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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극락정토 3경>의 <곁뿌리 경전(傍依經典) 5>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 경(般舟三昧經)
로까끄셰마(Lokakṣema, 支婁迦讖),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 경(般舟三昧經) 3권
Pratyutpanne-buddha-sammukhāvasthita-samādhi Sūtra
Pratyutpanne buddhasammukhāvasthitasamādhi Sūtra
■ 반주(般舟)는 무슨 뜻인가?
산스크리트 원문 가운데 붇다(buddha, 佛陀), 싸마디(samādhi, 三昧), 쑤뜨라(Sūtra, 經) 같은 낱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므로 나머지 세 낱말만 보기로 한다.
1) 쁘라띠 욷빤나(Praty-utpanna) : 현재 순간에 존재하는(existing at the present moment), 현재(present), 바로(prompt), 준비된(ready)이란 뜻이고, <漢文>으로는 현재(現), 바로 눈앞(現前), 지금 이때(現在時), 지금 세상(現世), 이제(今)라고 옮겼다.
2) 쌈무카(sam-mukha) : 얼굴을 마주 대하는(facing), 마주하는(fronting), 만나는(confronting, 얼굴을 대하다(being face to face), 앞에(in front of), 마주보다(opposite to), 오늘날의(present), 눈앞에(before the eyes)라는 뜻이고, <漢文>으로는 앞(前), 현재 보는(現見), 현재 눈앞(現在前)으로 옮겼다.
3) 아바-스띠따(ava-sthita, 과거 수동 분사) : ① 가까이 선(standing near), 이어지는(continuing to do anything), ② 약속된(engaged in), 해낸(prosecuting), 다음의(following), ③ 따르는(obeying or following)이라는 뜻이고 <漢文>으로는 있다(在), 자리하다(位); 자다(宿), 머무르다(住), 편안히 살다(安住)라고 옮겼다.
위의 산스크리트 원문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지금 바로 붇다가 눈앞에 가까이 서는(나타나는) 싸마디」라는 긴 풀이가 나온다. 길이를 줄여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라고 옮길 수 있다. 문제는 한문 경전에서 반주(般舟)가 무슨 뜻이냐? 하는 것이다. 솔직히 옮긴이는 처음 이 경 이름 「반주(般舟)」를 봤을 때 사전에도 없는 낱말이라 막연하게 ‘배(舟)’에 관계되는 뜻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로 옮겨보니 배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결국 쁘라띠-욷빤나(Praty-utpanna)를 소리 나는 내로 옮기는 것과 관련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 해설
이 경은 후한(後漢) 시대 로까끄셰마(Lokakṣema, 支婁迦讖)가 179년에 낙양(洛陽)에서 번역한 최초의 대승경전 가운데 하나다. 『큰 반주 싸마디 경(大般舟三昧經)』ㆍ『시방 현재불이 모두 눈앞에 나타나는 싸마디 경(十方現在佛悉在前立定經)』이라고도 한다. 아미따바 붇다 극락정토에 관해 설한 경전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다.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般舟三昧)」는 실제 이 싸마디를 얻어 붇다를 본 흐름이 있었으며, 여산(廬山) 혜원(慧遠)이 그 대표적인 보기다. 그 뒤 지의(智顗)ㆍ선도(善導)ㆍ혜일(慧日)ㆍ승원(承遠)ㆍ법조(法照) 같은 대덕들이 이어서 이 싸마디 수행을 일으켰다. 만일 극락정토 4경을 구성할 때는 가장 먼저 이 경이 들어가야 할 만큼 <아미따바 극락정토 경전>에서 중요하다.
이 경은 모두 16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般舟三昧)와 그것을 얻기 위한 수행법, 그 공덕에 대해 설한다. 여기서는 극락정토와 직접 관계가 있는 주로 상권(上卷) 묻는 품(問事品)과 수행품(行品)을 위주로 가려서 옮기려 한다.
상권은 왜 반주삼매를 닦아야 하는가 하는 목적과 삼매를 얻기 위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설하고 있다.
「묻는 품(問事品)」은 이 경전의 머리말이면서, 전체 주제인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般舟三昧)를 제시하고 있다. 바드라 빨(Bhadra-pāl, 颰陀和) 보디쌑바가 붇다에게, 보디쌑바들이 바다처럼 넓고 깊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자, 붇다는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般舟三昧)’를 닦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행품(行品)」은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般舟三昧)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법을 설한다. 만약 보디쌑바가 시방의 붇다를 염하여 뜻을 오롯이 한다면 바로 붇다 보는 싸마디(般舟三昧)를 얻게 된다. 이와같이 빅슈들이 계를 완전히 갖추고 홀로 고요한 곳에서 서녘 아미따바 붇다를 염(念)하여 7일을 지나면 꿈에 아미따바 붇다를 보게 된다. 붇다는 오는 바 없고, 나도 가는 바도 없으니, 내가 염(念)하는 바를 곧 보게 되는 것이다.
