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잡지마을 제2001호/詩] ■ 이제 증오와 분노를 완성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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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다시 서귀포 이중섭마을을 반영구적으로 떠나,
그 일 이후 10여년만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팽목항과 마주하려...
일부러 제주항 2부두에서 진도행 쾌속선을 타고 육지로 돌아와
수십만개의 보리수 열매가 주저리주저리 열린 초리마을로...
섬에서든, 육지에서든,
저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역사적, 과학적 사실을
한시도 잊지않은 채....
이제, 증오와 분노를 완성할 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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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증오와 분노를 완성할 때
물고기도 아니면서 바닷물에 빠진, 빠져서 허우적거리는바닷물에 깊이 잠긴, 흔적없이 사라진 아이들의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로 변신할 수 없는,물고기가 아니어서 슬픈 에미, 애비들은
물고기가 아닌 아이들이 물고기가 아니기때문에 물과 물고기를 몹시 두려워할 때물에서 어서 빠져 나오고 싶어 발버둥칠 때 그러나 아이들이 물귀신에게 자꾸 산소를 빼앗기던 그때마지막 한방울의 산소마저 죽어버린 바로 그때,아이들과 동반해서 질식사하거나 실종되었다 는 게 과학적인 수사결과다
알고보면 물의 바다만 아이들에게 질식의 사지가 아니다뭍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는 생계의 바다도 위험하다아이들은 장사꾼도 아닌데, 노예도 아닌데, 투사도 아닌데, 아무 잘못도 없는데 학교에서, 학원에서, 길거리에서, 알바 일터에서 흥정을 하고 타협을 하고 싸움박질을 하고 패배를 당하고 굴복을 해야 한다그래야 겨우 산다, 아니 그래도 죽지 못해 살아간다
일체의 자본이나 연줄이나 권력이나 부동산이 없는거의 모든 아이들의 거의 모든 에비애비들은 아이들의 장래 직업과 향후 일상을 생각할 때마다불안감과 모멸감과 공포와 분노가 자꾸 증폭된다 작업복이나 양복 안 주머니에 오래 꼬불쳐둔 전근대적인 낫과 망치, 또는 청산가리만 괜히 만지작거리게 된다
그럴수록 저들은 더 많이 웃는다, 더 정력이 솟는다 들숨과 날숨을 비롯한 신진대사가 모두 만사형통하다아이들 몫의 산소와 꿈마저 빼앗아가더니 지나치게 유쾌하고 발랄하고 명랑하고 건강해졌다 수입과 재산도 더 늘어나서 더 안락해지고 행복해졌다사는 게, 지배하는 게, 건들거리는게 오지게 재미있다
물과 뭍에 빠진 아이들의 에비애비들은자꾸 하나둘씩, 바보나 쪼다나 머저리 처럼 질식사하고 화병이 도지고 심인성 암에 걸려들어서 느닷없이 쥐도새도 모르게 저승행 막장으로 고꾸라지고 나자빠지고 처박히는데자꾸 세상과 사람이 무서워 비겁해지는데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저들이 이럴 때 요긴하게 쓰려고 지어놓은 돼먹지 않은 훈계다그게 아니다, 이 놈들아, 이 나쁜 놈들아, 이 죽일 놈들아 옳은 증오는, 정의로운 분노는 혁명과 승리를 낳는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증오와 분노는 좀 아는 편이다
이제 우리의 증오를, 에비애비의 분노를 완성할 때다 낫과 망치와 육혈포와 도시락 폭탄을 빛이 나게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것으로서 저들을 체포하고 처단하고 소탕하고 박멸해버리는 것으로서 그렇게 아이들을 다시 뭍으로, 이승으로,
사람 사는 참세상으로 건져내는 것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