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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고궁]
청의 태조 누르하치가 1625년 요양에서 심양으로 천도하면서 만들기 시작해
제 2대황제인 태종 황타이지(皇太極)때 완성되었으며,
제3대 황제인 순치제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을 통일하고 북경으로 천도하기 까지 황궁의 역할을 했다.
중국에 현존하고 있는 양대 궁전건축군 중 하나이다.
건축물들의 배치는 크게 동로(東路),중로(中路),서로(西路)로 세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어
동로에는 청태조 누루하치 시기 건조된 대정전(大政殿)과 십왕정(十王亭)이 있으며
중로에는 청태종 황타이지 시기에 지어진 대중궐(大中闕)을 비롯하여
대청문(大淸門),숭정전(崇政殿),봉황루(鳳凰樓), 청녕궁(淸寧宮) 등이 있다.
서로에는 건륭시기에 만들어진 문소각(文溯閣), 가음당(嘉蔭堂),과 앙희재(仰熙齎)가 있다.
건륭시기에는 이미 북경에 황궁이 있었지만 황제가 간혹 "동순(東巡)"을 나올때 이곳에 머물며 정사를 보았다.
전체 부지면적이 6만 평방미터로 72만 펑방미터를 차지하고 있는 자금성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이지만 궁내의 건축물 보존이 매우 잘 되어있고,
심양고궁만의 특색을 갖고 있어 현재 심양에서는 가장 중요한 관광지로 인정받고 있다.
[서탑가]
옛날에 지어진 심양시의 동,서,남,북에 위치하던 탑과 절에서
그 서쪽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한 거리란 뜻으로 이름이 붙게 되었다.
현재 서쪽 탑은 남아있지 않다. 서탑가는 현재 많은 조선족들이 모여 살며 학교,병원,문화관을 지어
그들을 위한 행정,상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소수민촉촌거리이다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진의 강력한 통일제국체제가 낳은 상징적 산물이다.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쯤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한 "팔달령"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의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으로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015미터이며,산세가 험준한 편이다.
장성 위에서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견고한 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길이가 5천만m에 이른다. 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지어졌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오늘날 말하는 서쪽 감숙성의 가욕관(嘉浴館)에서 시작하여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만m 길이의 성벽은
대부분 명나라때 지어진 것들이며, 만리장성에 설치되어 있는 가드레일과 케이블카는
좀 더 편하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제는 흘러간 역사의 자취가 된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용경협]
북경 외곽에 위치한 팔달령에서 40분 정도가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남방 산수의 부드러움과 북방 산수의 웅장한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또한 "작은 계림(小桂林), 작은 삼협(小三峽)"이라고 불릴 만큼 높이 솟은 가파른 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룬다.
북경의 16 명소 중의 한 곳으로, 전체 면적은 119㎢이며, 주요 명소는 70m 높이의 콘크리트 댐으로
중국의 북방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여름에는 폭포,겨울에는 얼어붙은 폭포를 볼 수 있다.
7㎞ 길이의 배유람은 또 하나의 졀경을 연출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와 산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10분 간격으로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면 배를 타고 진강사와 같은 역사적 장소들도 구경할 수 있다.
강은 절벽 측면을 따라 흐르며, 관광객들은 종산(鍾山), 봉관도(鳳冠島)와 같은 깎아내릴 듯한 절벽 등의
30여 가지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이 곳은 여름의 평균 기온이 6.4℃로 북경 시내보다는 낮다.
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계림"이라 불리며,
시원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던 용경협은 겨울이 되면 물이 얼어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아쉬움 대신 환상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환상적인 얼음의 축제,'빙등예술절(氷燈藝術節)'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매년 1월부터 약 두달간 4,000평방미터의 얼음바닥 위에서 진행되며, 올해로 벌써 16회를 맞고 있다.
빙등제는 이미 하얼빈의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이곳의 빙등제를 "작은 하얼빈의 빙등제"라 불러도 될 만큼
그 재미와 아름다움에 있어서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용경협은 하루 안에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차를 타고 입구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걸으면 댐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258m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1996년에 완공되었으며,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길이면에 있어서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하다.