1. 묻는 품(問事品)
붇다께서 라자가하(Rājagaha, 羅閱祇) 마하환가련(摩訶桓迦憐)에 계실 때 큰 빅슈 쌍가 5백 명은 모두 아르한(arhan, 阿羅漢) 과를 얻었으나, 오직 아난다존자만 그 과에 이르지 못하였다.
바드라 빨(Bhadra-pāl, 颰陀和) : 바드라(bhadra)는 ① 축복받은(blessed), 상서로운(auspicious), 행운의(fortunate), 번창한(prosperous), 행복한(happy), ② 훌륭한(good), 정중한(gracious), 친절한(kind), ③ 뛰어난(excellent), 올바른(fair), 아름다운(beautiful), 멋진(lovely), 즐거운(pleasant), 귀여운(dear) ④ 교묘한(skillful in, locative case), ⑤ 심오한(great) 같은 뜻이 있는데 <불경>에서는 어진(賢), 어질고 착한(賢善), 어질고 덕행 있는(仁賢); 착한(善), 묘한(妙), 미묘한(微妙); 뛰어난(勝); 총명한(聰明); 어진 분(仁者)이라고 옮겼다. 빨(pāl)은 지켜보다(to watch), 경계하다(guard), 지키다(protect), 막다(defend), 지배하다(rule), 다스리다(govern)이고 이름씨 꼴인 빨라(pāla). 파수꾼(a guard), 지킴이(protector), 관리인(keeper)을 뜻한다. 그러므로 뜻으로는 ‘뛰어난 지킴이’라고 옮길 수 있다.
<한문경전>에서는 소리로 발라라파라(跋捺羅波羅), 발타파라(颰陀婆羅), 발타파라(跋陀波羅), 발파(拔陂), 발타화(跋陀和), 발날라파라(髮捺羅播邏), 뜻으로는 어진 지킴이(賢護)․ 좋은 지킴이(善守)․ 어진 지킴이(賢守)라고 옮겨 아주 다양하게 옮겼고, 호칭은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닦는(在家) 보디샅바이므로 어른ㆍ어르신(長者)이라고 쓰기도 했다. 소리 나는 대로 ‘바드라 빨’, 뜻으로 ‘뛰어난 지킴이’라고 옮길 수 있다. 한문 경전에 여러 가지로 옮긴 것은 바드라 빨이 집에서 닦는(在家) 보디쌑바이지만, 이 경전 밖에도 마하반야바라밀경, 무량수경 같은 다른 경전에도 많이 나오고, 경전마다 다르게 옮겼기 때문이다.
그때 바드라 빨(Bhadra-pāl, 颰陀和)이라는 보디쌑바가 있었는데, 다른 보디쌑바 500명과 함께 5계를 받아 지니고 있었다. 보디쌑바들은 해 질 무렵 붇다 계시는 곳에 나아가서 붇다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5백명 스라마나(śramaṇa, 沙門)도 함께 붇다 계시는 곳에 이르러 먼저 붇다께 절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佛在羅閱祇摩訶桓迦憐, 摩訶比丘僧五百人, 皆得阿羅漢, 獨阿難未. 爾時, 有菩薩名颰陀和, 與五百菩薩俱皆持五戒, 晡時至佛所前, 以頭面著佛足, 却坐一面. 并與五百沙門俱至佛所, 前為佛作禮, 却坐一面.
바드라 빨(颰陀和) 보디쌑바(菩薩)가 붇다께 여쭈었다.
1) “보디쌑바는 어떤 싸마디(三昧)를 얻어야만, 얻는 지혜가 큰 바다와 같으며 쑤메루산(須彌山)과 같아, 들은 것을 의심하지 않고 마침내 사람 가운데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스스로 붇다가 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마침내 어리석은 곳에 다시 태어나지 않겠습니까?
颰陀和菩薩問佛言:菩薩當作何等三昧? 所得智慧如大海, 如須彌山, 所聞者不疑, 終不失人中之將, 自致成佛終不還, 終不生愚癡之處.
2) 가고 오는 일을 미리 알며, 붇다를 떠나는 일이 없고, 꿈속에서라도 부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豫知去來之事, 未曾離佛時, 若於夢中亦不離佛.
