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72]민물새우와 고사리 그리고 폐교
# 서울의 막역한 친구가 민물새우를 잡아달라며 10만원을 보내왔다. 3, 4년 전 뒷산 저수지에서 잡은 새우를 말렸다며 한 봉지 주었더니 탄복을 했다. 저수지 확장공사 때문에 2,3년 동안 새우를 잡지 안했는데, 그게 못내 궁금했던 모양이다. 할 수 없이 인근 면 낚시점에서 삼각새우망 4개와 새우밥을 샀다. 아침 9시 올라갔는데 얼마나 잡혔을지 나부터 궁금했다. 그때보다야 소량이지만 이게 어디인가. 날마다 요만큼씩만 잡히면 좋겠다. 오후에 밑밥을 주고 다음날 오전에 운동 겸 올라와 훑어가면, 1주일만 잡아도 솔찬하리라. 생새우거나 말린 새우를 조금만 국에 넣어도 풍미豐味가 완전히 죽기는 게 ‘민물새우’이다. 라면에 넣으면 곧바로 '새우라면', 내일 축령산 산신령의 형수가 민물새우라면 껌뻑인데, 쬐깨(조금)라도 갖다 드려야겠다. 흐흐. 친구의 송금은 새우맛도 새우맛이지만 나를 억지로라도 운동시키려는 깊은 뜻이 있는 줄을 왜 모르랴. 농번기때를 제외하곤 부지런히 품을 파는 ‘농촌의 어부'가 되어보리라. 개봉 박두닷!
# 제주살이를 2년 한 동생부부가 어제 철수를 하며 가져온 제주고사리. 해마다 요맘때쯤 ‘조구심리’라는 스페셜 요리를 아시는가? 햇고사리를 냄비 밑에 몽땅 깔고 그 위에 조기새끼 10여마리를 얹어 만들어내는 조구심리는 일반 조기매운탕하고도 맛이 완전히 다르다. 한 숟가락 국물을 입에 널짝시면 ‘흐미-’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만다. 오늘 아침 그 맛을 본 후, 산에 올라 나만 알고 있는 '고사리바탕'을 찾았다. 본격적으로 솟아나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한둘, 서넛, 여나무 개가 눈에 띄어 반갑다. 고사리는 꺾는 손맛이 ‘쵝오’다. 도시촌놈들은 멀쩡하게 앞에 두고도 잘 찾지 못하는 고사리를 잡고 손으로 아래 5cm쯤 미끌어내려가다 보면 투욱 꺾이는 부분이 있다. 살짝 비틀기만 하면 된다. 해마다 그 ‘토오-톡’ 꺾는 손맛이 생각나 산에 오른다. 비온 뒤에 오르면 여기저기서 솟아난 고사리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다. 금방 삶아 말려야 하는 봄의 귀물貴物, 한 바탕(밭)에서 5번도 넘게 꺾으면 서너 관은 금방 되련만, 외지사람들이 새벽부터 설치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부지런해야 겨우 천신(차지)을 하여 맛도 볼 수 있다.
# 산에서 내려오며 3천여 마지기가 된다는 들판을 바라보는데, 들판 가운데 폐교된 지 오래된 ‘봉천핵교’의 부지가 훤히 보인다. 나의 모교이다. 교문 근처 엄청난 크기의 벚나무 두 그루가 꽃을 왕창왕창 허벌나게 피웠다. 오랜만에 달려가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아련하다. 언제 내가 이 학교를 다녔던가? 교사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 흉물 그 자체. 이 부지를 잘 활용하면 명물이 되었으련만. 얼마 전 돌아가신 오탁번 교수(고려대 영문과. 시인, 소설가, 번역가)는 모교(괴산초?) 부지를 구입하여 자신만의 ‘문학관’을 꾸몄다 했는데. 나도 그렇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됐다. 언제까지 흉물로 남겨놓을지 한심지경. 아무튼, 고목 두 그루가 피워낸 벚꽃이 만발, 내 얼굴까지 환하게 만든다.
1939년 임실 오수면 봉천리(봉산·냉천마을)·군평리(종동·평당마을)·오암리와 성수면 대판리, 6개 마을(거리라 해봤자 3km 안팎) 어른들이 들판 가운데 세운 ‘봉천간이학교’. 44년 초등학교로 승격되었으나 98년 49회 졸업생을 끝으로 폐교가 되었다. 96년까지 총 졸업생 수 1554명. 아깝다. 60회 졸업생조차 내지 못하고 폐교가 되다니. 이 학교를 졸업한 후배 몇명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도 나오고 고시도 패스했다던데. 학교부지가 지금껏 활용도 되지 못하고 흉물처럼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어, 볼 때마다 속이 상하는 우리의 모교. 우리는 1965년 코흘리개로 입학하여 1970년에 제법 의젓해져 21회로 교문을 나섰다. 기껏해야 남녀 한 반 40여명. 그때 이 운동장에서 달음박질을 하던 작은 소년이 어느새 내일모레70, 세월이 참 무상하다. 이 글을 쓰는 그 소년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날까지 살아났을까? 어느 독지가가 부지를 매입하여 삼삼한 미술관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라도 살아남아 오래도록 우리의 추억이 어린 학교로 기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