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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들의 위계질서에 대한 그릇된 견해
(1) 예수님이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을 하라고 명령하신 일이 없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고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마가복음 16:17-2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을 하라고 했습니까? 그리고 그러면 주님이 역사할 것이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한 도시나 나라는 주술적인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통해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사도 요한에게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버가모라는 도시에는 사탄의 견고한 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도시를 지배하는 사탄과 싸우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 도시 위에 역사하는 마귀와 싸우고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것이 성경적이고 옳은 것이라면 예수님이 그런 명령을 하셨을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2:12-13)
이처럼 비록 예수님이 버가모를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고 말씀하셨지만 버가모 교회에 사탄과 전쟁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자신의 책에서 문맥을 무시하고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이기는 자들"이라는 표현을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의 승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해서 설명합니다. 저는 그것을 읽을 때 참으로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의 결과로 도시나 나라가 마귀의 지배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거나 상급을 받는 것을 기술한 것이며,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은 도시나 나라를 다스리는 마귀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죄를 이기는 것을 다룬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5:4-5, 계21:7-8).
(2)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에베소서 6:12)
이 구절에 대해 잔 폴 잭슨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에베소서 6장을 얼핏 보면, 마치 사도 바울이 둘째 하늘에 있는 사탄의 통치자들과 싸우라는 의미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단 한 번도 둘째 하늘에 있는 세력들과 싸우지 않으셨던 것처럼, 이 말씀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테리 로 목사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에베소서 6:12을 얼핏 보면 기독교인들이 악한 천사들에 대적해서 싸우는 것을 격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그러나 10절과 18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늘에서 타락한 천사들을 끌어내리자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적의 공격에 대하여 항거하라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의 요절과도 같은 성구입니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씨름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씨름이라는 단어를 전쟁으로 확대해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사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을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이 성경구절이 말하는 '씨름을 한다'는 말은 전쟁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확실히 아닙니다. '전쟁'과 '씨름을 한다'는 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씨름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면 당신은 씨름을 한다는 것과 전쟁을 한다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W. E. 바인즈의 성경사전을 찾아보면 '씨름을 한다'는 말의 의미 중에 한 가지는 '동요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허락한다면, 마귀는 우리를 패배시키기 위하여 우리를 대적하고 와서 우리를 동요시켜 믿음에서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과 불신앙으로 가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자리를 지키면 그는 우리를 말씀으로부터 떨어지도록 동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씨름'은 종종 마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을 굳게 잡는 '싸움'입니다."
저는 이 말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뒤에 전신갑주가 나오므로 싸움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구절은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과 무관합니다. 그 증거는 전신갑주를 입은 후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설명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먼저 우리의 씨름 상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에베소서 6:12)
다음으로 바울은 우리가 씨름에서 이기기 위해 입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소개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에베소서 6:13-17)
그러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후에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씨름을 위해 준비한 것이므로 당연히 우리는 씨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씨름이 보여주듯이 성경에서 씨름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후에, 주 안에서 강건하고 그리고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면 당신은 기도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 당신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때 그리고 당신이 성령 안에서 강건할 때 성경은 당신이 효율적으로 기도할 위치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실제로 전신갑주를 입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6:18-20)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울이 말한 기도가 도시나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마귀와 싸워서 폐위시키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목회자를 위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에 대해 "여기서 언급된 기도는 어떤 특별한 형태의 기도가 아니고 믿는 자가 사탄을 폐위시키려고 혹은 한 지역이나 도시나 주나 나라의 견고한 진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특별한 영적 활동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마귀와 그의 왕국에 대하여 기도로써 공격을 가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잘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은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과 전혀 관계가 없는 구절입니다.
한편, 이곳에 어떻게 해야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중요한 비결 중의 하나가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저 유명한 역대하 7장 14절과 일치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처럼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신사도운동에서 주장하는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이 아니라 말씀(엡6:17)과 더불어 기도(엡6:18-20)가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참된 비결입니다. 이것은 성경뿐 아니라 교회의 역사가 말해줍니다. 일례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찰스 피니와 중보기도자 내쉬를 통해 일어난 대부흥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사람 존 하이드의 생애가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사람 존 하이드의 생애가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캡틴 카레가 편저한 『기도하는 하이드』라는 책에 보면 존 하이드가 생애 마지막쯤에 체험한 놀라운 영적 체험에 대한 보배로운 기록이 나옵니다.
"나로서는 하이드의 생애 마지막 대목을 적절하게 묘사할 말이 없다. 그래서 연합 장로교에서 발행한 출판물(The Men's Record and Missionary Review)에 실린 W. B. 앤더슨 박사의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앤더슨 박사도 한때 몇 년 동안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시알코트 집회를 주도한 선교 위원회의 의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존 하이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도의 고난을 향해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인도를 구원하기 위해 그것을 방해하는 원수들과 필사적인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싸움에 용감하게 뛰어든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승리의 비전을 허락하셨습니다.
약 4년 전 어느 날이었지요. 그는 인도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자신이 경험한 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가 친한 친구들에게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허락했다네. 나는 여기 펀자브에서 겪고 있는 우리의 갈등을 넘어서 온 인도 땅에 하나님의 큰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네. 그 전쟁은 멀리 중국과 일본과 아프리카에서도 진행되고 있었지. 나는 우리가 우리나라, 우리 교단이라는 좁은 울타리 속에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네.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여기저기에서 힘을 모으고, 전열을 정비하고 계셨네. 바야흐로 하나의 커다란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지.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내게 다가왔다네. 우리는 바로 이 커다란 세계 대전에 참여하고 있다네.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우리는 항상 모든 싸움터를 지켜보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네. 각 사람이 제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에 배치하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네.'
