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낙산에서 직행을 타고 오른쪽 내내 백두대간의 산을 끼고
왼쪽의 동해안의 푸른 바다를 보면서 여덟 시간 만에 경주 사등이요(史等伊窯)>에 도착했다.
무초(無草) 최차란 선생께서 처음으로 차도를 강습한다고 나를 초청했는데 총 4명이 모였다.
일본에서 1명 서울에서 2명 수제자 교무 1명 남자는 나 혼자인데 무초선생의 암 치료용으로 낮게 지은 황토방 자문의 인연으로 초대되었다.
방 배정, 내방은 가로 6자 세로 8 자 높이는 내가 앉아서 머리 위에 주먹 세 개 포개 놓은 높이인(1m 정도)
독채에 장작 군불 지피는 부엌이 딸린 언덕 위 황토방이며
열면 출입문, 닫으면 창문인 가로, 세로 45cm 문, 기어서 들어가야 하는 창문 겸 출입문 하나
생각하니 무초선생께서 몇 년 전에 암(癌)을 치료하신다고 나에게 자문을 해서 지은 봉토(封土) 낮은 구들방이 이 것이구나 하고 금세 알아차렸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강의가 시작되었다.
"선생님(ㅇㅇ세) 건강이 좋지 않으시니 따뜻한 식당방에서 하지요?"
선생의 수제자 교무가 말하니
"아니다 차도(茶道)는 차실에서 해야지."
우리는 한참 걸어 새로 단장한 듯한 차실에 모였다.
헌 집을 개조한 차실,
실내에 정원(中庭)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정지(부엌)가 있고 벽에는
한천고정자자다(寒泉古鼎自煮茶)라는 액자하나 걸려 있다.
"맑고 찬 샘물과 정이 깊은 오래된 솥에서 자연스럽게 차가 끓는구나." 이런 뜻이 아닐까? (無耘 譯)>
한쪽 구석에 화로 위에 솥.
그 외 구질구질한 것은 하나도 없는 깨끗한 차실이다.
남쪽의 차실 창문은 출입문으로 쓰게 만들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될 정도의 낮은 출입문인데 비해
서쪽의 출입문은 아주 크고 높다. 겨울이라 매서운 서북풍이 몰아쳤다.
더군다나 서쪽 출입문까지 올라오는데 돌계단이 아홉 층계가 있어서 세찬 바람이 더한 듯 출입문 열고 닫기가 겨울바람에 힘들다
건축경험이 있는 나는 돕는다고 말하였다.
"선생님, 남쪽 창은 좀 크고 높게 만들어야 겨울에 햇빛이 많이 비쳐 밝고 겨울에 실내가 따뜻하고요,
서쪽 문은 작아야 겨울에 매서운 서북풍이 몰아치니 그곳은 오히려 문을 작게 만들어야 차실이 따뜻하지요"
나의 말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아니다 남쪽문은 집 주인이 들어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낮게(겸손) 만들어야 하고,
서쪽 문은 손님이 출입하는 곳이라 높아야지 그리고 손님이 출입문을 들어서기 전 아홉 계단을 밟는 것은 구천(九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야 손님이 구천에 올라 대접받는 느낌이 들 것 아니여?"
나는 일반 주거 환경학적으로 말한 것인데 반해 선생 깨서는 손님을 배려한 깊은 의미부여까지 하셨다.
무초선생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차실에는 왜? 화로와 솥외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아?
화로의 위치는 우주의 핵심에 해당하는 자리에 마련해야 되지.
우주의 핵심은 곧 태극세계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해,
따라서 차실의 꼭짓점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중심으로부터 40cm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아 놓아야 해.
그리고 화로 속에 담긴 뜻이 무궁무진하지,
화로는 지구,
재는 지구상의 흙,
숯은 태극세계의 덩어리를 상징하는 것이여.
또한 불덩어리는 태극세계의 발화성(發火性)을 의미하고,
삼발이는 삼성(태양, 지구, 달) 세계를 의미하고,
물솥을 우주원리에 연결하듯 화로의 내용물에도 철학을 담아내야 하지 않겠어?"
- 우주의 진리를 잡아다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덮어쒸어 활용하신 선생님의 이력이 묻어나는 말씀이셨다. -
이번에 " 月曜 茶와 香"제하에 차상차림을 소개하면서 그때 보고 배운 것을 그대로 찻상차림을 게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