맥국(貊國)의 갈왕(葛王 또는 加里王)이 이곳에 피난하여 성을 쌓고 머물렀다고 하여 갈왕산이라고 부르다가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리왕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갈왕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북쪽 골짜기에는 갈왕이 지었다는 대궐터가 남아 있다. 한강의 지류인 동강(東江)에 흘러드는 오대천(五臺川)과 조양강(朝陽江)의 발원지이다. 맑은 날 동해가 보인다는 망운대·백발암·장자탄·용굴계곡·비룡종유굴 등을 가리왕산 8경으로 꼽는다. 벨패재(일명 벽파령)·성마령·마전령 등 수많은 고개가 있고, 경사도가 완만하여 등산로로 인기가 높다. 능선에는 주목·잣나무·단풍나무·갈참나무·박달나무·자작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수목이 울창하며 산약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숙암 방면의 입구 쪽 약 4km 구간에는 철쭉이 밀집하여 자생하고 있다. 1993년에 가리왕산 남동쪽 기슭의 가장 깊은 골짜기인 회동계곡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리왕산 [加里王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맥국 [ 貊國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 지방에 있던 고대 국가 .예(濊) ·한(韓)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주구성체(主構成體)로, 김부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서 가탐(賈耽)이 쓴 《고금군국지(古今郡國誌)》를 인용하여 그 지역이 춘천임을 밝히고 있다. 춘천지역에는 맥국 관계의 지명(地名)과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에 삼악산성(三嶽山城) ·우두산성(牛頭山城) ·바리산이 있다.건국과 소멸 시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춘천 이남 지역은 고구려의 현(縣)으로 편입되었다가 637년(신라 선덕여왕 6) 신라에 편입되어 우수주(牛首州)가 되었고, 군주(軍主)가 다스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맥국 [貊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태백산맥[ 太白山脈 ]: 한반도의 동쪽, 중남부에 걸쳐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맥. 북쪽으로는 함경남도 안변 황룡산 부근부터 남쪽으로는 부산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약 600k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맥이다. 한반도의 동쪽에 마치 등뼈처럼 길게 뻗어있어, 북한의 낭림산맥과 함께 '한반도의 척량산맥(脊梁山脈)'으로 불린다. 평균 해발고도가 800~1,000m에 이르며, 산맥 내 태백산(1,567m)·금강산(1,638m)·오대산(1,563m)·설악산(1,708m)·함백산(1,573m) 등의 명산이 솟아 있다. 단면상의 특징은 동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며 동해와 가깝고,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영서지방 또는 영남지방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한반도 지형의 기본 골격인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을 이루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동서간 비대칭한 모양의 지형을 '경동(傾動)지형'이라 하는데, 이는 태백산맥이 급격한 지각변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비대칭 요곡운동에 의해 서서히 융기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태백산맥은 지도에서 흔히 표시되듯 하나의 선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닌, 실제로는 겹겹의 산들로 이어지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나타나며, 이를 크게 해안산맥·중앙산맥·내지산맥 등 3줄기로 나누어 분류하기도 한다. 또한 서쪽으로는 광주·차령·소백 산맥들이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완만하게 뻗어내리고 있고, 이들을 분수령으로 그 사이를 한강·금강·낙동강이 흐르며 서해와 남해로 흘러든다. 이들 산맥은 남한 지역의 주요한 분수계를 이루어 지역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맥의 지반은 주로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화강암이 관입하여 화강암 지대를 이루고, 태백·삼척·정선·영월 등지에는 석회암 퇴적층이 넓게 분포한다. 편마암 지대에서는 주로 오대산과 같은 흙산이 나타나며, 화강암 지대에서는 금강산, 설악산 등의 돌산과 함께 다양한 경관이 나타난다. 특히 경사가 완만한 서쪽으로는 과거 침식작용을 받았던 평탄면이 융기해서 형성된 고위평탄면이 넓게 나타나 대관령 등 남한 최대의 고원지대를 이루기도 하며, 무연탄, 석회석을 비롯한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태백산맥은 비교적 높고 폭이 넓은 산맥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 지역의 문화권을 구분하는 경계가 되기도 하는데, 특히 영동(嶺東)과 영서(嶺西) 지방 사이의 경계선을 이루어, 행정구역 상 같은 강원도이지만 두 지역은 기후의 차이와 함께 방언 등 문화의 차이가 나타난다. 