스라마나(śramaṇa, Ⓟ samaṇa, 沙門) ㆍ ① 고행이나 고행하는 사람(one who performs acts of mortification or austerity), 고행자(an ascetic), 승려(monk), 열성가(devotee), 종교적인 탁발승(religious mendicant) 등. ② 스님이나 탁발 스님 (붇다 자신과 자이나교 수행자도 스라마나다) <한문 경전> 소리로 실라미나(室羅末拏)ㆍ사라마나(舍囉摩拏)ㆍ실마나나(㗌摩那拏) 사가만낭(沙迦懣囊)라고 옮겼다. 또는 서역 사투리(꾸차어 samāne, 우전어ㆍ于闐語 samanā) 읽는 법에 따라 사문나(沙門那)ㆍ사문나(沙聞那)ㆍ사문(娑門)ㆍ상문(桑門)ㆍ상문(喪門)이라 옮겼고, 뜻으로는 부지런히 일함(勤勞)ㆍ힘들인 공로(功勞)ㆍ바쁘게 일함(劬勞)ㆍ부지런하고 간절함(勤懇)ㆍ고요한 뜻(靜志)ㆍ맑은 뜻(淨志)ㆍ숨 멈춤(息止)ㆍ마음 멈춤(息心)ㆍ나쁫 짓 멈춤(息惡)ㆍ열심히 멈춤(勤息)ㆍ닦음(修道)ㆍ가난한 길(貧道)ㆍ고달픈 길(乏道)이라고 옮겼는데 출가자를 부르는 말이다.
스라마나(śramaṇa)는 이미 불교 성립 이전에 쓰인 용어이다. 브랗만교에서는 브랗마나의 4가지 단계의 삶(āśrama, 四住期)이 있다. ① 브랗마 배우는 시기(brahmacārin, 梵行期) : 학생시기(8~20살)를 말하는데, 아이가 8살이 되면 집을 떠나, 스승으로부터 베다(veda, 바라문교 경전)와 제사 의식을 배운다. ② 집에 사는 시기(gṛhastha, 家住期) : 가정생활을 하면서 결혼하고 조상의 제사도 지내며 세속의 일을 한다. ③ 숲에서 닦는 시기(vānaprastha, 林棲期) : 나이가 들어 아들딸들이 다 크면 집을 버리고 산속에 숨어 살며 여러 가지 어려운 수행을 하여 몸과 마음을 닦아 영혼 해탈을 준비하는 시기. ④ 떠나는 시기(saṃnyāsin, 遁世期) : 모든 재산을 버리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얻어먹으며 살아간다. 5가지 계율을 철저하게 지킨다. 이 마지막 시기의 브랗마나를 빅슈(bhikṣu, 比丘)ㆍ스라마나(śramaṇa, 沙門)ㆍ떠돌이(parivrājaka, 流行者)라고 불렀다. 불교 경전에서도 이 3가지 낱말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브랗마나(婆羅門)가 아닌 모든 수행자를 스라마나(śramaṇa, 沙門)나 떠돌이(parivrājaka, 流行者)라고 부르고, 붇다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제자를 빅슈(bhikṣu, 比丘)라고 불렀다.
쑤메루산(Sumeru, 須彌山) : 쑤메루는 메루(meru)에 앞가지(接頭語) 쑤-(su-)를 붙여 쑤메루(sumeru)라고 하였는데,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 세계 한가운데 있는 산을 말한다. 이 쑤메루산(須彌山)을 중심으로 7개의 산과 8개의 바다가 있고, 또 그것을 큰 바다(대함해, 大醎海)와 큰 산(철위산, 鐵圍山)이 둘러싸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수미산(須彌山)은 산스크리트 쑤메루(sumeru)의 소리를 따서 한자로 옮긴 낱말인데, 한자 상고음에서 미(彌)자가 메르[miăr(Bernhard Karlgren) mjier(周法高)]에 가깝다. 현재의 북경음으로는 須彌가 수미(xumi)라고 읽지만 상고음으로는 슈미에르(siumjier)에 가깝다. 뜻글자인 한자의 어려움에 비해 산스크리트와 같은 소리글인 한글로는 쑤메루(sumeru)라고 쉽게 적을 수 있으므로 앞으로 수미(須彌)는 쑤메루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글의 [ㅅ]은 영어의 [ʃ(sh)]에 가까운 소리가 나고, [ㅆ]은 [s]에 가까운 소리를 내기 때문에 수메르가 아닌 쑤메루라고 읽는 것이 본디 소리에 가장 가깝다.
3) 단정하고 아름다워 사람들 가운데서 얼굴빛이 비할 수 없고, 어려서는 항상 존귀하고 큰 집안에 태어나고, 그 어버이ㆍ형과 아우ㆍ일가붙이ㆍ알고 지내는(面識) 이들이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端正姝好, 於眾中顏色無比, 少小常在尊貴大姓家生, 若其父母ㆍ兄弟ㆍ宗親ㆍ知識無不敬愛者.
