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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미국과 조선은 조.미 수호통상장정을 체결하였다. 조선의 최초 근대적 조약이라고 하지만 실제 교섭을 진행하고 타이틀을 단 것은 청나라였고 "조선은 청나리의 속방이다" 라는 문구를 꼭 집아 넣고 싶어했다.
미국이 오히려 속방 이라는 구절을 완강히 거부하였지만 실제 미국은 조선에 전혀 도움되는 일은 하지 않았고 그후.광산개발권.벌채권 철도부설권 같은 이익을 챙기는데만 혈안이었다.
조약이리는 명칭대신 장정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유도 동남아시아.오끼나와를 열강에 빼앗긴 청나라가 마지막 자존심으로 조선이 청의 속방이므로 조약보다 한단계 아래인 장정 이라는 타이틀을 붙였고 국제정치질서에 무지한데다 힘도 없는 조선은 오히려 타국과의 분쟁시 청이 거중조정한다는 조항을 두고 청에게 감사해했다.
수호 라는 용어가 들어간것은 러시아,일본에게 조선영토를 탐내지말리는 영국의 힘을 빌려서 청나라의 자존심과 이익을 지키는 수단이었고 후속 조.청 상민 수륙통상장정에 의해 청나라 상인들이 조선내지로 들어와 장사를 히게 되는 발판을 만들고 서양인들조차 최혜국 대우 조항을 들어 이권침탈에 뛰어들었다.
청나라가 조미수호통상장정을 추진한것은 조.영 수호통상장정 을 체경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는데 그당시 영국은 러시아와 같이 세계열강으로서 요새 표현으로는 2G즉 Big TWO 였었다. 청나라는 강희.건륭시기에 국력의 피폐를 가져올 정도로 많은 군비.재정소모를 출혈한 준가르부에 신식소총을 공급하여 독립을 부추기는 러시아에 대해서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이 이이제이의 책략으로 미.영 양국을 끌어들이려 한것이었는데 정작 영국은 조선은 시장이 너무 작다고 보아 동북아시아의 하위 파트너로 일본을 택하고 조선의 수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후 박영효와 주일 영국 공사는 조약 개정을 합의하는데 약관 22세의 박영효는 노련한 영국외교관에게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1894년 상황을 파악하고 실망한 조선은 또다른 이이제이 책략으로 러시아를 끌여들여 조.아 통상조약을 맺게된다. 영국은 러시아가 조선의 영흥만을 조차하기로 했다는 밀약설을 들어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거하여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발데를 포기하도록 하였다 조선은 그냥 버리는 카드에 불과했던것이다.
영국은 홍콩과 인도의 이익을 러시아가 침해하지 않도록 러시아를 한반도 북부에 대한 진출을 봉쇄하도록 하는게 목적이라 인도차이나를 식민지화한 프랑스를 끌여들여 1861년 대마도를 점령한 러시아에 대항할 수 없었던 일본을 도와 영.프 연합 동양함대가 러시아를 압박해 철수시킨 전력이 있다.
19세기말 조선이 기대했던 열강의 보호는 없었고 미국.영국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도록 거래하고 방조했던 먹잇감 취급을 했을뿐이다 . 결국 카쓰라 테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 점유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점유룰 교환했다.
2차대전 말기 조선광복군을 대일전쟁에 써먹기 위해 지원하던 미국은 광복군과 임정이 무장한채로 한국에 들어가는것을 금지하고 비무장 개인으로 들어오게 하는데 이것은 소련이 제안한 일본 4개 분할안에 의해서 홋가이도와 혼슈북부가 소련의 관할에 들어가 서태평양에 소련 함대가 전력투사가 가능한 상황을 막는 대신 한국의 영토를 대신 갈라주는 협상진행을 추진하는 예비조치였다. 중국이 일본 시코쿠를 점령하는것도 미국은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동아시아에서 국력이 회복된 중국이 미국을 밀어내려고 할것을 예견하였었고 종전 70년이 지난 지금 실제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해양을 지배하는 SEA POWER국가로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후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일본과 독일을 전후질서에서 소련과 중국에 대항하는 하위 파트너로 삼아야 하니 심하게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략이 이미 제기되었었다. 한국은 미국에게 언제나 버릴 수 있는 카드였던것이다.
2차대전후 소련군이 진격한다면 유럽대륙 전체, 포르투갈까지 소련이 점령하더라도 육전에서 이를 막을 전력은 없었고 한반도에서도 한달먼저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격파하고 헌반도 북부에 주둔한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소련도 독일과의 전쟁에서 2000만에 달하는 막대한 인명손실과 산업파괴로 피폐해졌고 해군함대와 종합 해양력에서 미국에 크게 뒤져 미국의 일본분할안과 한반도 북부 분할안을 교환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2차대전중의 연합국 간 합의를 가장 잘 준수한 것은 소련이었다.
그러나 약소국의 이해를 지켜줄 선량한 열강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반도는 미국의 적극적 제안에 의해 분단된것이지 소련의 강점이 원인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는 소련의 한반도 북부점령과 괴뢰정권 수립이 원인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