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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주지 5물’ 걸어 두고
수행자로 부족함 없나 성찰
호성스님의 방에는 5가지 물건이 있다. 저울 다리미 말(소두) 솔 부젓가락이다. 저울은 스님의 양심을 달고, 말은 신도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 솔은 먼지를 털듯 삼독심을 털기 위해서이며 부젓가락은 하루 한 가지 좋은 일을 하자는 뜻이다. 스님이 지은 ‘주지5물(物)’이다. 스님은 이 다섯 가지를 보면서 ‘수행자로서 부족함이 없는가, 덕화는 있는가’ 되새겨 본다고 한다.
스님은 그리고 웬만해서는 밖을 나가지 않는다.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것보다는 손님 맞기에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 예산 지원도 모두 주지 스님 방에서 이루어졌다. 특별한 이력도 없다. 고운사 조실이며 원로의원인 근일스님을 은사로 출가해서 25년 간 줄곧 선원을 다녔고 소임이라고는 고운사 주지 맡은 것이 처음이자 유일했는데 내리 3번 추대됐다. 스님은 “참선 공부 잘하면 뭐든 지혜가 열리고 통찰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수능생 야간학습실 찾아 공양
지역 청소년 장학금 문화행사
주민들 위한 복지 구호사업에
수행공동체 이웃위한 자비실천까지…
“본사 주지는 명분이 있어야합니다
의도를 갖지 말고 그냥 베푸세요”
‘만장일치’로 세 번 내리 추대돼
현 제도 아래서 교구본사 주지를 내리 세 번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늘 그렇지만 희망자는 많은데 자리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두 번 하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다. 대중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한다. 업무와 대중평판도 두 분야 모두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 연임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제16교구본사 고운사 주지 호성스님은 세 번 내리 연임했다. 그것도 투표 없이 만장일치 지지를 받았다.
호성스님의 3연임은 고운사를 떠나 종단 전체적으로도 여러 가지 의미가 깊다. 우선 근래 몇몇 교구본사가 주지 선출로 진통을 겪고 있던 차에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자칫 본사 주지 선거를 놓고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뻔 했는데 고운사가 흐름을 차단했다. 두 번째, 불교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투표는 아무리 잘해도 후유증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투표 없이 만장일치 추대돼 일체의 잡음을 남기지 않았다.
스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3선 연임이 확정된 지난 4일 주지 스님 방에서 만나 지난 8년간의 성과와 앞으로 4년 계획을 들었다.
고운사는 작은 사찰이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일반적인 고찰과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본사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숲길이 펼쳐져 있고 입구는 관광지로 조성된 것과 달리 고운사는 시골 길 밖에 없다. 일주문 앞 넓은 공터만 이곳이 절 입구임을 보여준다.
웬만한 사찰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음식점 한 곳도 없다. 경내도 좁다. 처음 본 사람들은 이곳이 교구본사가 맞나 의심할 정도로 건물이 몇 동 되지 않는다. 찾는 관광객도 없는 작고 조용한 사찰이다. 하지만 지금 고운사는 불사로 바쁘다. 목재와 기와가 이곳저곳 쌓여있고 형체가 드러난 큰 건물이 곳곳에 서 있어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두 호성스님이 지난 8년간 만든 업적이다. 고운사 대중스님들이 왜 만장일치로 스님을 다시 선택했는지 잘 보여주는 광경이다.
스님은 본사 주지의 요건에 대해 두 가지를 강조했다. ‘명분’과 ‘실천’이다. 스님은 “본사주지는 명분이 있어야한다. 무엇이 명분인가? 부처님 법의 두 날개 ‘깨달음’과 ‘중생구제’다. 문제는 바로 이 명분의 실종에서 생긴다. 부처님 가르침이 널리 세상에 퍼져 화엄세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것이 교구 책임자의 명분이고 존재이유다.”
호성스님은 지난 8년간 기본 운영방침 4가지를 선택했다. △지혜와 자비를 구현하는 수행 공동체 △사회와 이웃을 향한 나눔과 봉사의 불교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화엄사상 선양 △고운사와 교구의 전법도량 기반구축이 그것이다. 스님이 말하는 명분을 갖춘 교구 주지가 바로 첫 번째 지혜와 자비를 구현하는 수행공동체로 구체화 됐다. 이를 위해 스님은 ‘불경에 대한 이해와 자기혁신 및 지혜 계발로 승가상 확립’을 주제로 각성스님을 모시고 10회에 걸쳐 특강을 실시했다. 연인원 1100명이 수강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행자의 올바른 상이 무엇이며 불교가 가야할 바른 길이 무엇인지 이 강의를 통해 점검하고 함께 고민했다.
그리고 실천에 옮겼다. 실천은 곧 보시(布施)였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보시행을 고운사는 넘치도록 실천했다. 스님은 “우리 고운사는 가장 가난한 교구이지만 넘치도록 베풀었다. 특히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많이 다가갔다. 연말마다 사생대회를 열어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국 최초로 고등학교에 야참을 지급했다. 의성에 고등학교가 3개 있는데 수능 전후로 군수, 경찰서장과 함께 야간 자습하는 아이들에게 빵과 우유를 사서 찾아갔다. ‘너희가 우리 군의 미래’라면서 격려했다.”