[서커스]
곡예와 다양한 기술이 집대성된 중국 고유의 전통 예능이다.
중국의 서커스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관람을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접시 돌리기, 한발 자전거 타기, 공중 줄타기 등 전형적인 서커스의 종목은 물론 그림자 공연,
성대모사, 휘파람 묘기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춘 공연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경 시내의 극장에서 매일 또는 요일별로 정기적인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격은 20元부터 시작되지만 극장별로 차이가 있다.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미리 예매를 해 두거나 시작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이화원]
1998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중국에서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완전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황족 정원이다.
특히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더 유명하다. 북경 서쪽 외곽인 해정구(海淀區 : 하이디엔취)에 위치해 있으며,
북경 시내에서는 15㎞ 떨어져 있다.
이화원의 전신은 북경 청의원으로, 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웠을 때 함께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광서 14년(1888)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를 이용해서 다시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현재의 "이화원"으로 바꿨다. 1900년, 이화원은 또다시 팔국 연합군의 선공을 당했다.
서태후는 서안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거대한 자금을 들여 복구에 나섰다.
이화원은 무엇보다도 규모가 실로 엄청나며 총면적이 294㎡이다.
본래 평지였던 곳을 파내 만든 곤명호(昆明湖)와 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쌓은 만수산(萬壽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수면이 전체의 3/4을 차지한다.
서태후가 이화원에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둔 목적은 피서와 요양이였으며,
1903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서태후는 이 곳에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할 일이 많이 생기자 정원 앞 부분에 궁전과 생활거주지구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화원은 궁전과 정원 두 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황족 정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인공호수이지만,
인공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보트와 곤명호 위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곤명호 동쪽 기슭에 잇는 17 공교의 난간에 새겨져 있는 544마리의 사자도 볼 만하다.
또한 곤명호를 안고 있는 만수산은 역시 곤명호를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화려한 누각이 있으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역시 인기가 좋다.
이화원의 주요 명소들로는 정문인 동궁문(東宮門)을 비롯해,
덕화원(德和園),장랑(長廊),불향각(佛香閣) 등이 있다.
동궁문은 이화원의 정문으로 삼명양암(三明兩暗)의 무전식 건축양식이 사용되었으며,
덕화원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경극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높이 21미터에 상,중,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랑은 동쪽으로는 요월문(邀月門)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석장정(石丈亭)까지 전체길이 728미터에 총 273칸의 화랑으로 이어진 복도 건축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한 장랑(긴복도)이다.
마지막으로 불향각은 만수산 앞의 산비탈길에 세워진 높이 21미터의 거석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남쪽으로는 곤명호를 향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지혜해불전(智慧海佛殿)을 기대고 있다.
이화원의 상징적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천안문광장]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사람들의 드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다.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네 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여러개의 인상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 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천안문 광장은 옛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 행사 등이 이어졌다.
천안문 광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1989년 4월 중국 전총서기이자 개혁가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천안문 광장으로 점차 운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당시 지도자였던 덩샤오핑(登小平)은
이들을 진압할 방법을 강구하던 끝에 결국은 같은 해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있던 학생과
시민들을 기관총 난사와 전차 동원 등의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 진압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이후부터 천안문 광장은 중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천안문광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는 해가 뜨는 새벽에 거행되는 국기 게양식이다.
행진곡과 함께 군인들이 정렬하여 나타나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게양하는데,
이 의식에 걸리는 시간만 거의 30분 정도 소요된다.
국기 게양시간과 강하 시간은 매번 조금씩 다른데 그 이유는 넓은 중국 대륙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자리와
천안문 광장의 지평선이 서로 일치할 때를 계산하여 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양식이 거행될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지나갈 수 없고 대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은 괜찮다.
해가 어슴프레 뜨는 새벽의 오묘한 기운 속에서 벌어지는 이 작지만 웅장한 의식은
외국 관광객들 뿐 아니라 북경을 방문한 타지역의 중국인들에게 북경에 오면 꼭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이다.
