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했는가?
인생은 성공 경험이 아니라 그분과의 동행의 밀도와 믿음의 크기로 정복하는 것이다.
끝이 안 보이던 대치 상황에 돌연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우리가 거인과 믿음으로 싸우길 작정하더라도, 그 앞에 서기도 전에 인생이 먼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꽤 상세히 다룬다. 이때 다윗은 먼저 두 가지 저항을 맞닥뜨린다. 바로 엘리압과 사울의 반대였다.
찰스 스윈돌 목사님은 이를 ‘연장자 증후군’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무언가 새롭고 도전적인 일을 하고자 할 때 앞선 경험자들이 비난과 냉소적인 조언 등을 쏟아붓는 걸 말한다. 28,33절을 함께 보자.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은 ‘엘리압의 정죄’와 ‘사울의 불신’이라는 반대와 저항에 부딪혔다. 그들은 다윗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자기 경험을 토대로 다윗의 내적 동기를 정죄하며 비난했고, 다윗의 현실적 조건을 불신하며 반대했다.
우리도 막상 믿음의 싸움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 연장자의 공격에 부딪히곤 한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대상 앞에 서는 경험, 이것이 다윗이 진짜 싸움을 하기 위해 통과할 관문이었다.
내가 파트 전도사로 막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찬양 인도를 하고 내려오는데 한 목사님이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유경아, 왜 그렇게 유관순처럼 예배 인도를 하니?” 단 위에서 나의 외침이 ‘대한 독립 만세’를 방불케 한 것 같았다. 난 예배만큼은 언제나 절박하고 간절하게 드리고 싶은데, 목사님은 그렇게까지 진지할 필요 없다며 이런 조언을 종종 덧붙였다.
“회중이 부담스럽다. 조금만 편안하고 부드럽게 할 순 없니?”
물론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었다. 조언의 의도도 이해했다. 회중이 느끼는 부담과 피로도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예배에서 최우선 고려 대상은 회중이 아닌 하나님이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매 순간 그분 앞에 견딜 수 없는 목마름과 간절함으로 예배하고 싶었다. 목이 말라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에 빗대어 표현한 다윗처럼 계속해서 독립투사처럼 최선을 다해 예배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매주 단에 설 때 거룩한 설렘과 긴장감을 점점 잃을 것 같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의 연륜에 결부시켜서 적당히 대충 하는 태도를 마치 세련된 프로의식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사역할 때 이 잘못된 프로의식을 경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것이 ‘마음’을 잃어버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또 프로의 세계에서는 긴장과 떨림을 미숙의 증거로 여겨 이를 부끄러워하고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간절함은 아마추어나 갖는 것이고, 프로는 경험과 요령에 기대어 여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 여유로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여유를 멋 부리는 데 쓰면 추해진다. 게다가 ‘진짜 여유’와 ‘매사에 적당히 하는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진정한 프로는 끝까지 치열하고 진지하게 임한다. 결코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누구도 속이지 않는다.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다. 경험이 많은 연장자들이 때로 우리의 동기를 정죄하거나 자질과 능력을 평가 절하한다. 이에 대해 R.T. 켄달 목사님은 말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일에 가장 강하게 대적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제 쓰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이 어제 하신 일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그분이 오늘 하시는 일에 가장 적대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갈망은 현실의 냉소주의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의분과 용맹함은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유일했고 낯설었기에 비난과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이 저항을 뚫고 나아갔다. 영적 거인 다윗은 엘리압의 정죄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해 전과 같이 말했다(삼상 17:30).
사단은 골리앗을 쓰러뜨려야 하는 다윗의 대진표를 교묘하게 바꿔치려 했다. 이것은 우리를 종종 혼란에 빠트리는 사단의 작전이다. 싸움의 대상을 몰래 바꾸는 것. 그러나 다윗은 이 작전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엘리압은 그가 싸울 대상이 아님을 알고, 그 중심과 태도와 갈망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가차 없이 돌아서서 평점심을 유지했다. 그는 또 다른 반대자 사울에게도 이렇게 반응했다(34-37절을 보라.)
자신의 연소함, 경험 부족, 자격 미달을 이유로 전장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사울에게 다윗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다윗은 자신의 과거 성공담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경험 말이다.
다윗과 사울은 초점이 아예 달랐다. 영적 거인과 영적 불구자의 차이다. 다윗은 말한다. “제가 하려는 말은 제 용기와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그때에도 저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사자를 때려눕힌 경험이 다윗을 강하게 했는가? 이것은 다윗의 ‘성공담’이 아니라 그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를 거인 앞에 벌벌 떨지 않게 하는 건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분에 대한 경험, 그분을 향한 믿음, 그분이 주신 약속, 그것뿐이다.
과거의 성공 사례는 우리의 두려움을 근본적으로 몰아내지 못한다. 어제 성공했어도 내일의 실패는 여전히 두렵다.어쩌면 성공의 축적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키울 수도 있다. 기대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어떤 일을 해냈다고 해서 오늘 마주한 문제가 버겁지 않은 게 아니다.
우리는 과거의 성공 사례로 자신감을 쌓으며 삶의 가능성을 키워가거나 긍정적 사고와 철저한 자기 관리만으로 삶을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다. 물론 자기 관리와 성공 사례도 필요하다. 다윗도 목자로서 근면 성실하게 양 떼를 지키며 곰과 사자를 쳐 죽인 성공담을 말했다.
하지만 본질은 그 모든 걸 주님과 함께했냐는 거다. 인생은 성공 경험이 아니라 동행의 밀도와 믿음의 크기로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여섯 걸음, 원유경
여섯 걸음
규장원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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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걸음 은혜문장쓰기 PDF : https://mall.godpeople.com/?G=1682306887-0
† 말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스바냐 3장 17절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시편 139편 7-10절
† 기도 하나님, 세상의 많은 경험과 기술, 지식 앞에 두려워 떨지 않겠습니다. 인생은 성공의 경험 이전에 하나님과 동행하느냐가 더 중요하기에 그 믿음의 크기로 정복해 나아가렵니다. 세상의 풍파와 거인 앞에 떨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 적용과 결단 결전의 날 앞에 다윗이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늘 함께하셨던 하나님 때문입니다. 내 경험과 기술 이전에 그분을 향한 믿음, 그분이 주신 약속을 기억합시다.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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