4) 뛰어난 재주와 넓은 지식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과 크게 다르고, 스스로 절도를 지켜 늘 안으로는 부끄러워하고, 결코 스스로 큰 체하지 않으며, 언제나 도타운 사랑 베풀 수 있겠습니까? 高才廣博, 所議作者 與眾絕異, 自守節度, 常內慚色 終不自大, 常有慈哀.
5) 지혜가 막힘없이 환히 통해 그 밝기가 다른 무리와 같지 않고, 불가사의한 힘이 견줄 데 없고, 힘써 나아감을 따라가기 어려워, 모든 경전에 들어가 갖가지 경전을 읽어도, 그 많은 경전의 뜻을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겠습니까? 智慮通達於智中明. 無有與等者. 威神無比, 精進難及, 入諸經中, 多入諸經中, 諸經中無不解.
6) 편안하고 즐겁게 선(禪)을 수행하여 싸마디(定)에 들고 공(空)에 들어, 생각하는 바도, 집착하는 바도 없어지고, 이처럼 3가지 일에 두려움 없이 중생에게 경전을 많이 설하여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安樂, 入禪ㆍ入定ㆍ入空ㆍ無想ㆍ無所著, 於是三事中不恐, 多為人說經, 便隨護之.
7) 태어나고자 하는 곳이 어디든 자기 마음대로 되고, 본지의 공덕력과 믿는 힘이 많아, 가는 곳마다 몸은 힘이 강하고, 사랑하는 힘 내지 않을 때가 없고, 근력(根力)이 없을 때가 없고, 보는 것이 뚜렷하고, 믿는 것이 뚜렷하고, 바라는 것이 뚜렷하겠습니까?
在所欲生何所, 自恣無異, 本功德力, 所信力多, 所至到處. 其筋力強, 無不欲愛力, 無不有根力, 明於所向力ㆍ明於所念力ㆍ明於所視力ㆍ明於所信力ㆍ明於所願力.
8) 묻는 것이 큰 바다와 같아, 줄거나 다할 때가 없으며, 달이 가득 차면 두루 비추어 밝음을 느끼지 않는 자가 없듯이, 해가 처음 떠오를 때처럼, 횃불이 비추듯이 걸리어 가로막는 것이 없겠습니까? 在所問如大海, 無有減盡時, 如月盛滿時悉遍照, 無有不感明者, 如日初出時, 如炬火在所照ㅡ 無所罣礙.
9) 집착하지 않는 마음은 허공과 같이 머무는 바가 없으며, 다이아몬드 칼(金剛鑽) 같아서 못 들어가는 곳이 없고, 안전하기 쑤메루 산과 같아 움직이지 않고, 문지방처럼 바르고 굳게
고려대장경의 단정주호(端政姝好)와 달리 【宋】【元】【明】 경전에는 단정수호(端正殊好)라고 되어 있다. 중아함을 비롯하여 3~4군데 단정주호(端政姝好)가 나오고, 단정수호(端正殊好)도 몇 가지 경에 나오지만 아함부를 비롯하여 본연부, 법화부, 반야부, 화엄부 같은 수십 가지 경전에 단정주호(端正姝好)가 나와 이에 따라 옮긴다.
【宋】【元】【明】 경장에는 무소상(無所想).
뿌리 힘(根力) : 믿음 뿌리(信根)ㆍ정진 뿌리(精進根)ㆍ염 뿌리(念根)ㆍ싸마디 뿌리(定根)ㆍ슬기 뿌리(慧根) 같은 5가지 뿌리.
다이아몬드 칼(金剛鑽) : 찬(鑽)은 이름씨로 나무에서 구멍을 파는 ‘끌’을 말하고 움직씨로는 ‘뚫다’, ‘자르다’라는 뜻이 있는데, 끌이라는 낱말이 많이 쓰이지 않아 ‘자르다’는 뜻을 살려 ‘칼’이라고 옮겼다. 다이아몬드(金剛石)은 수정을 비롯한 단단한 것을 다룰 때 쓰는 연장으로 불교에서는 마음의 괴로움(煩惱)ㆍ헛된 생강(妄想)을 깨부수는 도구를 나타내기 위해 다이아몬드(金剛)라는 낱말을 많이 섰다. 금강경(金剛經)이 가장 큰 보기다.
머물 수 있겠습니까?
不著心如虛空無所止, 如金剛鑽無所不入, 安如須彌山不可動, 如門閫正住堅.
10) 마음은 고니 털처럼 부드러워 어수선하거나 그만두지 않고, 몸은 노는 일에 빠지지 않고 산과 강에 노니는 사슴과 같아, 늘 스스로를 지켜 예삿일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心軟如鵠毛, 無有麁爽, 身無所慕樂, 於山川如野獸, 常自守, 不與人從事.