[천안문과 광장 주위의 건축물]
■ 천안문
천안문은 광장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명 영락(永樂)연간인 1417년에 지어졌으며, 옛날에는 황제가 사는 성의 정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이라고 불렸다가 청대에 개조된 후부터는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천안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3.7m 높이의 천안문은 황제의 대형 의식이나
새 군대 파견을 위한 행사를 위해 이용되었다.
황금색 기와 지붕과, 높이 추켜든 추녀, 그림과 조각으로 단장된 대들보,
그리고 주홍색의 웅장한 기둥들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하얀색 대리석 위에 새겨진 조각들은 하늘의 평화와 황제의 권력을 상징한다.
■ 인민영웅 기념비
천안문 광장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인민영웅기념탑은 1952년에 세워진 기념비로
높이 37.94미터에 탑 토대만 3천여 평방미터의 중국 역사상 최대의 기념비이다.
탑신은 견고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의 주변은 소박한 미의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2층의 난간이 두르고 있다.
탑에는 모택동 주석의 친필로 쓴 " 인민영웅영수불후(人民英雄永垂不朽)' 8글자와 중국 현대사가
대형 부조로 새겨져 있다.
■ 인민대회당
광장의 서쪽에 위치하는 인민대회당은 높이 46미터, 길이 336미터,
너비 206미터에 건축면적이 17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대회당의 정면에는 높이가 25미터에 달하는 12개의 대리석 문주가 있으며,
중앙의 로비로 들어가면 연분홍색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과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석주가 서있으며,
천장에는 수정 샹들리에가 걸려져 있다.
중앙로비를 지나면 우아한 인테리어의 대강당이 나오고 대회당의 북부로 가면
5천개의 좌석을 가진 연회장이 나온다.
모든 건축물은 중국의 전통 건축양식에 외국의 인테리어 분위기를 가미하여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다.
■ 모주석 기념당
천안문 광장의 남쪽에 있는 모택동주석 기념당은 1977년 9월에 지어졌다. 축물은 대추색의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기념당은 북청,첨앙청과 남청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으며, 방부처리된 모택동의 시신이 첨앙청 내에 있는
수정관에 뉘어져 있고 주위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진귀한 꽃들이 관을 두르고 있다.
북청 상층에는 모택동, 주은래 등의 개국원로의 혁명업적이 나열되어 있다.
-주의사항: 모택동 주석의 시신이 있는 첨앙청에 들어갈 때는 카메라와 캠코더, 각종 음료는 들고 들어갈 수 없다.
■중국 국가 박물관
천안문광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 국가박물관은 2003년 2월28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1959년에 세워진 중국 역사박물관과 1961년에 세워진 중국 혁명박물관이 합쳐져 만들어진 곳으로
건물높이 33미터, 길이 313미터, 너비 100미터의 웅장한 기세를 가졌다.
인민 대회당과 서로 마주보고있으며 지속적으로 개보수를 진행하고 있다.
[자금성]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 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고궁(故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이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소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자리잡고 있다.
방어의 목적으로 궁전 밖에는 10m 높이의 담이 있는데,
사방에는 성루가 있고 밖에는 넓이 52미터, 깊이 6미터의 호성강(護城河)이 흐른다.
4면의 담에는 각기 문 하나씩이 나있는데 남쪽에 오문(午門), 북쪽에 신무문(神武門), 동쪽에 동화문(東華門),
서쪽에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1988년 개봉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꼼꼼하게 관광을 하는 데에는 하루가 꼬박 걸리고
그냥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도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넓은 곳이다.
요즘에는 세계적인 문화공연도 종종 열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 아니라
중국시민의 휴식장소, 문화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LISHAN FLOWER GARDEN HOTEL(麗山賓館) 또는동급(Tel : 0433-291-0999)
민속풍정원 또는동급(Tel : 0433-575-0000)
CHUNHUIYUAN WARM SPRING HOTEL 또는동급(Tel : 86-10-6945-4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