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리 포터)를 떠올리면 결코 잊지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열 살 고아 소년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에 입학하기 위해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벽을 뚫고 들어가던 장면이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차단된 벽 속으로 해리가 성큼 발을 내딛고 들어서자 벽 속에는 마법학교로 가는 특급열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승강장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장면이 펼쳐진다. 나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것은 벽이 문이 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모든 벽 속에는 문이 존재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알게 되었다. 벽은 항상 굳게 막혀서 이곳과 저곳을 차단함으로써 그 존재 가치를 지니는 것인데 그 안에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내 인생의 벽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해리 포터)의 작가인 조앤 K.롤링만 해도 ''해리포터 시리즈'' 는 인생이라는 벽 앞에서 작가 자신이 연 용기의 문이었다. 이혼 후에 어린딸을 데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인생이라는 벽 앞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씀으로써 자신의 인생이라는 벽을 문으로 만들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 인생의 벽 앞에서 돌아서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벽을 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적은 있었다. 내 인생의 꿈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어서.내 인생이라는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서. 오로지 내 삶. 내 인생. 나의 실존. 존재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천국은 어디에 있고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 성공적인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인가 ?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벽의 문을 찾고자하는 간절함이 내게 있었다.
그 간절함을 찾고자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그 당시에 잘 다니던 은행에 친지와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은행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표내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절대 아니었다. 늘 생계라는 벽에 가로막혀 번번히 되돌아서고 되돌아서곤 몇번을 반복했다.
좀처럼 그 벽을 뚫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젊은 나이에 내 마음속에서 강하게 일어나는 진리를 알고 깨닫고자 하는 목마름과 갈급함.간절한 소망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진리를 알고 깨닫고자 하는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서 종교학을 공부했다. 시간이 흐르고 30여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 하고 환갑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나마 그 어렵고 힘든 벽을 뚫고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기 때문에 보다 더 영혼의 자유스러운 삶.깨달은 지혜로 사는 삶.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삶을 살게 된 게 아닌가 싶어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이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도 돈과 재물도 명예와 권력도 멈추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시간과 이 세상 어느구구도 넘어야하는 관문인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우리가 일평생동안 시간과 열정을 바쳐 이룩해놓은 것들이 과연 어떤의미가 있는 것일까 ?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어리석음과 탐욕의 감옥에서 자유할 수 있을 것인가 ?
조류 중에서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에 관한 우화에는 독수리가 삶의 벽 앞에서 문을 여는 존재로 그려진다. 독수리의 평균 수명이 인간과 비슷한데 그것은 늙음과 죽음의 벽 앞에서 독수리가 스스로 새로운 삶의 문을 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수리는 30년 좀 넘게 살게 되면 무뎌진 부리가 자라 목을 찌르고 날개의 깃털이 무거워져 날지 못한다.날카롭게 자란 발톱마저 살속을 파고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이대로 죽을 것인가 ? 아니면 뼈를 깎는 고통의 과정을 밟아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를 선택하게 된다.만일 새 삶을 선택하면 6개월 정도 그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높은 산정에 둥지를 틀고 암벽에 수도 없이 부리를 쳐 깨뜨리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새 부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새 부리가 나면 발톱을 모두 뽑아내고 새 발톱이 자랄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그러고는 그 새 부리로 낡은 날개의 깃털도 뽑아내고 새 깃털이 자라 날개짓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때 독수리의 몸은 피범벅이 된다. 그런데도 독수리는 그 고통의 벽 앞에서 자신을 전부 새롭게 갈고 새 삶의 문을 연다. 만일 독수리가 벽 속에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면 결코 인간과 같은 수명을 누리는 새 삶을 살지 못한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벽 앞에서 내일이라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 우화에 나타난 독수리처럼 선택과 결단의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때는 반드시 독수리와 같은 고통과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
2007년 말기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마지막 강연)이라는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인 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메세지를 던진 미국의 랜디 포시 교수는 인생의 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서라는 뜻으로 벽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인생의 벽을 절망의 벽으로만 생각하면 그 벽속에 있는 희망의 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벽을 벽으로만 보면 문은 보이지 않는다. 가능한 일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결국 벽이 보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보면 결국 문이 보인다. 벽 속에 있는 문을 보는 지혜의 눈만 있다면 누구의 벽이든 문이 될 수 있다.그 문이 굳이 클 필요는 없다.좁은 문이라도 열고 나가기만 하면 화합과 희망의 세상은 무한하고 넓다. 그러나 마음속에 작은 문을 하나 지니고 있어도 그 문을 굳게 닫고 벽으로 사용하면 이미 문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방이 벽이다.이념 간.생각 간.세대 간.계층 간.종교 간의 벽이 견고하게 뿌리내려져 있다. 어떤 때는 높디높은 성벽에 둘러쌓여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그러나 그 어떤 성벽이라도 문은 있다. 문이 없는 벽은 없다.모든 벽은 문이다. 벽은 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벽 없이 문은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