11) 스라마나(沙門)나 도인이 가르쳐주면 모두 따라 하고, 깔보고 놀려도 끝까지 화내지 않아, 어떤 마라(魔羅)로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까?
若沙門道人多所教授皆護視, 若有輕嬈者終無瞋恚心, 一切諸魔不能動.
12) 모든 경전 깨쳐 갖가지 슬기에 들고, 온갖 붇다의 가르침 배워 다른 스승 필요 없게 되어, 큰 힘과 거룩한 뜻을 흔들 자가 없게 하겠습니까?
解於諸經, 入諸慧中. 學諸佛法, 無有能為作師者, 威力聖意, 無有能動搖者.
13) 깊이 닦을 때는 닦는 것이 없어 늘 부드럽고, 경을 볼 때는 늘 가여운 마음 가져, 모든 붇다가 한 일을 잇되 싫어함이 없겠습니까?
深入之行常隨無所行, 常柔軟, 於經中常悲, 承事於諸佛無有厭.
14) 갖가지 닦은 공덕이 모두 따라와, 늘 지극한 닦음과 믿음에 흔들림이 없어, 하는 일 말끔하고, 맡은 일 모두 풀어내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所行種種功德悉逮及, 所行常至ㆍ所信常政, 無有能亂者, 所行常淨潔, 臨事能決, 無有難.
15) 슬기가 맑고 밝아, 편안히 수행하고 5가지 번뇌(五蓋)를 여의고, 그 슬기(智慧)로 하는 수행이 차츰 붇다의 경계에 이르겠습니까?
清淨於智, 慧悉明, 得所樂行, 盡於五蓋, 智慧所行稍稍追成佛之境界.
16) 여러 국토를 장엄하게 꾸미고, 계를 맑게 지키는 아르한과 벽지불의 마음으로, 짓는 것은 모두 끝까지 이루고, 지은 공덕은 늘 높고 으뜸이며, 중생을 가르치는 일도 또한 그럴 수 있겠습니까? 莊嚴諸國土, 於戒中清淨阿羅漢ㆍ辟支佛心, 所作為者皆究竟, 所作功德常在上首, 教授人民亦然.
17) 보살 가운데 가르침을 싫어하는 자가 없고, 꼭 해야 할 것은 그냥 두는 법이 없으며, 다른 모든 도(道)도 다 이루는 자가 없겠습니까?
於菩薩中所教授無有厭, 當所作者度無有極, 一切餘道無有能及者.
【宋】【元】 장경에 ‘버릴 기(棄)’로 되어 있는데, 뜻이 더 알맞아 이 글자를 골랐다.
【元】【明】 장경에 ‘짐승 수(獸)’자 대신에 ‘사슴 록(鹿)’로 되어 있어 이에 따른다.
쁘라뗴까 붇다(pratyeka-buddha, 辟支佛) : 쁘라뗴까(pratyeka)는 각각(each one), 각각 혼자(each single one), 각자 모두(every one)라는 뜻인데, 소리로 패지가(貝支迦), 벽지(辟支)라고 옮겼고, 뜻으로는 연으로 깨달음(緣覺), 홀로 깨달음(獨覺)이라고 옮겼다. 스승 없이 홀로 깨달은 분을 말하는데 대지도론(大智度論)(권 18)에 따르면 다음 2가지 뜻이 있다. ① 불법이 이미 없어져 붇다가 없는 세상에 태어나 전생에 수행한 인연으로 스스로 슬기를 얻어 깨달은 분. ② 다른 분에게 듣지 않고 스스로 깨달은 분으로, 12연기의 이치를 꿰뚫어 깨달음을 이룬 분이다.
18) 일찍이 붇다를 떠나지 않고, 붇다를 보지 못하였지만, 모든 붇다를 어버이처럼 늘 염(念)하고, 차츰 여러 붇다의 불가사의한 힘을 얻고, 여러 경을 모두 얻어, 밝은 눈으로 보는 데 걸림이 없고, 모든 붇다가 다 눈앞에 나타나게 되겠습니까?
未嘗離佛ㆍ不見佛, 常念諸佛如父母無異, 稍稍得諸佛威神, 悉得諸經, 明眼所視無所罣礙, 諸佛悉在前立.
19) 마술사가 마음대로 변하듯 여러 법을 만들어, 미리 헤아리지 않아도 문득 법을 이루고, 오는 바도 없고, 가는 바도 없게 할 수 있습니까?
譬如幻師自在所化, 作諸法, 不豫計念, 便成法, 亦無所從來, 亦無所從去.
20) 꿈속에서 과거ㆍ미래ㆍ현재를 생각처럼 만들 듯, 가지고 있는 모든 분신(分身)이 온갖 붇다나라에 두루 이르러, 해가 비추면 물속에 그림자가 두루 나타나듯, 생각하는 것은 메아리처럼 모두 얻고, 오지도 가지도 않게 할 수 있습니까?
