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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인터넷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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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김천일 장군의 부인은 김해김씨다(김해김씨 삼현파 감남님의 글입니다)
김영광 추천 0 조회 132 13.05.15 10: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천일 장군 부인 김해김씨 

 

 

 

 

김천일 장군의 부인 김씨는 김해김씨 시중공 휘 탁의 6세손 위원군수 효량의 둘째 따님이십니다. 매우 현명하고 지략이 뛰어난 분으로 "아내덕에 이름을 날린 의병장 김천일"이란 일화가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김천일(金千鎰)(1537: 중종32-1593: 선조26)장군은 선조 때의 의병장 으로 자는 사중(士重)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본관은 언양입니다.. 임진왜란 때 고경명과 함께 나주(羅州)에서 의병을 일으켜, 왕명을 받고 진주(晋州)에 주둔하여 절도사(節度使) 최경회(崔慶會)‧ 황진(黃進)‧장윤(張潤) 등과 성을 사수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아들 상건(象乾)과 함께 남강(南江)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스며 이소식을 들은 부인도 자진하였슴니다. 뒤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고 , 시호는 문열(文烈 ), 나주의 정렬사(旌烈祠), 진주의 창렬사(彰烈祠), 순창의 화산서원(花山書院), 태인의 남고서원(南皐書院), 임실의 학정서원(鶴亭書院) 등에 배향(配享)되었으며. 저서에 《송천집(松川集)》, 문집에 《건재집》이 있슴니다.

<청구영언에 실린 김씨부인에 대한 원문과 번역문>

 

金倡義使千鎰之妻 不知誰家女子 而自于歸之日 一無所事 日事晝宵寢. 其舅誡之 「汝誠佳婦 而但不知爲婦之道 是可欠也. 大凡婦人 皆有婦人之任 汝旣出嫁 則治家産可也 而乃不此之爲 日以午睡爲事乎?」 其婦對曰 「雖欲治産 赤手空拳 何所藉而營産乎?」其舅悶之憐之 卽以租數三十苞 奴婢四五口 牛數隻給之曰 「如此則足可爲營産之資乎?」 對曰 「足矣.」 仍呼奴婢近前曰 「今則汝輩旣屬之於我 當從吾之指揮. 汝可駄穀於此牛 入<지명>茂朱某處深峽中 伐木作家 以此租作農粮 而勤耕火田 每秋以所出都數 來告於我. 粟則作米儲置 每年如是可也.」 奴婢輩承命 而向茂朱而去.居數日 對金公而言曰 「男子手中 無錢穀 則百事無成 何不念及此?」 公曰 「吾是侍下 人事衣食 皆賴於父母 則錢穀從何而辦出乎?」 婦曰 「竊聞洞中 李生某家 積累財貨 而性嗜賭博云 郞君何不一往 以千石之露積一塊爲賭乎?」 公曰 「此人以博局一手 有名於世 吾則手法甚拙 何可生心於賭博乎?」 婦曰 「此則易與耳. 第以博局持來.」 仍對坐而訓之 諸般妙手 隨手指訓. 金公亦奇傑之人也 半日對局 陣法曉然. 其婦曰 「今則優可賭博 君子須以三局兩勝爲賭 初局則佯輸 而二三局 則堇堇決勝. 旣得露積後 彼畢更決雌雄 須出神妙之手 使彼不得下手可也.」 金公然其言.明日躬往其家 請賭博局 則其人笑曰 「君與我居在同閈 未聞君之賭博矣. 今忽來到者 未知何故也. 且君非吾之敵手 不必對局」 金曰 「對局行馬然後 可定其高下 何必預先斥退?」 仍强請至再至三 其人曰「若然則吾於平生對局則必賭 以何物爲賭債乎?」 公曰 「君家有千石露積者三四塊 以此爲賭可乎.」 其人曰 「吾則以此爲賭 君則以何物爲賭乎?」 公曰 「吾亦以千石爲賭.」 其人曰 「君以侍下之人 不小之穀 從何辦出乎?」 金公曰 「此則決勝負後 可言之事 吾若不勝 則千石何足道哉?」 其人勉强而對局 而兩勝爲限.初則金公佯輸一局. 其人笑曰 「然矣.君非吾之敵手 吾不云乎?」 金公曰 「猶有二局矣 又對局.」 李生心甚異之 又復對局 則連輸二局矣. 李生驚訝曰 「異哉異哉 寧有是理? 旣許之千石 不可不給 卽當輸之 第又更賭一局.」 金公許之. 復對局 始出奇妙之手 李生勢窮力盡 不得下手 金公笑而罷歸.對其妻而言則妻曰 「吾已料之矣. 公旣得此矣 將焉用哉?」 妻曰 「君子之所親人中 窮婚窮喪及貧不能資生者 量宜分給 勿論遠近貴賤 如有奇傑之人 則與之許交 交而逐日邀來 則酒食之費 我自辦備矣.」 金公如其言而行之.一日其婦又請于其舅曰 「媳將欲事農業 籬外五日耕田 可使許畊乎?」 其舅許之. 於是畊田而遍種瓠 待熟而作斗容瓠 使之着柒 每年如是 充五間庫 又使冶匠 鍊出二箇如斗容瓠樣 幷置于庫中 人莫曉其故也.及任亂 倭寇大至 夫人謂金公曰 「吾之平日 勸君子 以恤窮濟貧 交結英男子 欲於此等時 得其力故也. 君子倡起義兵 則舅姑避亂之地 吾已經紀於<지명>茂朱地 有屋有穀 庶不貽君子之憂矣. 吾則在此 辦備軍粮 使勿乏絶也. 金公欣然從之 遂起義兵 遠近之平日受恩者 皆來附 旬日之間 得精兵四五千 使軍卒各佩柒瓠而戰 及其回陣之時 遺棄鐵鑄之瓠於路而去. 倭兵見而大驚曰 「此軍人人佩此瓠 其行如飛 其勇力可知其無量.遂相與戒飭 無復嬰其鋒. 以是之故 倭兵見金公之軍 則不戰而披靡. <인명>金千鎰之多建其功 盖夫人贊助之力也.

