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5에서 ‘예수님이 마음에 거하시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버림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예수님이 제 마음에 거하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그 확신은 어떤 체험이 아니라 주님이 제 안에 거하지 않으시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제 마음에 일어나고 있음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되었기 생긴 것입니다.
주님이 마음에 거하시는 것을 알게 되니까, 주님이 어떤 분인지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더 알고 싶습니다.” 그런 갈망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에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감정이입을 해서라도 그때 그 느낌, 주님의 생각과 상태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양쪽 손목에 대못이 박히는 것을 묵상하다가 그만 벌떡 일어나버렸습니다. 깜짝 놀라 묵상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상상을 하는 것조차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안정이 안 될 정도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정말 끔찍하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 고통의 극점에서 예수님이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명이었을까요? 신음이었을까요?
그 고통의 정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에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너무나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한다면 누구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을 알고 만나고 나니 내가 져야할 십자가가 깨달아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르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모르는데 어떻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곧 나의 십자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한마디씩 깊이 묵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만나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