如化作, 念過去ㆍ當來ㆍ今現在如夢中, 所有分身悉遍至諸佛剎. 如日照水中影悉遍見, 所念悉得如嚮, 不來, 亦不去.
21) 나고 죽음을 마치 그림자 나누는 것처럼, 생각하고 아는 것이 문득 공함과 같아, 법 속에 헛된 생각이 없어 귀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겠습니까?
生, 死如影之分, 便所想識如空, 於法中無想, 莫不歸仰者.
22) 모든 것이 평등하고 차이가 없어 경을 보면 모두 알고 마음은 헤아릴 수 없어, 온갖 이로운 것에 마음이 쏠리거나 생각이 가지 않아 모든 붇다 나라를 나와도 다시 걸리는 것이 없겠습니까?
一切平等無有異, 於經中悉知. 心不可計, 一切諸利心不著, 無所適念;[48]出於諸佛剎, 無所復罣礙.
23) 여러 다라니문(陀羅尼門)에 모두 들어가 경전 하나를 들으면 모두 알고, 모든 붇다가 설하신 경을 다 받아 지닐 수 있겠습니까?
悉入諸陀憐尼門, 於諸經中聞一知萬, 諸佛所說經悉能受持.
24) 모든 붇다 모시고 붇다 힘 모두 얻고, 붇다 위신력 모두 얻어, 용맹정진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 사나운 사자처럼 가는데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侍諸佛悉得諸佛力, 悉得佛威神, 勇猛無所難, 行步如猛師子無所畏.
25) 모든 나라에서 이 말을 쓰지 않은 사람이 없고, 이 말을 들은 사람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을 때, 모든 붇다가 뜻하는 바와 다름이 없겠습니까?
於諸國土無不用言者, 所聞者未曾有忘時, 一切諸佛之議等無有異.
26) 본디 경전이 없었음을 알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경전을 얻으려고만 하면 문득 스스로 알아서 설하고, 모든 붇다가 끝까지 싫어하는 마음이 없듯이 세상 사람의 스승이 되면, 귀의하여 오지 않은 사람이 없고, 가는 곳마다 알랑거림이나 거짓이 없고, 모든 나라에 밝은 눈을 비추어 (몸ㆍ입ㆍ생각 같은) 3가지 것(三處)에 쏠리지 않고 하는 일에 걸림이 없겠습니까?
悉了知本, 無經不恐, 欲得諸經便自知說, 如諸佛終無厭. 為世間人之師, 無不依附者, 其行方幅無有諂偽;諸剎照明朗, 不著於三處, 所行無所罣礙.
【元】 경장에 이(利)로 되어 있는데 문맥으로 봐 옳은 것 같아 그것을 골랐다.
【宋】【元】 경장에는 타라니(陀羅尼)로 되어 있어 이에 따른다.
27) 중생에게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본디 법(本際法)에 바라는 바가 없이 모든 슬기(一切智) 가지고 사람들에게 붇다 길에 들도록 가르침에 두려울 때가 없겠습니까?
於眾輩中無所適, 於本際法中無所慕, 持薩芸若教人入佛道中, 未曾恐怖, 無有畏懼時.
28) 붇다와 가지고 있는 경을 모두 환히 알아, 모임에 온 중생 가운데 복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붇다의 더할 수 없이 큰 사랑을 보고, 배운 여러 경의 이치를 꿰뚫어, 큰 무리 속에서 두려운 것이 없고, 큰 무리 속에서 넘어설 사람이 없어 이름이 아주 멀리 날릴 수 있게 되겠습니까?
悉曉知佛諸經所有卷, 所在眾會中無不蒙福者. 見佛極大慈歡喜, 所學諸佛經通利, 於大眾中無所畏, 於大眾中無有能過者, 名聲極遠.
29) 모든 의심스럽고 어려운 것을 깨트리고 깨치지 않는 것이 없어, 경전에서 가장 높은 사람 되어 사자자리에 거침없이 앉아 모든 붇다가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붇다의 만 가지 말씀을 훤히 알아 모두가 만억 소리에 들어가겠습니까?
破壞諸疑難無不解, 於經中極尊, 於師子座上坐自在, 如諸佛法教, 悉曉知佛萬種語, 悉入萬億音.