 

[번역문]

 

창의사(倡義使)<창의사(倡義使):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났을 때에 의병(義兵)을 일으킨 사람에게 주던 임시 벼슬. >김천일(金千鎰)의 처는 김해김씨의 집안에서 시집을 왔다. 시집온 날부터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날마다 밤낮으로 잠자는 것만을 일로 삼으니, 그의 시아버지가 훈계하였다.“너는 진실로 아름다운 아녀자이면서도 아녀자의 도리를 모르는 것이 다만 흠이다. 무릇 아녀자에게는 아녀자로서의 임무가 있느니라. 너는 이미 출가하였으니 가산을 다스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행하지 않고 날마다 낮잠자는 것만을 일로 삼는 것인고?”며느리가 이에 대답하여 말했다.“비록 치산하고자 한들 붉은 손 빈 주먹일 뿐인데 어느 곳에 기대어 영산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시아버지는 민망스럽고 가련하게 여겨 즉시 벼 수삼십 섬과 노비 4,5구(口), 소 몇마리를 주며 말했다.“이 정도면 영산할 자본이 되겠느냐?”그녀가 대답했다.“충분합니다.”그녀는 노비들을 불러 앞으로 가까이 오게 하더니 말했다.“너희들은 이미 나에게 속해있으니, 마땅히 내가 지휘하는대로 따라라. 너는 곡식을 이 소에 실고 무주(茂朱) 모 처에 있는 깊은 협곡 가운데 들어가 벌목하여 집을 짓고, 이 벼로 농량(農糧)<농가에서 농사지을 동안 먹는 양식.> 을 만들어 열심히 화전을 갈어, 매 가을에 소출하는 바를 모두 나에게 와서 아뢰도록 하여라. 벼는 쌀로 만들어 저장해라. 매년 이와같이 하도록 해라.”노비들은 그녀의 명을 받들고 무주로 갔다.며칠이 지나자 그녀는 김공을 대하여 말했다.“남자 수중에 전곡이 없으면 백사(百事)를 이룰 수 없는데 어째서 생각이 이에 미치지 못하십니까?”“나는 시하(侍下)<노모나 조부모가 살아있어 함께 모시고 있는 사람.>로 인사(人事)와 의식(衣食)을 모두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으니, 전곡인들 어디에서 갖추어낼 수 있겠소.”“가만히 들으니 마을에 사는 이생 아무개의 집은 많은 재산을 모았는데 그의 성품이 도박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서방님께서는 어찌하여 그 집에 한번 왕래하여 천석의 노적 한 뭉치를 걸고 장기를 해보시지 않으십니까?”

 

그 사람은 장기 일수(一手)<상수(上手). 높은 수나 솜씨>로 세상에 이름이 난 사람이지만, 나는 수법이 매우 졸렬하니 어찌 도박하겠다는 생각을 내기나 하겠소?”“그것은 쉬운 일입니다. 다만 장기판을 가져 오십시오.”인하여 김공의 처는 김공과 대좌하여 제반 묘수를 가르쳐 주었다. 손이 닿는 곳마다 따라 가르치고 훈계하였다. 김공 또한 기걸(奇傑)한 사람인지라, 반나절 대국하는 동안에 진법(陣法)을 명백하게 깨닫게 되었다. 아내가 말했다.“이제는 충분히 도박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모름지기 세판 양승으로 내기를 하십시요. 초국은거짓으로 져주고, 이국과 삼국은 근근히 이기십시요. 노적을 얻은 후에도 그 사람은 반드시 다시금 자웅을 겨루고자 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모름지기 신묘한 수(手)를 내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착수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김공은 그녀의 말이 옳겠다고 여겼다.그 다음날 김공은 이생의 집에 몸소 찾아가도박 장기두기를 청하니, 이생이 웃으면서 말했다.“당신과 나는 같은 동내에 살았지만 나는 당신이 장기 도박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라곤 없소. 그런데 오늘 갑자기 찾아와 도박하자는 것은 무슨 연고인지 모르겠소. 게다가 당신은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하오. 그러니 대국할 필요가 없겠소.”“대국(對局)하여 행마(行馬)<쌍륙(雙六)‧장기 따위에서 말을 씀.>한 연후에 그 고하(高下)를 정하는 것이지, 어째서 미리 물리치기부터 하시는 것입니까?”김공은 재삼 강청했다. 이생이 말했다.“그렇다면 좋소. 그러나 나는 평생 대국에서는 반드시 내기 도박을 했는데, 무엇으로 도채(賭債)를 삼겠소?”