스님의 보시행은 아무런 목적도 의도도 없다. 그냥 부처님 가르침대로 행할 뿐이었다. “지역 불자 몇 명 늘리려는 목적으로 보시한다는데 이는 잘못이다. 부처님 가르침이기 때문에 실천하는 것뿐이다”는 스님의 지난 8년간 실천행은 놀랍다. 교구관할 지역인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의 교육청으로부터 추천 받은 소년소녀가장 고등학생에게 장학금 전달 및 문화탐방을 7차례 실시해 연인원 283명에게 8410만원의 혜택을 베풀었다.
고운사 인근 초등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매년 장학금 및 학용품 전달했으며, 지역관내 고3 수험생 수능 격려금과 장학금을 전달하고 학교법인 동국대학교에 발전기금을 기부했다. 가장 역점을 둔 어린이 청소년 지원 외에 어르신 경로잔치, 효나눔 행복잔치를 베풀고 경북지역 저소득 가정을 대상으로 스님들이 나서 자비실천 김장나누기 행사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스님의 지역주민 축제 철학이 새롭다. 고운사에서 행하는 마을 잔치인데 스님이 손님이고 주민이 주인이다. 스님은 “동네 잔치하는데 500만원이 들었는데 200만원을 이장에게 주었다. 그러니 마을 잔치가 되더라. 이장님이 부녀회원들과 함께 준비하니 우리가 초청을 받게 됐다. 절 축제를 하면 우리가 해서 초청하는데 그러면 마을사람들은 객이 된다. 마을 주민이 주인이고 스님이 객이 되어야한다. 그것이 아무도 모르게 하는 불교의 보시법이다”라고 말했다.
늘 신도와 주민을 주인으로 놓는 스님의 철학은 템플스테이에서도 적용된다. 스님은 1박2일 찾아가는 템플스테이를 개최했다.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찾아가서 템플스테이를 했다. 찾아가서 불교문화 사상을 가르쳐주면 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큰 호응을 얻었다. 사람을 주인으로 놓고 생각하면 모두가 호응하고 좋아하는 불사가 된다.”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화엄사상 선양’, 주지 스님의 세 번째 철학이 바로 이것이다. 자라나는 아동·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문학창작의 장을 마련하고 전인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축제의 한마당 행사인 ‘천년 솔 향 새싹 문학 축제’는 6회에 걸쳐 연인원 2300명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뤘다. 거의 1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일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이 역시 관내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배려다. 지난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산사음악회, 6년간 실시하고 있는 산하 복지시설 직원 해외연수 등이 이 사업에 속한다.
‘고운사와 교구의 전법도량 기반 구축’ 사업은 교구의 기본 틀을 다지는 핵심사업이다. 가장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분야이기도 하다. 수련회 템플스테이 특강 세미나 등을 열수 있는 참선 체험관을 27억원을 들여 신축한 것을 비롯, 외부 방문객 관광객이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우화루 지대방 개관, 고운사의 고승인 수월스님을 기리는 수월암 복원, 그리고 고운사 경내 전선 지중화, 축대보수, 행자실, 나한전, 선원지대방 개축, 일주문 보수, 운수암 고운 강원 복원, 종무소 개축, 대웅보전 기와번와, 강원 화장실·샤워장 신축 등 사찰 경내 정리 정돈 사업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사를 수행했다. 돈으로 환산하면 200억원이 넘는다.
고운사 경내를 벗어나 지역에도 수많은 건물이 들어섰다. 안동에 청소년 문화공간인 ‘안동청소년 문화센터’를 신축했다. 50여억원을 들인 지하 1층 지상 4층의 이 건물은 식당 각종 체육실, 강의실 등이 들어서 안동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또 전통사찰음식의 계승발전과 사찰음식 대중화를 위해 사찰음식체험관을 신축한데 이어 발효숙성실 공사가 한창이다.
앞으로 4년간의 계획도 힘차고 밝다.
스님은 “미래를 여는 불교가 최종 목표다. 미래를 여는 불교는 곧 조실 큰스님의 수행가풍 맥을 잇는 것이다. 수월암을 선원으로 개축하여 참선납자들을 잘 제접하고 조실 큰스님 수행 가풍을 잇는 것이 최고·최상의 목표로 궁극적으로는 총림을 개설해 선·교·율·염불의 수행관을 정립하여 인재양성과 불교의 중흥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각성 큰스님을 모시고 화엄학림을 개원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전통사찰문화 계승 발전’이다. 화엄 템플스테이 연수관, 최치원문학관, 전시실, 사찰음식체험관 운영을 연계시켜 전통사찰문화를 계승발전하고, 미래 불교문화에 초석을 마련하고자 한다. 또 안동 도청 인근에 신도시 포교당을 건립해 학생회, 청년회, 신도회를 활성화 시켜 지역 전법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스님은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하면 ‘나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모두로’로 압축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화엄사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