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8: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 본서 기자는 여기서 또다시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간에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개개인의 종교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시사했었다. 반면 본절에서는 자기 기업을 지키지 못하고 외세에 밀려나는 약한 지파를 왕정제도에 의해 강대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온전케 보존 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6 주석을 참조하라.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 본래 단 지파는 여호수아 생존 시에 기업을 분배 받았었다. 그러나 가나안 정착 초기에 분배받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아모리 족속에 의해 쫓겨난 타 지파의 땅에 분산 거주하거나 새로운 정착지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본서 기자는 단이 분배받은 기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요셉 족속이나 유다 지파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암시했었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그 이유를 왕이 없는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 따라서 왕정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단순히 본서 기자의 주석이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견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삿 18: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 삼손의 고향이자 단 지파의 기업이던 소라와 에스다올은 유다 지파와 단 지파의 경계 지역이다. 이중 소라는 예루살렘 동쪽 약 6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며 에스다올은 소라의 동북쪽 약2.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한편 본래 이 소라와 에스다올은 유다 지파의 기업이었는데 훗날 기업을 재조정하면서 단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이곳에 안주치 못하고 많은 수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주하였는데전술한 바와 같이 아모리족의 침입 때문이었다. 1:34 주석 참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 단 지파는 그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땅을 찾기 위해 그들의 씨족 가운데서 용맹한 다섯 사람을 미리 정탐꾼으로 파견하는 등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아마도 단 지파는 이러한 준비를 하면서 마치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을 재현하는 듯한 꿈에 젖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속의 유업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자들이 신개척지를 얻는다 하여 거기서 신실한 언약 백성의 모습을 존속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으로 남겨질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의구심 그대로 그들의 불순하고 패역한 자태는 본장에 확연히 기록되고 있다.
한편 단 지파의 북쪽 이주에 대한 기사를 요약하고 있는 사건으로 인하여 단 지파의 지경이 확장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삿 18:3]"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 정탐꾼들은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북쪽으로 가던 도중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신당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레위 소년의 음성을 듣고 발을 멈추게 되었다. 이들이 어떻게 레위 소년의 음성을 금방 알아들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다음 두 가지 경우로 추측해 볼 수 있다. (1) 이 레위 소년이 베들레헴을 떠날 때 소라와 에스다올 지역을 지나쳐 왔기 때문에 정탐꾼들과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2) 에브라임의 방언은 특색이 있는데 이 소년은 에브라임 방언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 밖에도 혹자는 단 사람들이 밤에 미가의 집에서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종소리를 듣고 레위인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본절은 분명히 단사람들이 미가 집을 발견하고선 그곳에 유숙하러 가다가 레위 소년을 만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 같은 추측은 개연성이 없다.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 이 구절로 볼 때 단 사람들은 레위 소년이 생계 수단을 구하기 위해 떠돌아 다녔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는 정탐꾼들이 레위 소년을 금방 알아본 이유가 이전에 이미 안면이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을 한층 짙게 해준다.
[삿 18:4]"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나를 고빙하여 - 여기서 '고빙하다'에 해당되는 '사카르'는 임금을 주고 고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본절에서 레위 소년은 자신이 삯을 받고서 제사장으로 고용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종교인들이 얼마나 부패했던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즉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세우심을 받는 성직인데도 불구하고 레위 소년은 이에 대하여 천박한 직업 의식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 또한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복음을 증거하고 그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성스러운 일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상업적 이해 관계가 개입되어서는 아니되며, 다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피차의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 요청된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누리는 복음은 값없이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의 교직자들은 자칫 천박한 직업 의식에 빠져 거룩한 복음 사역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로 봉사하기를 힘써야 한다. 교회에 소속된 모든 성도들은 교직자로하여금 복음 사역에 전무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