 

당신 집에는 천석의 노적이서너 뭉치 있으니, 그것으로 내기를 삼으면 되겠습니다.”“나는 그것으로 도채를 삼는다 치고 당신은 무슨 물건으로 도채를 삼겠소?”“나 또한 천석으로 도채를 삼겠소이다.”“당신은 시하(侍下)의 사람으로 그 적지않은 곡식을 어디에서 판출해낸다는 것이오?”“그것은 승부를 결정한 후에나 말할 수 있는 내용이오. 내가 만약 이기지 못할 것이라면 어찌 천석 말을 할 수 있었겠소?”김공은 이생을 애써 졸라 대국하게 되었는데, 두판 이기는 것으로 한계를 정하였다. 김공은 첫 판을 일부러 져주었다. 그러자 이생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러면 그렇지. 당신은 나의 적수가못되오. 내 말하지 않았소?”“아직 두 판이 남았습니다.”이생은 마음으로 몹씨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또 다시 대국하였는데, 연이어 계속 두 판을 김공에게 패했다. 이생이 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했다.“이상하다. 참 이상도 하다. 어찌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있는가. 이미 천석은 허락하였으니 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오. 곧바로 마땅히 날라 주겠소만 또 다시 한판만 더 내기하도록 합시다.”김공이 그렇게 하자고 허락하였다. 다시 대국하게 되자 김공은 그때야 비로소 기묘한 수(手)를 내었다. 이생은 세가 궁하고 힘이 다하여 수를 쓸 도리가 없었다. 김공이 웃으면서 도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 아내가말했다.“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공께서는 이미 이 재물을 얻으셨는데, 이를 장차 어떻게 쓰시겠습니까?”그러더니 아내는 말했다.

 

당신과 친한 사람들 중에서 궁색하여 혼인할 수 없고, 궁색하여 초상을 치루지 못하며,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당한 양을 나누어 주고, 원근과 귀천을 막론하고 만약 기걸한 인물이 있으면 그와 더불어 교제하고 사귀어서 날마다 맞이하여 온다면, 술과 음식의 비용은 제가 스스로 갖추어 준비하겠습니다.”김공은 아내가 말한대로 따라 행하였다.하루는 김공의 부인이 시아버지에게 청을 드렸다.“제가 농사일에종사하고 싶은데, 울 밖에 있는 닷새갈이 경작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그의 시아버지는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김공의 처는 밭을 간 뒤 두루 박을 심었다. 그 박들이 익기를 기다려 말들이 크기의 박이 되자 그 박들에다 검은 칠을 하도록 시켰다. 매년 이와같이 하여 다섯 칸의 창고에 검은 색칠한 박들을 가득 채워놓고, 또 대장장이를부려 한말들이 박과 똑같은 모양으로 쇠박을 두개 만들어 창고 안에 넣어 두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연고를 알 수 없었다.임진년에 이르러 왜구들이 대거 처들어오자 부인이 김공에게 말했다.“제가 평소 당신에게 가엾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여 영웅들과 교제를 맺도록 권했던 것은 이 같은 때를 당해 힘을 얻기 위함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의병을 창기(倡起)하십시오. 시부모님께서 피란할 땅은 제가 이미 무주땅에 경영해 두었고 집과 곡식을 마련해 두었으니 그 문제는 당신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 남아 있으면서 군량을 갖추고 준비해서 떨어지지 않도록 힘쓰겠습니다.”김공이 흔연해하면서 그녀의 말을 좇았다.김공이 마침내 의병을 일으키니 원근에서 평일 그의 은혜를 입었던 자들이 모두 와서 참여하였는지라, 열흘 사이에 정병(精兵) 사오천 무리를 얻을 수 있었다. 군졸들로 하여금 각각 칠해두었던 박을 차고 나가 싸우게 하였다. 그들이 회진(回陣)할 때 쇠로 주물한 박을 길가에 버려두고 가니, 왜병들이 그 쇠로 주물한 박을 보고는 모두 크게 놀라 말했다.“이 군인들이 모두 이 박을 차고 있는데도 그 걸음걸이가 마치 나는 듯 하였으니 용력이 가히 헤아릴 수 없음을 알겠도다.”왜구들은 마침내 서로 더불어 계칙하여 다시는 칼날을 휘두르지 않았다.이러한 까닭에 왜병이 김공의 군대만 보면 싸우지 않고 바람 앞의 풀처럼 쓰러졌다. 김천일이 기적적인 공을 많이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부인이 찬조한 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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