그는 영적 싸움에 임할 때마다 항상 위대한 사령관이신 주님을 바라보았고, 그분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혹독한 고통을 겪은 뒤에 고향으로 송환되게 되었다는 전갈이 인도에 있던 우리에게 전해졌을 때, 나는 그가 승리의 환호 속에 왕이신 주님의 면전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생각에 젖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그가 '볼, 이수 마시흐, 키야이!'(외치자,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라는 말을 하면서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존 하이드는 영적 전쟁을 통해 많은 도시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영적 전쟁을 수행했고 승리를 거두었습니까? 하이드가 영적 도해를 하고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해 소리를 질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로써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고 영혼들을 구원했습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부흥입니다. 토미 테니는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라는 책에서 아르헨티나 부흥에 관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간증을 소개했습니다.
"195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있었던 대부흥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의 그 부흥은 남미로 퍼져 나갔고 마침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에드워드 밀러(Edward Miller)라는 사람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라』(Cry for Me Argentina)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아르헨티나 대부흥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소개되어 있다. 지금은 팔십대인 밀러 박사는 사십년도 더 전에 아르헨티나에서 사역하던 오순절 혹은 순복음 교단 선교사들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그가 사역하던 아르헨티나 성경학교의 학생 50명이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곳에 성령이 임했다. 그들은 조국 아르헨티나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큰 나머지 수업도 중단해야만 했다.
이 학생들은 49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아르헨티나를 위해 중보기도했다. 밀러 박사에 따르면 당시 아르헨티나는 영적 불모지였다. 후안 페론(Juan Peron)정부 치하였던 그 시기에 성령 충만한 신자들은 전국에 600명밖에 안됐다고 한다. 밀러 박사는 그렇게 간절히 오랫동안 울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 시작과 목표가 초자연적인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
밀러 박사는 그 학생들이 날마다 울부짖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콘크리트 벽돌담에 머리를 대고 울었는데 네 시간이 지나자 담 위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고 한다. 여섯 시간이 지나자 그는 자기 눈물로 생긴 웅덩이 가운데 서 있었다! 이 젊은 중보기도자들은 날마다 울었다. 밀러 박사는 그것을 '딴 세상의 통곡'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성령의 감화로 소위 '대리 회개'를 한 것이었다. 그들은 도시와 지방 즉 아르헨티나 전국에서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죄들을 회개했다.
밀러 박사에 따르면, 주님 앞에 울며 중보기도를 계속한 지 50일째 되던 날 이러한 예언의 말씀이 임했다.
'그만 울어라. 유다 지파의 사자가 아르헨티나의 군주를 이겼다.'
18개월 후 18만 석 규모의 축구경기장에서 벌어진 전도치유집회에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경기장들도 이 무리를 다 수용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밀러 박사보다 밀러 박사가 내게 해준 말을 영영 잊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어느 지역에서 사탄의 통치와 지배를 거부할 사람들을 찾으신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겸손과 낮은 마음과 회개의 중보기도로 사탄의 지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은 그 지역을 다스리는 귀신 세력에게 퇴거 명령서를 발부하실 것이다. 그분이 그렇게 하실 때 빛과 영광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에서 누가 아르헨티나의 군주를 무력화했습니까? 사람이 마귀를 꾸짖음으로써입니까? 아닙니다. 다니엘이 바사국군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처럼 이들은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주님이 아르헨티나의 군주를 패배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비결은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비결입니다.
또 하나의 작은 증거는 우리 교회에 강사로 오신 찰리 로빈슨 목사님이 집회 때 한 간증입니다. 저희 교회 집회 때 한 설교인데 해당 부분을 타이핑했습니다.
"오래전에 저는 굉장한 열정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금식을 40일도 했었고 21일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어떤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통치자들을 꾸짖는 것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균형이 없었습니다.
25년쯤 전의 일이었는데요. 저는 그 책을 읽고 '와 좋은 책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차가 지나다니고 있는 밖으로 나가 그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내가 너를 꾸짖노라! 밑으로 내려와라!' 하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목소리가 크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뭐하고 있느냐?'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이해를 못하신다면 여러분은 큰 문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세요? 주님, 저는 이 도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도시에 큰 해를 끼치고 있구나.'
그래서 전 주님께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시를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게 '너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도시를 위해 기도합니다.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해라!'
'알겠습니다, 주님. 저희 도시에는 오락실이 세 곳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마약을 팔고 있습니다.'
실제로 청소년들에게 팔리는 마약은 대부분 이 세 곳의 오락실에서 팔리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해라. 그러면 내가 이곳들을 모두 닫아 버릴 것이다.'
저는 소리 지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소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입니다.
저는 다른 두 명을 데리고 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지 일주일이 흘렀을 때 저희는 교회로 운전해가다가 첫 번째 오락실이 완전히 닫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건물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마약 유통으로 인해 경찰이 폐쇄했음'이라고 적힌 종이를 보았습니다.
제가 시장에게 편지를 쓴 것도 아닙니다. 시장의 사인을 들고서 이 오락실을 닫으라고 그들에게 말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두세 명과 함께 기도를 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그 다음 오락실 또한 문을 닫았습니다. 그 오락실은 저희 동네에서 가장 큰 오락실이었습니다. 기계들은 다 어디로 가고 그곳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후 저희는 2주간 또 기도했는데, 나머지 오락실도 없어졌습니다. 그중 하나는 한식당이 됐고 하나는 중식당이 됐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오락실이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주님이 무엇을 행하기 원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기도하면 그리고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권세를 취하게 되면 여러분이 영 안에 그리고 영광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운행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주님이 운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비결은 전략적 수준의 영적 전쟁을 한다고 하늘에 거주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꾸짖고 그들을 향해 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꿇어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루실 것입니다. 그들을 끌어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나라와 도시들을 위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