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식(全湜,1563,명종18∼1642,인조20)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정원(淨遠)이고 호는 사서(沙西)이며 본관은 옥천(沃川)으로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며 상주 출신이다.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고,
1603년(선조36) 문과에 급제하여
1605년 주서,
1607년 전적, 충청도사를 거쳐,
1609년(광해군1) 예조좌랑, 예조정랑,
1611년 울산판관이 되었다.
1614년 전라도사가 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산수를 유람하였다.
1623년(인조1) 예조정랑, 수찬, 교리, 전적, 장령이 되고,
1624년 이괄의 난에 왕을 호종하여 집의, 병조참의, 병조참지, 동부승지를 지내고,
1625년 좌승지, 형조참의로 성절사가 되어 뱃길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27년 예조참의, 이조참의, 대사간, 경주부윤을 거쳐,
1636년 부제학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영남을 방어하였고,
1637년 이조참판,
1638년 대사헌, 예조참판, 대사성이 되었다.
1642년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황성으로 가는 도중 섬에서 바람을 만남 (皇城島遭風)
뱃길로 이천 리를
비바람 맞으며 삼십팔 일을 지냈네.
일찍이 가고 머묾에 통달함을 들었지만
이제 내 몸 편할 날 없음을 알았네.
어렵고 위험할 때 기꺼이 움직이고
모름지기 천지조화의 부름에 따르리.
봉창을 열고 한번 웃노니
만사를 아득한 신비의 세계에 맡기리라.
木道二千里
風餐三八蓂
曾聞達去舍
今覺沒吾寧
肯以艱危動
須從造化聽
篷窓發一笑
萬事寄冥冥
(箕雅 卷6)
이 시는 그가 1625년(인조3) 성절사로 명나라에 가는데 풍랑을 만나 모두 정신이 아득해 할 때, 의연한 태도로 지었다는 오언율시로 청(靑)운이다.
그의 문집인 <사서집(沙西集)>에는 제목이 ‘황성으로 가는 큰 바다에서 바람을 만나다(皇城大洋遇風)’로 되었고, 경련 상구의 “어려움(艱)”이 “뒤집힘(顚)”으로, 미련 상구의 “봉창(篷窓)”이 “뜸을 열고(開蓬)”로 되었다.
삶과 죽음의 위기에 처하여 초연한 자세를 보여주는 시라고 하겠다.
수련(首聯)은 여정의 어려움이다. 후금[淸]이 사행 길을 막아 뱃길로 북경으로 가는 여정이 위험하고 멀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함련(頷聯)은 사행 길의 감회다. 그는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물러날 때는 물러났지만 나라가 어려우면 과감히 나섰던 사람이라 몸이 편할 날이 별로 없음을 깨닫는다고 하였다.
경련(頸聯)은 의연한 기상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기꺼이 일어나고 죽고 사는 문제는 천지조화에 맡길 뿐이라고 하여, 임란과 호란에 의병을 이끌고 일어섰던 그의 의기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미련(尾聯)은 풍랑 속의 자세다. 풍랑으로 배가 뒤집힐 듯한데 그는 배의 봉창을 열고 통쾌하게 웃으며 생사는 그것을 관장하는 신비한 초월 세계에 맡기겠다고 하여 사리에 통달한 호쾌한 사람의 기상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전아하고 순박하며 예스러워서 참으로 덕을 갖춘 사람의 말
(李彙寧, 沙西集序. 發爲詩文 典雅淳古 眞有德者之言.)이라고 한 평이 어울린다고 하겠다.
[출처] 허적, 전식, 이정구의 한시|작성자 jaseo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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