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이때 눈이 감각기관이라면.. 눈(안근)이 생기는 것은 세상에 태어남이 됩니다.
살아가는 동안 눈의 능력은 나빠질 수 있으나, 결국은 사고가 없는 한 무덤으로 갈 때 비로소 멸하고 맙니다.
그런데 <315경>에서는 그런 눈이 소멸하면 죽음도 사라진다(死則沒)고 합니다.
그러니 여기에 나오는 생기고 소멸하는 눈은 감각기관의 눈인 안근이 아닙니다.
안근이 아니면?..
이어서 나오는 이비설신의도 마찬가지 입니다. 5근이 아닙니다. 5근이 아니라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안(이비설신의)은 탐욕과 집착에 의해 생기는 눈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탐욕과 집착에 의해 생기는 것을 [입처]라 하셨습니다.
탐욕과 집착은 마음 에 생기는 게 아닌가요?..
고로 입처란 [마음(심연생)]에 생긴 게 됩니다.
하여 안입처, 이입처, 비입처, 설입처, 신입처, 입입처하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안근과 안입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안근은 보이는대로 볼 뿐 거기에 어떤 의지가 결부되어 있지 않지요. 그런데
안입처는 볼 때 자신의 의지.. 특히 탐욕과 집착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안근이 아닌 안입처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막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의 크레지한 행동에 분개하지 않는 것도 그들의 의지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즉 그들의 안입처와 의입처가 의식을 만드는데.. 기독교인들의 한심한 미친 짓이 그저 덤덤하게 보인다는 거지요.
입처와 근의 차이가 보이시는지요?..^^
첫댓글
"무모한 靑, 무소신 여, 무기력 야 … 의회 ‘통법부’ 전락.."
위와 같은 뉴스를 보면서도..
보는 입장(=안입처)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안식)을 내 놓고 있습니다.
잘 보입니다. ^^
산그리워 : 마찬가지로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만들어낸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즐겁고 화나고 뭐 이런 세상은 자기가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 이런 일체를 만들어 내는 게 6내외입처로 12처가 됩니다.
그때 6입처는 색온처럼 보이구요.
(색의 특징은 아니비 설신늬 이기에)
그런데 [6입처=색온]이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색온이란 그릇 속에 보이지 않는 냉면으로 담겨있습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6근인 보이는 냉면입니다.