또한 과거부터 교통의 큰 장애가 되어 대관령(大關嶺:866m)·미시령(彌矢嶺:826m)·추지령(楸地嶺:645m) 등의 고개가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영동과 영서 지방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들이 건설되어 이전에 비해 영동지방으로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백산맥 [太白山脈]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백두대간[ 白頭大幹 ] 한반도 북단의 백두산(2,750m)에서 시작하여 계곡과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남단의 지리산 천왕봉(1,915m)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 즉 백두대간은 우리 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우리 땅의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대간(大幹)이란 큰 줄기를 의미하는 말이다.백두대간은 그 길이가 1,625킬로미터, 높이는 100미터에서 2,750여 미터까지 다양하다. 백두대간의 북쪽 산들은 모두 1,000미터가 넘지만 남쪽으로는 금강산(1,638m),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태백산(1,567m), 덕유산(1,614m), 지리산(1,915m), 한라산(1,950m)만이 1,500미터 이상의 산들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도상 총거리는 1,625킬로미터. 그 중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남한 구간만 계산하면 약 690킬로미터다. 남한 구간 내의 대표적인 산들은 지리산, 봉화산, 백운산, 덕유산, 삼도봉, 황악산, 국수봉, 봉황산, 속리산, 대야산, 조령산, 대미산, 소백산, 선달산, 태백산, 함백산, 덕항산, 두타산, 석병산, 대관령, 오대산, 조침령, 설악산, 신선봉, 진부령 등이다.
우리나라의 큰 줄기 산맥인 백두대간은 조선 후기에 발간된 지리서인 『산경표(山經表)』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지리부도와 유사한 성격의 책으로 우리나라의 산줄기 명칭과 강줄기를 모두 포함한 지형에 관한 총체적인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대략 18세기경인 조선조 때 만들어졌으며, 저자는 미상인 채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5개로 분류하고 족보 기술식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에 다시 가지쳐 뻗은 기맥(岐脈)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조선조 때 공인된 지리 개념이다. 산맥 이름과 순서는 1.백두대간(白頭大幹) 2.장백정간(長白正幹) 3.낙남정맥(洛南正脈) 4.청북(淸北)정맥 5.청남(淸南)정맥 6.해서(海西)정맥 7.임진북예성남(臨津北禮成南)정맥 8.한북(漢北)정맥 9.낙동(洛東)정맥 10.한남금북(漢南錦北)정맥 11.한남(漢南)정맥 12.금북(錦北)정맥 13.금남호남(錦南湖南)정맥 14.금남(錦南)정맥 15.호남(湖南)정맥으로 모두 15개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산줄기 개념이 전해져 내려오지 못한 채 망각된 산줄기로 사라져버린 것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원인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애써 배워온 산맥 체계는 1903년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가 발표한 지질학 연구논문 「조선의 산악론」에 토대를 두고, 야스 쇼에이라는 일인 학자가 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다. 이 교과서는 고토 분지로의 이론을 검증 없이 지리교과서에 채용한 것이다. 이것은 산맥의 실제 지형 파악을 목적으로 하는 지리 개념이 아닌, 땅속의 맥줄기인 지질구조선을 산맥의 기본 개념으로 한 것으로 태백산맥, 소백산맥, 차령산맥 등의 이름이 여기에 해당한다.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이라는 두 체계는, 전자는 지형의 개념이고 후자는 지질의 개념이다.
일제가 식민지 지하 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우리의 산줄기 개념을 왜곡시키자 이를 우려한 육당 최남선이 설립한 조선광문회는 우리 산줄기 갈래와 이름을 바로잡기 위한 민족적 저항 의식에서 1913년에 『산경표 영인본』을 발간하였으며, 이는 국민 계몽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산경표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준 것은 조선광문회의 고전 간행 사업 덕택이다. 이때 우리 고유의 지리 개념인 산경표의 가치를 인정하고 인쇄본으로 간행하지 않았다면 백두대간이라는 옛 산줄기의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산경표의 백두대간이 일제의 강점기 동안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고지도 연구가(故 이우형)에 의해 발견되어 옛 개념을 되살려내게 된 것이다.
1980년대 초 한 언론 매체의 의해 ‘백두대간’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단어는 대중들에게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으며,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던 우리의 산줄기 이름이 다시 알려지기까지는 77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지금 백두대간은 전 국민적인 관심과 인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주를 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두대간 [白頭大幹] (등산상식사전, 2010. 10. 7., 이용대, 한국등산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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