30) 모든 붇다 경전을 소중하게 여겨 늘 곁에서 염하여 여러 붇다의 사랑이 떠난 적이 없고, 붇다 경전 따라 즐거이 행하며, 늘 붇다 따라 드나들고, 늘 스승 곁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때가 없어 시방 여러 붇다나라 가서 머무는 바가 없이 모든 바라는 바를 얻어 시방의 모든 사람이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고, 슬기와 보배가 모든 경장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愛重諸佛經, 常念在左右側, 未曾離於諸佛慈. 於佛經中樂行, 常隨佛出入, 常在善知識邊, 無有厭極時. 於十方諸佛剎無所適止, 悉逮得願行;度脫十方萬民, 智慧珍寶悉逮得經藏.
31) 몸은 허공처럼 상(想)이 없고, 사람들이 보디쌑바의 길을 구하도록 가르쳐 붇다의 씨가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身如虛空無有想, 教人求菩薩道, 使佛種不斷.
32) 보디쌑바의 도를 행하여 마하야나(摩訶衍)를 떠난 적이 없게 하고, 또한 마하-쌈나하-쌈나다(mahā-saṃnāha-saṃnaddha, 큰 다짐)이란 더할 수 없이 크넓은 도를 얻고, 모든
【宋】【元】【明】 경장의 ‘안(眼)’을 따름.
모든 슬기(Sarva-jña, 一切智) : 싸르바(sarva)는 모든(whole), 전부(entire), 온(all), 온갖(every) 같은 뜻으로 <한문 경전>에서는 소리로 살리부(薩哩嚩), 뜻으로 모든 것(一切), 모든(諸), 다(総), 전체(全)라고 옮겼다. 즈냐(jña)는 지적인(intelligent), 넋을 지닌(having a soul), 슬기로운(wise); 슬기롭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a wise and learned man)이란 뜻으로 <한문경전>으로는 슬기(智)라고 옮겼다. 싸르바 즈냐(Sarva-jña)는 모든 것 아는(all-knowing), 무엇이든 알고 있는(omniscient, 全知)이란 뜻으로 <한문 경전>에서는 소리로 살운약(薩芸若), 살운약(薩云若), 살운연(薩芸然), 살파약(薩婆若), 살벌약(薩伐若), 이라고 옮기고, 뜻으로 두루 앎(徧知), 모든 것을 앎(一切知), 모든 슬기(一切智)라고 옮겼다. 소리로는 싸르바-즈냐, 뜻으로는 모든 슬기라고 옮긴다.
마하야나(mahā-yāna, 摩訶衍) : 마하(mahā)는 큰(great), 힘(might), 강한(strong), 넉넉함(abundant)을 뜻하고, 야나(yāna) : 모든 탈것ㆍ(a vehicle of any kind), 마차(carriage), 수레ㆍ짐마차(waggon), 배(vessel), 돛배(ship), 가마(litter), (한 사람 타는) 가마(palanquin); 불교에서는 앎에 이르기 위한 탈것이나 방법(the vehicle or method of arriving at knowledge); 여행(a journey, travel)을 뜻한다. 두 낱말의 겹씨 마하야나(mahāyāna)는 큰 탈것(great vehicle)을 말하며, <한문 경전>에서는 소리로 마하연나(摩訶衍那)라고 옮기고 마하연(摩訶衍)이라 줄여쓰기도 한다. 뜻으로는 큰 탈것(大乘), 맨 위 탈것(最上乘)이라고 옮겼다.
마하-쌈나하-쌈나다(mahā-saṃnāha-saṃnaddha, 摩訶僧那僧涅) : saṃnāha는 매다(tying up), (특히 갑옷과 투구를) 차다(girding on (especially armour), 전투를 위한 무장(arming for battle)
슬기(Sarva-jña, 一切智)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行菩薩道未曾離摩訶衍, 逮得摩訶僧那僧涅極曠大道, 疾逮得一切智.
33) 모든 붇다가 칭찬하고, 붇다의 10가지 힘(十力地)에 가까이 가서, 모든 생각 안으로 다 들어가고, 모든 헤아리는 것을 다 알고, 모든 세상 변화를 훤히 알고, 이루고 못 이루는 것, 나고 죽는 것을 모두 훤히 알 수 있겠습니까?
諸佛皆稱譽, 近佛十力地, 一切所想悉入中, 一切所計悉了知, 世間之變悉曉知, 成敗之事, 生者, 滅者悉曉知.
34) 모든 경전이란 보배의 바다에 들어가 가장 뛰어난 경전을 열어 모두 보시하고, 모든 (붇다) 나라에 가는 바람도 멈추지 않고, 붇다가 즐겨 행하듯 더할 수 없이 크게 변화하겠습니까?
入經海寶開第一之藏悉布施、悉於諸剎行願亦不在中止,極大變化如佛所樂行。
35) 마음을 한번 돌이켜 염하면, 붇다가 모두 눈앞에 나타나고, 모든 것 이루어져, 더 바라는 바가 없고, 마침내 태어날 곳이 없게 되면,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붇다나라(佛刹)를 다 보고, 모든 붇다가 설하신 경을 들으며, 붇다와 빅슈들을 낱낱이 볼 수 있겠습니까?
心一反念,佛悉在前立,一切適不復願、適無所生處;十方不可計佛剎悉見,聞諸佛所說經;一一佛比丘僧悉見。
36) 그때 신선도(仙道)ㆍ아르한(阿羅漢)ㆍ쁘라뗴까 붇다(辟支佛)의 안식(眼識)을 갖지 않아,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치고 저 붇다나라에 태어나 (붇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 앉아서 모든 붇다들을 다 보고, 모든 붇다가 설하는 경을 듣고 다 받을 수 있겠습니까?
是時,不持仙道、羅漢、辟支佛眼視,不於是間終生彼間佛剎爾乃見,便於是間坐悉見諸佛、悉聞諸佛所說經、悉皆受。
37) 비유하면, 제가 지금 붇다 눈앞에서 붇다와 보디샅바를 보는 것처럼 붇다를 떠난 적이 없고, 경전을 듣지 않은 적이 없게 되겠습니까?
譬如我今於佛前面見佛菩薩,如是未曾離佛、未曾不聞經。
붇다가 바드라 빨(Bhadra-pāl, 颰陀和) 보디쌑바에게 말씀하셨다.
쌈나다(saṃnaddha)는 무장한(armed), 갑옷을 입은(mailed), 갖추다ㆍ입다(equipped), 차려 입다(accoutred)는 뜻으로 거의 같은 뜻으로 갑옷과 투구로 전투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 <한문 경전>에서는 소리로 승나승열(僧那僧涅)이라 했는데, 쌈나하(saṃnāha)는 ‘너른 다짐(弘誓)’ ‘큰 다짐(大誓)’이라고 옮겼고, 쌈나다(saṃnaddha)는 ‘스스로 다짐(自誓)’이라고 옮겼다. 합하여 보디쌑바의 4가지 큰 다짐(四弘誓願)을 가리킨다. 소리로는 마하-쌈나하-쌈나다(mahā-saṃnāha-saṃnaddha, 摩訶僧那僧涅)로 옮기고, 뜻으로는 ‘(보디쌑바의) 큰 다짐(弘誓)’이라고 옮긴다.
붇다의 10가지 힘(daśa balāni, 十力地) : 10가지 슬기 힘(十種智力), 여래의 10가지 힘(如來十力)이라고도 한다. ① 도리와 도리 아닌 것을 아는 힘(處非處智力) ② 업이 새 업을 짓는 것을 아는 힘(業異熟智力) ③ 고요한 생각(靜慮)ㆍ벗어남(解脫)ㆍ싸마디(等持)ㆍ더 깊은 싸마디(amāpatti, 等至)를 아는 힘 ④ (중생) 바탕의 높낮이를 아는 힘(根上下智力) ⑤ (중생의) 갖가지 인식을 아는 힘(種種勝解智力) ⑥ (중생의) 갖가지 경계를 아는 힘(種種界智力). ⑦ 니르바나로 가는 길을 아는 힘(遍趣行智力) ⑧ 자신의 전생을 아는 힘(宿住隨念智力) ⑨ 죽은 뒤 태어날 곳을 아는 힘(死生智力) ⑩ 모든 번뇌가 사라진 것을 아는 힘(漏盡智力).
“맞다, 맞다! 묻는 것이 얽매임을 벗어난 것도 많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많아서 세상 사람들이 다시 헤아릴 수 없게 하고, 하늘 위아래가 모두 편안해지는구나. …….
佛告颰陀和菩薩:「善哉善哉!所問者多所度脫、多所安隱,於世間人民不可復計,天上、天下悉安之。
붇다가 말씀하셨다.
“<지금 바로 붇다가 눈앞에 나타나는 싸마디(現在佛悉在前立三昧)>를 닦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가 물은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
佛言:「今現在佛悉在前立三昧,其有行是三昧,若所問者悉可得。」
붇다가 바드라 빨(Bhadra-pāl) 보디쌑바에게 말씀하셨다.
“가르침에 대한 으뜸가는 수행(一法行)은 늘 익히고 지녀 반드시 지켜야 하고, 다시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 여러 공덕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르침에 대한 으뜸가는 수행법(一法行)은 어떤 것인가? 그 싸마디의 이름은 <지금 바로 붇다가 눈앞에 나타나는 싸마디(現在佛悉在前立三昧)>라고 한다.”
佛告颰陀和菩薩:「一法行,常當習持、常當守,不復隨餘法,諸功德中最第一。何等為第一法行?是三昧名現在佛悉在前立三昧。」 <*>
이 싸마디가 이 경의 이름은 반주삼매경의 본디 이름이고, 이 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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